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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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무라는 소위 행복한 사람이고 남들이 충분히 부러워할만한 사람이다.

예쁜 아내와 딸이 있고 안정된 직장이 있다. 게다가  누구나 다 아는 대 재벌이 장인이다.

때문에 남자 신데렐라라고들 하지만 정략적인 결혼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선택한 결혼이며 결혼으로 인해 처가쪽의 권력다툼에 끼어들지도 않았고 어쩌면 차라리 맘편하게 회사의 중심축이 아닌 주변부인 홍보실에서 근무하면서  편안하지만 오래오래 다닐 수 있는 든든한 보험을 지닌 셈이 되었다.

통속적으로든 일반적으로든 충분히 행복하고 팔자 좋은 사람이다.

 

그런 스기무라가 사건에 뛰어들어 사람들의 뒤를 조사하고 문제를 고민하고 풀어내는 일은 좀 의외이긴 하다. 사건이라고 하기에도 소소한 일들이고 또 스스로가 문제를 풀겠다고 주체적으로 뛰어들었다기 보다는 장인의 거절할 수 없는 의뢰로  책을 출판하는 일을 도와준다고 시작했지만 사람들 사이의 불편한 기색이나 감추는 모습들을 예민하게  느끼면서 사고는 사건이 되고 그 주된 사건과 다른 사건이 줄줄이 드러난다.

 

스기무라는 참 예민한 사람이다. 남의 감정에 쉽게 이입되고  그 마음에 어쩔줄 몰라하며  끊어도 상관없을 관계를 계속 이어간다. 개인적인 궁금함도 물론 포함되어 있겠지만 사람을 쉽게 잘라내지 못하는 성격도 한몫한다. 그저 책을 내겠다는 자매의 바램에만 촛점을 맞추었다면 그냥저냥 책을 내고 끝났겠지만 두 자매의 갈등을 포착하고 감추어진 비밀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지고 인간에 대한 예의가 첨가되고 누군가의 아픔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연민이 뿌려진다. 그렇게 계속 사건의 깊은 곳으로 점점 다가간다. 알지 못해도 상관없을 일들을 알게 되고 나랑 관계없는 비밀을 알지만 그 비밀을 관계자에게는 절대 말할 수 없는 상황을 알게 되고 혼자 괴로워하지만 결국 혼자 다 짊어지고 자기 속에만 남겨놓기로 한다.

스기무라는 좋은 사람일까?

다정한 남편이고 아빠이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하다.

항상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그 사람의 입장에 맞춰주고 스스로 늘 행복하고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스기무라의 속에는 깊은 갈등도 있다.

자기의 행복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하는 불안감. 자가기 받은 행운에 비해 자기가  지탱할 수 있는 운의 총량은 단지 음료컵 크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전전긍긍하기도 하고 그 작은 컵이라도 소중히 해야겠다고 마음 먹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산다.

결혼으로 인해 본가에서는 죽은 사람이 되어버렸고 (물론 형제와는 연락을 하지만) 처가에서도 구석자리에 만족할 줄아는 절제만 보인다.

그는 한편으로는 행운아이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힌 불행하다.

본인의 선택이지만 뿌리째 뽑혀서 새로운 토양에 뿌리를 내려야하는 운명이다.

결혼으로 환경이 바뀌고 직장이 바뀌고 처신해야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누구와도 친하지만 퇴근후 함께 술잔을 기울일 동료가 없고 옛친구들은 이제 서먹하다.

참 좋은 사람인데... 참 우울하기도 하고 어둡기도 한 스기무라를 본다.

그가 사건에 빠지고 사건을 위해 동분서주하게되는 건 어쩌면 모든 걸 가졌지만 텅 비어버린 마음속을 채우기 위해서란 생각을 한다.

내게 필요하지만 내가 없어도 그렇게 흔들리지 않을 가정이나

이젠 남처럼 되어버린 본가나

언제 내쳐져도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되는 처가와 회사가 아니라

오로지 내가 해낼 수 있는 내 일이 갈급했을것이다.

사건을 마주치고 관계자를 만나고 그들을 위로하고 마음을 알아주는 일은 오롯이 스기무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사건이 별볼일 없이 시시하다고 해도 끝까지 해낼 수 있는 건

스기무라가 가진 성실성도 한몫하지만 그가 가진 텅 빈 마음이 큰 탓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건... 스기무라 시리즈가 회를 거듭하면서 어쩌면 나도 스기무라를 그저 팔자좋은 생활밀착형 탐정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착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희망장>을 읽으며 이혼하고 작은 사무소를 연 스기무라가 참 행복해보였다.

물론 이혼하고도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가족이 아직 있고 나름 본가와도 관계가 다시 괜찮아졌기도 하겠지만 이제 스기무라가 누구에게 맞춰줄 필요없이 오롯이 자기 모습 그래도 살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탐정이라기 보다는 직장인 처럼 성실하고 상담가처럼 타인의 마음에 잘 공감해주는 스기무라

무심하게 읽었던 전 작들에서 작고 소소하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을 불안속에 살고 있는 스기무라를 다시 본다.

비현실적인 좋은 사람이라 조금 정이 안가긴 하지만..

그래도 그가 이제 행복해졌다는 생각을 그의 첫 등장작에서  알게 되었다.

 

사족이지만...

세상이 각박하고 뉴스에서 현실같지 않은 사건사고가 연속일 때

차라리 이렇게 소소하고 시시한 사건을 심각하게 파해치는 이야기가 위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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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9-04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범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감하기 힘들어요. 우리 사회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너무 많습니다. 그게 터지고 나서야 우리는 폭탄이 생겼고, 터진 원인을 알기 위해 분해된 폭탄 파편들을 파헤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