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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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이외에 세편의 단편이 함께 실려있다,

각각 다른 이야기지만  다 읽고 나면 모든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각각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진 인물들의 이야기지만 그 인물을 관통하는 정서는 상실감일 것이다

 

표제작 "환상의 빛' 에 나오는 여주인공 유미코는 남편이 자살을 했다.

어떤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도데체 왜 무엇때문에?

그 알 수 없는 의문은 내내 그녀를 따라다닌다,

남편이 죽고 혼자 아들을 키우며 살던 그녀는 먼 바닷가 마을로 재혼을 해서 떠난다.

그 곳에서 좋은 남편과 살가운 딸 그리고 편안한 시아버지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따뜻하고 넓은 자연을 품은 마을에서 아들도 제대로 잘 자라는 것을 보면서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녀는 죽은 남편을 자꾸 생각한다.

그날 밤 어두운 밤에 무엇이 그 남자를 철로위로 걷게 했을까

길게 이어진 철로위로 그냥 걸어가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녀는 그 이유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태어나는 일에 이유가 없듯이 죽어버리는 일에도 이유가 없는 것일까

왜 죽었나요?

가난하지만 어떤 불화도 없었고 무거운 빚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태어난지 이제 막 석달이 된 아들이 있었고 통근을 위해 자전거까지 마련했는데 그는 왜 죽었을까

멀쩡히 퇴근해서 근처 커피점에서 커피까지 마신 그가 왜 집으로 곧장 돌아가지 않고 철로를 갔고 그 선로위를 무심하게 그러나 단호한 걸음으로 걸어가버렸을까

 

저는 왜 그런지 견딜 수 없을만큼 슬퍼졌습니다, 초경이 무서웠던 게 아닙니다, 저는 그때 가난이라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원망했던 것입니다, 했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는 국도로 사라진 할머니의 조그만 뒷모습이나 막벌이꾼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던 어머니의 모습이 한낮인데도 전구를 켜지 않으면 안 되는 축축한 방 가득히 되살아났습니다. 저는 장지문을 쾅 닫고 피가 굳어서 딱딱해진 팬티를 스크트 위로 언제까지고 꼬옥 누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달거리가 시작될 때는 어김없이 이유 없이 썰렁해지고 쓸쓸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도 아마 초경이 있었던 순간 파친코점의 냉방으로 얼음처럼 차가워진 땀에 절여 있었던 탓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p30-31

 

저는 당신이라는 ㄴ사람이 따라다니는 푸영에서, 소리에서, 냄새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깨닫자 마자 제 가슴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한신 국도 서쪽으로 멀어져간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또렷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별안간 애가 타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아직도 개찰구에 내내 서 있을 게 틀림없는 어머닝한테 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p40

 

 

저는 이슥한 밤에 흠뻑 젖은 선로 위의 당신과 둘이 걷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힘껏 껴안아도 돌아다봐 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뭘 물어도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피를 나눈자의 애원하는 소리에도 절대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 윗모습이었습니다, 아아 당신은 그냥 죽고 싶었을 뿐이었구나 이유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당신은 그저 죽고 싶었을 뿐이야,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저는 뒤를 쫒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순식간에 멀어져갔습니다,

                                                                         p 60

 

이제 아무래도 좋아 행복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 죽는다고 해도 좋아 뿜어져 올랐다가 흩어져 날아가는 커다란 파도와 함께 그런 생각이 자꾸만 가슴속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당신이 죽었다는 것을 저는 그때 확실히 실감했던 것입니다, 아아 당신은 얼마나 쓸쓸하고 불쌍한 사람이었을까요 눈물과 흐는낌 저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언제까지고 울었습니다.

 

 

 

 

 

눈에 비치지 않지만 때떄로 저렇게 해변에서 빛이 날뛰는 떄가 있는데 잔물결의 일부분만을 일제히 부치는 거랍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사람의 마음을 속인다. 고 아버님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만히 시선을 주고 있으니 잔물결의 빛과 함꼐 상쾌한 소리까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아제 그곳만은 바다가 아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부드럽고 평온한 일각처럼 생각되어 흔들흔들 다가가고 싶어집니다, 그렇지만 미쳐 날뛰는 소소기 바다의 본성을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잔물결이 바로 어둡고 차가운 심해의 입구라는 것을 꺠닫고 제정신을 차릴 것임을 틀림없습니다

 

 

 

 

유미코는 새 가족과 아무런 어려움없이 잘 지내는 중에서도 계속 죽은 남편을 떠올리고 대화를 나눈다.

그때 당신을 유혹했던 빛은 무었이었나요?

죽은 남편을 닮은 남자를 보고 먼 바다에 나가서 죽지않고 지혜롭게 돌아온 우메노댁을 보면서 그리고 일상을 덤덤하지만 묵직하게 이어가는 새 남편과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유미코는 점점 환상의 빛을 바라보는 힘을 키워간다,

유미코에게 상실감은 죽은 남편만이 아니었던 것같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뒷모습을 남기고 사라졌던 할머니, 어두운 방안에 누운 아픈 아버지 맞아가며 일을 해야하는 엄마 그리고 엉뚱한 곳에서 시작되어버린 초경 

무언가를 잃어버린 상실감이 아니라 처음부터 가지지 못한 상실감을 유미코는 어릴 적 부터 알아버렸다. 그래도 애서 안도했던 그녀의 마음을  마지막으로 남편이 크게 흔들어 놓았던 것 뿐이다,

무엇이 저렇게 까지 사람을 몰고 갔을까

어쩌면 어쩌면 유미코는 그렇게 가버린 남편이 부러웠던 건 아니었을까

일상속에 환상처럼 흔들리고 빛나는 그 빛이 사실은 어둡고 차라운 심해의 입구라는 걸 이제 유미코는 안다.

그래서 살아갈 것이다.

때떄로 그 빛에 흔들리기도 하겠지만 그 상실감의 바닥을 쳐 본 유미코는 충분히  현실을 볼 내성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그 아련한 부재가 힘이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어졌다,

 

자기 방의 불을 끄고 튓마루의 유리문을 열었다. 따스한 밤이었다. 내일은 비가 올지도 모르겠는걸 하고 아야코는 생각했다, 비가 오지 않더라도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져버리는 활짝 핀 벛꽃을 . 아야코는 튓마루에 앉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았다 정원석도 도기로 된 의자도 보이지 않았다. 밤 벛꽃이 꼲임없이 지고 있는 모습만이 마음에 스며 들어 뜨뜻미지근한 꽃비에 몸을 맡기고 있는 기분에 취해 있었다.

 

 

어떤 여자로도 될 수 있는 방법을 오늘이 마지막인 꽃 안에서 일순 본 것인데 그 아련한 기색은 밤 벛꽃에서 눈을 떼면 순식간에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벚꽃이 핀 풍경은 아름답다.

어두운 밤 달빛에 환하게 빛나는 벚꽃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이다

그 벛꽃의 개화기는 그리 길지 않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아야코는 젊어서 강한 여성이었을 것이다. 기가 쎄고 누구에게도 지지않는 강한 여성이 아니라 스스로 자존심이 높고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것이  확실한 여자가 아니었을까

남편의 단 한 번의 외도에 칼같이 이혼을 결심하는 것이 그러하고  그 이후 줄곧 혼자서 살아온 점 아들을 먼저 보내고도 그 집에서 견디어 온 점등이 아야코의 성격을 느끼게 한다,

사는 동안 아야코는 자기집 정원의 벛꽃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을까

그 벛꽃을 바라보며 한 숨 돌리는 여유를 가진적이 없지 않았을까 싶었다,

늘 자기 정원에 있었던 벛나무였으니까 조금은 무심해도 상관이없다고 생각했을 듯 하다.

그렇게 무심했던 벛꽃의 아름다움을 이 동네에 처음 온 낯선 젊은 부부는 온몸으로 느낀다,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이라고 느끼는 그 젊음이 아야코는 부러웠을까

그렇게 오래 살아도 무심하게 지나쳤던 벛꽃을 보면서 아야코는 자신을 생각했을 것이다,

어떤 여자로도 될 수 있는 방법

어떤 사람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아야코는 낯선 부부를 이층에 들인 그 날밤 알게 된다,

내에게도 누군가를 유혹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었다는 걸 그것을 잃은 후 상실과 함께 느끼는 아야코는 늦은 밤까지 잠을 이룰 수 없다,

왜 모든 깨달음은 한 참이 지난 후 알게 되는 지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벛나무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건 그녀에게 다행일까 불행일까

모르겠다,

 

나는 전붓대를 깍는 일을 그만두고 제방 건너편의 휑뎅그렁하고 지저분하며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숨어 있을 그 주변 위의 하늘에는 엄청나게 많은 박쥐가 어지러이 날고 있었다, 나는 소름이 끼쳤고 언제까지고 박쥐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둔하고 까만 눈을 가진 새라고도 짐승이라고도 할 수 없는 생물의 추악한 춤이며 땀과 허무로 처버ㅏㄹ라진 관능의 무수한 비밀이며 기괴한 표정에 조종되는 그 영혼들의 어쩔 수 없는 술렁거림이었다,

 

 

저물어가는 어슴푸레함속에서 낙엽이 격렬하게 춤추고 있었다, 바람은 시센도의 뜰에서 소용돌이 치는 모양으로 몇개의 입사귀가 땅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위로 아래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 낙엽이 검게 뒤석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늦가을 저물녘에 흩날리는 낙엽은 십면 년전의 박쥐 바로 그것 이었다,. 아주 고요해져 있던 내 몸 속 안에서 크레인 소리가 울리고 어지럽게 그리고 나긋나긋하게 서로 뒤ㅅ엉키듯이 박쥐들이 품어져 나왔다, 

 

때떄로 이게 끝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관성처럼 계속 하고 있는 행동이 있다,

주인공은 우연히 부딪친 친구에게서 잊어버리고 있던 엣친구 란도를 기억해내고 그때 란도와 함께 한 시간을 기억해낸다. 그건 ' 기억한다'가 아니라 '기억해 내는' 것이었다,

별 일이 아니었고 그냥 무심학 보아버린 크레인 소리가 시끄러운 그 지저분한 하늘의 박쥐가 지금 이순간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주인공앞에 펼쳐진다,

그때는 박쥐를 보고 무엇에 쫒기듯 친구를 버리고 도망쳐버렸지만 지금은 어디도 갈 데가 없다,

이제 잊어야 하고 놓아야 하는데 그 타이밍을 주인공은 놓쳐버렸고 이제 박쥐를 피해서 달아날 곳은 없다. 지금은 그 박쥐들이 흩날리고 뒤엉키는 낙엽처럼 아련할 뿐이다,

이것도 역시 상실이다,

순수성을 잃었다고 할 수도 있고  마지막 한조각의 양심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도 있고 뭐 그렇다는 생각이다,

 

 

 

마지막 작품은.....

뭐랄까 좋다 나쁘다고 말하기엔 그냥 턱 하고 걸리는게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등을 보이며 흐느끼는 노인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책을 넘기기 힘들었다,

누구나 섬처럼 외롭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바다에서 빛나는 환상의 빛이든 밤에 핀 벛꽃이든 박쥐떼든... 그게 무엇이랴 하는 생각

그 노인의 모습과 그 노인을 바라보는 주인공을 생각하면서

이 책은 밑줄을 그을 수가 없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꽉 짜여진 더 이상 줄일것도 없고 걸러낼 것도 없는 고농축의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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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러 갑니다
가쿠타 미쓰요 지음, 송현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늘 감탄하는 것은 그것이다

아주 미시적으로 꼼꼼하고 세심하게 관찰하는 누군가가 느껴지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쳐갈 법한 감정과 어떤 움직임을 미세하게 잡아내는 것이다,

뭘 이런 걸 다... 싶은 것들까지 하나하나 꺼집어내고 발라내고 눈높이까지 치켜들고 꼼꼼하게 살피는 기분 아.. 졌다 싶다,

이 소설집에 들어있는  일곱개의 이야기도 그렇다,

사람이 가진 악의

그 녀석은 악의를 품어버린 사람을 숙주로 해서 끊임없이 악취를 풍기고 누군가를 위협하고 마지막엔 그 죽주마저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녀석이다,.

악의는 쉽게 마음속에 파고 든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 누군가가 미워 견딜 수 없다 죽었으면 좋겠다, 없어지면 좋겠다,

내가 꼭 업앨거야, 복수할 거야 부셔버릴거야 저주할거야

그 말은 처음엔 무시하지만 마음속에세 싹을 튀어고 점점 그 속을 휘감아 타고 올라간다,

때로는 오래오래 잊혀지듯 묵혀졌다가 어떤 무심한 자극에서 불쑥 튀어 나오는 멀미같기도하다

<죽어러 갑니다>의 구리코는 무심코 버스 뒷자석에 앉은 여자의 한마디 '누군가를 죽이러 갑니다" 그 말 한마디가 내내 잊혀지질 않는다., 누구를 죽이고 싶을까 난 누구를 죽이고 싶을까

그 말은 그녀의 깊은 기억을 헤집어내고 잊고 있던 과거의 악마를 찾아내고 죽이고 싶다는  기분에 휩싸이게 한다,

그 한마디는 잊고 있던 약점을 건드리고 숨기고 싶은 기억을  수치감을 드러낸다,

 

<스윗칠리소스>의 미도리 <잘자 나쁜 꿈 꾸지말고> 의 사오리 역시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주위에 있거나 내가 아는 누군가를 닮았다,

 

악의는 일상에서도 가볍게 발생한다, 말다툼이나 단순한 언쟁에서도 나와 다른 의견을 내거나 나를 부정하는 누군가가 죽이고 싶게 밉다, 그 감정은 너무 치사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나도 싫고 그렇게 미운 꼴을 보이는 상대도 미워서  도데체 어찌해애 할지를 모른다, 그 미움이 내 속을 꽉 차서 나를 망가뜨리는 게 너무 싫다,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내밀 수도 없지 않은은가

미도리는 그런 갈등앞에 있다, 남편과의 사소한 말다툼에서 두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고  그 싸움은 끝을 보지 못하고 그냥 두 사람이 피하듯 지나가고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그 뭔가 알 수 없는 찝찝함을 견디지 못한다, 남들은 그저 신혼의 알콩달콩한 싸움이라고만 보지만 미도리는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심각하게 남편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기도 그런 문제이다, 일상에서 누군가를 미워했다가 그런 내가 부끄러워서 다시 상대에게 잘 해준느 그런 감정의 반복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무시하기는 힘들다,

 

마음에 꽉 찼던 악의를 터뜨려야 하는 그 순간 사오리는 올려차기 내려차기가 아니라 그저 단 한마디 '미안해" 그게 전부였다,

그 순간 악의는 푸르르.... 구멍난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이 흔적도 없어진다,

사오리가 가진 악의는 동생 시오루에게 위안을 얻는다, 히키코모리였던 시오루는 누나의 악의에 찬 복수에 관심을 가지고 삶의 활력을 얻는다, 사오리의 악의는 그 기운을 다 빼고 이제 동생의 사회성에 그 힘을 돌리려고 하지 않을까 싶다

 

<아름다운 딸>의 가요코와 레이  <하늘을 도는 관람차>의 아사미와 시게하루

<맑은 날 개를 태우고>의 노리유키와 전 여자친구의 경우처럼 누군가가 나에게 악의를 가지고 저주를 한다고 믿는 것도 누군가에게 악의를 보내는 것 못지 않게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상대의 정확한 의도는 모르지만 그가 나를 미워한다. 저주한다는 생각자체가 많은 힘을 쓰게 하고 스스로를 지치게 한다. 그건 사실을 확인하기도 참 그렇다.

나를 무시하고 욕을 하고 소리치는 상대 혹은 은근하게 무시하고 간을 보는 상대에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요코처럼 그저 저 아이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과 그래도 순간적으로 팔을 잡아서 살려내는 마음의 무게가 어디로 기우는지는 나도 모른다,

시게하루 역시 아사미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지 아직도 분노를 담고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상대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그건 스스로에게도 수치감이다,

내가 미워하는 것 미움을 당하는 것 그건 악이면서 동시에 수치다, 그건 노리유키가 보여준다,

 

살면서 눈군가와 부딪치고 상처받고 상처주면서 우리는 무심코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고 때떄로 그 미움을 오래오래 마음속에 품고 있다,

그 미움은 냉장고 속의 썩은 한알의 과일이다, 그저 한알이지만 그것이 계속 냉장고 속에서 다른 야채나 과일과 함께 있으면 다른 야채와 과일도 덩달아 썩어들어간다,

그 미움은 그렇게 나를 가득 채우면서 나를 더럷히고 나를 힘들게 한다,

사소한 미움 사소한 감정

누구에게도 말하기 치사하고 유치한 그 감정을 우리는 어찌 할 수 없어서 무시하고 외면하지만 냉장고 속의 썩은 과일 한알처럼 계속 번져가는 것이다,

이런 사소한 감정을 작가는  좀 과장되게 말하면 일본 소설들은 너무나 확대해서 보여준다,

이런 게 있지 않니? 이런 적 있지 않니? 하면서

 

이 책 속의 일상들은 쓸쓸하면서 동시에 섬뜩하다,

누군가에게 품은 적대가 어떻게 나에게 돌아오는지 그리고 어떻게 번져가는 지

무심하게 던진 그 한마디의 말 그 한줌의 감정이 어떻게 스스로 자라가는지를 세심하게 보여준다

누구나 한 번 쯤 경험한 일이기에 괜히 뒷목을 쓸어보게 만드는 책

그 책이 바로 이것  죽이러 갑니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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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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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란다.

 

 

어떤 일이 내 앞에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리고 똑같은 일이 일어나도 대응하는 사람의 자세도 제각각이다.

삶을 어떤 자세로 맞이하는가 하는 것이  제각각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다르다.

어떤 것이 옳다고 틀렸다고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 알란 노인처럼 그저 닥치는대로 묵묵히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을 거고

그 앞에서 한걸음을 떼기가 몹시 힘들만큼 고민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짧은 삶속에서 알게 된 것은

고민을 하건 그저 부딪치건 받아들이는 강도는 비슷하다는 것

 

나이 들어서 알게 된 삶의 지혜 하나.

할까 말까 하는 것은 일단 하고 보라....

 

이 명언에 딱 어울리는 삶을 한세기동안 살아온 알란 노인이 여기 있다.

그는 어떤 선택에서도 후회하지 않는다.

어려움이 닥치고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그저  앞으로 걸어갈 뿐이다.

그리고 일은 언제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나가 있고 노인은 그 일의 의미를 고민하기 전에 다시 행동을 시작한다.

 

내 삶의 주체는 나다... 이 진부한 경구는 오래되었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알기는 힘들었다.

주제는 나니까 내 멋대로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채워나가는 건 결국 나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인생의 모퉁이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모통이의 무언가를 어떻게 마주할지도 사람마다 다르다.

이제 나는 조금 오픈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난 아직 백세가 되려면 많은 시간이 남아있고 조금은 내 멋대로 움직여도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싶다.

무언가를 핑계대기엔 내 삶은 소중하다.

무언가 상처로 주저하기에는 내 삶은 너무 유한하다.

고로 나는 결정했다.

노인의 유쾌한 삶은 바라보면서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는... 진부하지만 유쾌한 ...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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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ㅐㅇ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 주었다. 이모의 가르침대로 하나면 나는 김장우의 손을 잡아야 옳은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이모의 죽음이 나로 하여금 김장우의 손을 놓아버리게 만들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여졌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겐 한없는 불행이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하게 비췄던 어머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면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다.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다.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휸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 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스물여섯의 안진진은 이렇게 살아선 안된다고 온 힘을 다해 생애를 걸며  살아야 한다고 부르짖던 그날로 부터  일년을 살았다.

그 동안 안진진이라는 인물과 주변인의 이야기가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엄마와 쌍둥이로 태어나 좀처럼 구분이 되지 않던 이모 그 둘은 결혼을 시작으로 서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간다.

엄마의 딸로 엄마의 삶을 바라보고 이모의 삶을 바라보면서 안진진은 안정되지만 재미없고 계획대로 되어가는 삶과 절대 지리멸렬함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늘 무언가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삶을 보며 자신의 삶을 생각하고 계획한다.

내 마음이 떨리는 것. 내 마음이 편안하고 솔직해지는 것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도 하면서 모순되고 복잡한 삶을 받아들인다.

 

이미 나는 가슴 떨리는 연애의 유효기간도 알고 속물적이지만 안정적인 삶이 주는 기쁨도 알 고 있다. 파란만장하고 지리멸렬해지지 않은 풍파가 어떤지도 그리고 그것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믿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

나의 그때와 다르지 않은 안진진의 고민들을 조금은 멀찍이서 구경하면서 결국 그녀의 선택이 완전한 해답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점수는 받을 만한 선택이라고 믿는다.

삶을 제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늘 계획하고 수정하고 돌아보면서 반듯하게 살면서 행복하고 풍요하게 사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삶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늘 나의 예상을 벗어나기 마련이다.

어릴 적에는 어른이 되면 모둔 답을 다 아는 줄 알았다. 어른들은 정답지를 가지고 있어서 절대 틀리지 않고 바른 쪽으로만 간다고 믿었다. 무엇이 바른 것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물론 어른은 아이보다 어느정도 답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제각각 가진 답들이 다 다르다는 거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삶만큼 많은 정답이 있다는 것

그의 정답이 나의 것이 될 수 없고 나의 정답이 그의 것이 될 수도 없다는게 문제다.

 

지지리 궁상맞고 피하고 싶은 내 삶도 내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하면서 당당하게 허리위에 손을 얹고 세상을 향해 소리칠 수 있는 뻔뻔함도 필요하다. 남들이야 뭐라고 하든 바꿀 수 없다면 안고 가야할 내 몫이 있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내 모습 남들이 보는 내모습 바꾸고 싶은 내모습 모두가 나다,

그래서 삶은 모순이고 정답이 없지만 나는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당당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안진진.. 그녀의 선택이 후회로 변할 수도 있다.

이모의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투정이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응석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내가 남의 삶을 살아보지 않은 이상 입바른 소리는 사절이다.

그에게는 그의 삶이 있고 내게는 나의 삶이 있다.

나는 내 삶을 살아갈 뿐이다.

타인의 삶은 참고는 될지 몰라도 그걸 흉내낼 수도 없고 따라 갈 수 도 없다. 설령 따라간다더라도 똑같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사람이 다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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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책을 덮고 생각해 봤습니다.

민주주의라든가 저항. 정의 투사. 시위. 희생자와 가해자. 인간본성의 사악함과 선함

국가란 무엇인가 사회는 어떻게 나아가야하는가

인간은 무엇인가...

기타 등등

관념적이고 이론적이며 모든 것을  뿌옇게만 보여주는 저 어휘들이.,갖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런 모든 의미와 정의들이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

모든 것을 전해듣고  한단계 걸러서 보고 알게된 사람들

그럼에도 선량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왠지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 그 자리에 있어서 그 것 만으로도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스스로를 몰아가는 사람들에게 정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말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냥 책 장을 덮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전에도 썼었는데 광주의 일은 내게 이야기로 왔습니다.

대학시절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5월 축제에 걸렸던 광주의 사진들이었고 설명이었습니다.

그건 적나라한 사실이었고 진실이었지만 그냥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그냥 안다는 것만으로 넘어가버리는 것

알고 있으니까 마주 하고 싶지 않은 일로 그렇게 넘겨졌습니다.

모래시계를 방영하고  노골적인 영화 화려한 휴가를 상영할 때도 모른 척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준비 없이 영화 '스카우트'를 보았습니다,

거기엔 날 것인 채 익숙한 폭력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는지 누구에게 하는지 전혀 모른 채 시키는대로 누군가를 몽둥이로 때리는 임창정을 보면서 그리고 광주에서 첫사랑을 만나 설레는 임창정을 보면서 처음 '그 곳'이 궁금해졌습니다,

이젠 무디어져서였는지도 모르겠네요

영화 속 광주 이야기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원치 않게 휩쓸리고 기다리고 긴장하고 모든 것을 놓아버린 사람들 이야기였습니다.

그냥 뭉뚱거려 말하는 사태니 운동이니 하는 것이 아닌 그 속에 사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동화책 "오월의 달리기'를 읽었습니다

책을 읽지 않은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몇번을 목이 메어 읽어 내리질 못했습니다.

그저 대표로 뽑혀서 달리는 것만 할 줄 알았던 그 소년들이 본 것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당혹스러웠습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왜 그래야만 하는 지도 모른 채 여관에 숨죽여 있어야 하고 폭력을 목격하는 아이들이 눈물 났습니다.

그 때 그곳에는 내 아이 또래의  아이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영웅도 아니고 시민군도 아니고 투사도 아닙니다. 더우기 빨갱이거나 폭도도 더더구나 아니었지요.. 그런데 누가 그런 이름을 붙였을까요?

 

 

 

이야기의 힘이 이런거구나 하고 알았습니다.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하나 사람을 보여주는 것

그게 내게 오는 울림은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습니다,

계속 다음장을 넘기고 싶은데 넘기기가 힘들었습니다.

한 장이 끝나면 오래오래 쉬어야했지만 그래도 책을 놓기는 싫었습니다.

동호 . 정대 .은숙 선주 정미...

그들에게도 이름이 있고 가족이 있고 살아온 이야기가 있고 기쁨과 슬픔 분노와 웃음이 있었습니다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일어나서는 안되는 상황에서 그들은 수치심과 죄책감을 가지게 됩니다.

살아남아서 죄스럽고 그 과정이 수치스럽습니다.

 

눈이 더 나빠져 가까운 것도 흐릿하게 보이면 좋겠다고 너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흐릿하게 보이지 않는다. 무명천을 걷기전에 너는 눈을 감지 않는다. 피가 비칠 때까지 입술 안쪽을 악물며 천을 걷는다. 걷은 다음에도 천천히 다시 덮으면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 달아났을 거다.라고 이를 악물며 너는 생각한다. 그때 쓰러진 게 정대가 아니라 이 여자였다 해도 너는 달아낫을 거다. 형들이었다 해도 아버지였다 해도 엄마였다 해도 달아났을 거다.

체머리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손녀 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쩍거리는 노인의 두눈을 너는 마주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어린새- 45

 

정대를 모른 척 한 것. 다시 다가가지 않은 것 혼자 겁에 질려 달아난 것

그것은 동호의 죄책감이고 수치였다

겨우 열다섯 소년이 총앞에서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연신 옆에서 피흘리며 쓰러지고 두들겨맞아 침을 흘리고 있는데 그 소년은 무얼 할 수 있었을까

그 소년이 달아나는 걸 손가락질하고 욕할 사람은 없는데 동호는 자꾸 부끄럽고 죄스럽다.

누가 소년에게 그런 짐을 지웠는가...

 

키가 자라고 싶었지

팔굽혀펴기를 마흔번 연달아 하고 싶었지

언젠가 여자를 안아보고 싶었지 나에게 처음으로 허락될 여자

얼굴을 모르는 그 여자의 심장 언저리에 떨리는 손을 얹고 싶었지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 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들의 얼굴을 보고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의 악몽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검은 숨-57 58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거칠게 꿰매어진 문장들 문단째로 검게 지워진 자리들 우연히 형상을 드러낸 단어들을 그녀는 생각한다. 당신을. 나는. 그것은. 아마도. 바로. 우리들의. 모든 것이. 당신은. 어째서/ 바라봅니다. 당신의 눈은. 가까이에서 멀리에서. 그것은. 또릿이. 지금. 좀더 희미하게. 왜 당신은. 기억했습니까. 숯이 된 문장들과 문장들 사이에서 그녀는 숨을 몰아쉰다. 어떻게 분수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칼을 찬 장수의 검은 동상을 등지고 멈추지 않고 그녀는 걷는다. 목도리를 눈 밑까지 올리고는 숨을 쉴 수 없어 시큰거리는 붉은 광대를 드러낸 채 걷는다.

 

                                                                          79-80 

 

 

네가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꼿들 속에 눈속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꽃은 양초불꽃이..            

                                            -일곱개의 뺨- 102-103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것 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가속에서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란 것을 ,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선생도 인간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인간입니다.

날마다 이 손의 흉터를 들여다봅니다. 뼈가 드러났던 이 자리 날마다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들어갔던 자리를 쓸어봅니다. 평범한 모나미 검정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립니다,. 흙탕물처럼 시간이 나를 쓸어가길 기다립니다.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움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쇠와 피-  134-135

 

 

무엇을 말해 줄 수 있을까

그와 같은 인간이 내가 무엇을 대답해 줄 수 있고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어색하고 옹졸한 침묵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너무나 무겁게 어깨를 눌렀습니다. 그저 헛되고 잡을 수 없는 막연한 무언가 이외 살아있고 숨쉬고 위로가 되는 생생한 언어를 말할 수 없었습니다.

 

오래전 동호와 은숙이 조그만 소리로 나누던 대화를 당신은 기억한다. 왜 태극기로 시신을 감싸느냐고 애국가는 왜 부르는 거냐고 동호는 물었다. 은숙이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 거야.

그 여름으로 부터 이십여년이 흘렀다. 씨를 말려야 할 빨갱이 연놈들 그들이 욕설을 뱉으며 당신의 몸에 물을 끼얹던 순간을 등지고 여기까지 왔다. 그 여름 이전으로 돌아가라 길은 끊어졌다. 학실이전 고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 밤의 눈동자 -      173 

 

 

그저 겨울이 지나간게 봄이 오드마는. 봄이 오면 늘 그랬드키 나는 다시 미치고 여름이먼 지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가을에 겨우 숨을 쉬었다이. 그러다 겨울에는 삭신이 얼었다이.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다시 와도 땀이 안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졌다이.

                                                                    

                                       꽃핀 저쪽으로 - 190

 

나무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함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숱이 적은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모아쉽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엄마 저쪽을 가아 기왕이면 햇빛있는 데로 못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걸아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깜깜한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핀 쪽으로........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아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눈덮힌 램프  211

 

책을 읽으며 너무 목이 꺼억거리셔 몇번을 덮었습니다.

다 읽고 왜 내가 울음이 터지려고 했는지 생각했습니다,

이야기가 슬퍼서? 너무 마음 아파서? 소년이 애처롭고 사람들이 한없이 가엾어서?

아니었습니다.

내 울음은 수치심과 죄책감이었습니다.

너무 미안해서 너무너무 미안해서..

여기 이시간 아무렇지도 않게 크리스마스를 생각하고 선물 꾸러미를 생각하고 내일 먹을 저녁찬거리를 생각하고 춥다고 느끼고 보일러를 올랄까 말까하는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울었습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광주를 알고 있고 용산을 알고 있고 가까이는 세월호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함께 분노했고 슬퍼했고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는 건 하나도 없었고 한 일도 하나도 없더라구요

그저 알고 있다고 믿은게 전부였습니다.

그건 내 손톱끝만큼도 되지 않았는데 그게 전부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뭉뚱거려진 시람들 시민들 하생들 세입자들

나는 그렇게 신문에 씌여진 전체로 사건을 보았고 알았습니다.

그 안에 동호 정대 은숙 선주 진수가 있다는 것

살아 숨쉬고 우리처럼 웃고 화내고 무섭고 겁이나서 도망가고 싶은 그러나 남을 수 밖에 없던 한조각 양심만을 믿고 살았던 사람이 있다는 건 몰랐습니다.

 

역사책을 읽고 공부할 때 우리는 사건을 읽고 외웁니다.

연도를 외우고 사건의 시작과 중간 끝을 읽고 그 의미를 읽어보고 우리는 알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건 하나하나를 이루는 한명한명 사람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선택하고 눈을 감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역사가 될거라는 걸 몰랐습니다. 어떻게 기록될지 어떻게 기억될지를 인식하지 않고 무작정 살고 있는 중입니다.

나 하나쯤 몰라도. 지금은 그냥 지나쳐도.. 난 지금 바쁘니까.. 너무 아프고 힘드니까

그렇게 지나친 우리의 현재. 그리고 기록될 역사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늘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일어나고  마음이 먹먹하고 그리고 잊혀졌습니다.

우리가 스치는 많은 일들 속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야했더군요.

사건의 발단과 전개와 결말 그 의의가 아니라 그 속에 숨은 사람들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모욕받지도 말아야 합니다. 뭉뚱거려서 존재해서도 안됩니다.

아직도 많이 아프고 정면으로 마주하기 힘든 이유는 그것이 여전히 진행형이라서... 라는 걸

책장을 덮으면서 알았습니다.

그래서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울었습니다.

 

수치심과 죄책감은 사람만 가지는 감정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감정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뻔뻔하고 무미건조한  감정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아프다는 걸 느끼고 미안함을 느끼고 반성하고 생각하면서 사람은 진화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인간적이고 스스로를 존엄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 죄책감과 수치심이 스스로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강요될때 사람은 한없이 비참해져버립니다.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고 강요되어 나자신은 한없이 초라하고 의미없고  살과 피와 고름과 똥과 욕구만 가진 존재라는 걸 알아버려서 나오는 수치심은 사람을 미치게 합니다.

모든 감정은 스스로 느낄 때 그 의미가 있는 법입니다.

누군가에게 강요당한 감정 .. 그건 더 이상 폭력입니다.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하고 아름답고 존귀하게 여기지 못하게하는 감정의 조작이 무섭다는 걸 책에서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고문과  폭력 폭언이 사람을 얼마나 망가지게 하는지 사람을 무너져내리게 하고 삶을 놓아버리게 한다는 걸 ... 다시 생각합니다.

 

'너'라는 이인칭 시점이 그 대상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존중해주는구나를 알았습니다.

조금은 낯설고 어색해보였는데 이 작품에서 '너'와 '당신' 은 그 대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게 만드네요..

 

이 책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 하나하나가 바로 거대한 사건이었다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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