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씻는 날 학고재 대대손손 5
이영서 글, 전미화 그림 / 학고재 / 2011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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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했다,

사회성이 많이 떨어지는 편인거 같다고 했다,

친구들이랑 말도 잘 하지 않고 혼자 있고 표정도 밝지 않다고 했다,

걱정해주는 마음은 고마웠다,

그러나 너무 필요이상 간섭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한편으로는 왜 내 아이만 이렇게 티가 나는지 짜증이 났고 왜 내 문제도 아닌 것에 이렇게 죄스러워야 하고 불편해야하는지 하는 이기적인  마음도 생겼다,

 

지금 사춘기라서 그렇다고 믿기로 했다,

흔히 중 2병이라는 것이 일년 이년 정도 먼저 올 수 도 있다, 물론  늦게 올 수도 있다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냥 아이의 특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예민하고 까탈스럽고 섬세해서 스스로가 아마 가장 힘들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게 아닌데.. 이런 건 아닐지도 몰라,, 라고 가장 크게 느끼고 깨닫지만 그래도 타고난 성정 때문에 늘 혼자 갈등하고 힘든 건 나보다도 아이일 거라고 믿기로 했다,

모른 척 하기로 했다,

무시하는게 아니라 모두가 널 걱정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니가 문제가 있어보인대 라는 말을 무시하기로 했다,

너는 그냥 조금 다른 것 뿐일거야

사람은 저마다의 리듬을 가지고 있는거야

누군가는 느리고 우아한 왈츠의 리듬이고 누군가는 격정적인 탱고 리듬일테고 또 누군가는 느리고 한스러운 살풀이 리듬을 가지고 있겠지

니가 가진 리듬은 낯설어서 불편할지 몰라.. 예전에 어떤 음악가가 만든 곡이 너무 낯설고 불편해서 모두 악담을 퍼붓고 음악도 아니라고 했는데 그게 지금은 대단한 작품으로 평가받지

물론 니가 나중에 대단한 작품이 될거라고 부담주는게 아니라

누구의 리듬이든 다른거지 틀린건 아닐거라는 거지

누군가에겐 한없이 신나고 자유로운 락도 누군가에겐 그냥 소음이니까

가끔 너무 다정하고 남의 말을 공감해주고 조곤조곤 이야기해줄 때는 얼마나 이쁜데

너의 시간은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속도로 흐르고 가끔 다른 곳으로 돌아 흘러가는 거라고 믿어주기로 했다,

물론 아이가 이유을 모르게 짜증을 내고 도무지 내 상식으로는 알 수 없는 일들로 토라지고 삐질때는 나도 뚜껑이 열리지만.. 모두가 같은 상식을 가진것은 아니고 모두에게 당연한 건 셍각보다 적다고 믿기로 했다,

적당히 모른 척하고 다시 헤헤거리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받아주고

이쁜말만 해주려고 노력하고 (정말 노력하고) 그냥 니가 별난 건 아니라고 여기려고 했다,

그래서 조금씩 괜찮아지고 편해지는 걸 느낀다,

또 언제 뚜껑 열리게 하거나 스스로 자존감이 낮아져서 토라지고 예민해질 수 있지만

지금 예쁠 때 감사하기로 했다,

 

아이가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모범생같다 는 말이라고 했다,

그냥 외모에서 행동에서 믿음직하고 성실한 인상을 주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사실 성실하고 착하다,

늘 안타까운게 요령이 없고 딱 노력한 만큼만 결과가 나와서 아쉬웠다,

누구는 쉽게 무언가를 얻기도 하고 운이 좋아 잘 피해가는 일들도 있는데

(심지어 엄마인 나도 그런 경험을 수없이 했는데)

아이는 딱 자기가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얻을 뿐... 인것처럼 보였다,

엉덩이가 무겁고  이해는 좋아도 암기가 나빠서 오래오래 앉아 있어야 하고

시험때는 남들이 하는 톡도 문자도 더 끊어야 겨우 진도를 맞출 수 있어서

누가 봐도 늘 공부하는 아이처럼 보이고 늘 모범생처럼 보이고 늘 우등생처럼 보일거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게 정말 싫다고 했다,

그 말의 이면엔 공부밖에 모르고 공부에 동동거리는 삔따라는 의미도 있다고

가끔 친구들이 대놓고 넌 모범생 같애 니가 공부를 젤 열심히 하는 거 같아 (젤 잘하는게 아니라)

그런 말을 툭툭 던지면 그게 바늘 처럼 콕콕 찌른다고 했다,

그게 나쁜게 아니라고 얼마나 좋으냐는 말은 이미 의미가 없다,

공부벌레같고 요령없고 고지식한 것

그리고 특징없고 희미하게 착하기만 한거

그건 싫다고 단호하게 말 했다,

느리고 큰 키가 흐느적거리고 조금은 나른해 보이는 분위기가 싫다고....

그게 니가 가진 가장 큰 달란트일지도 모르는데...

아이는 자기가 가진 것보다 남들이 가진 것을 부러워한다,

날라리처럼 보이는데 의외로 성적이 잘 나오네

놀기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뭐 그런 팔방미인을 꿈꾸고 있는 걸까?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렇게 다른 걸 쫒다가 내가 가진 장점을 그냥 버릴까 걱정스럽다,

 

 

김득신은 조선중기에 살았던 문인이다,시인이다,

어려서부터 너무나 어리석고 둔해서 남들보다 천자문도 늦게 떼고 환갑을 앞두고 급제해서 벼슬에 나아갔다, 그러나 김득신은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남들보다 아둔하고 느리니까 그만큼 더 많이 더 오래 하며 된다고 믿었다,

만번 이상 같은 책을 읽고 또 읽고

그렇게 읽어도 돌아서면 기억나지 않는 경험을 하는 동안

김득신이라고 허망하지 않았을까?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다 떼려치고 말지 싶게 화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했던 모양이다,

만번이 아니면 만 한번 만두번 ....

 

그림책은 그 김득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남들보다 늦다고 말이 많은 친척들

친구들은 벌써 책을 다 외우고 떼서 책씻기를 하는데 그는 아직 천자문이다,

그의 글 읽는 소리를 들은 그의 하인마저 줄줄 외고 있는 걸 단지 그 혼자 못 외웠다,

그 부모라고 포기 하고싶지 않았을까

아이에게 미련하다고 한소리 하고 닥달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러나 아이가 계속 미련하게 하고 있다면 역시 그의 부모처럼 그렇게 기다릴 수 밖에 없을까

이 길이 아닌가벼.. 하며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아이의 손목을 끌고 다니고 싶지 않았을까

스스로 바보같다고 눈물을 흘리는 몽담이(김득신의 어릴적 이름)에게 아버지는 태몽을 이야기해준다

"너는 학문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게야

  아비는  한 번도 그걸 의심해 본 적이 없어"

 

아비의 믿음에 몽담이는 말한다

 

" 만번을 읽겠습니다.

  깨칠 때 까지 읽고 또 읽겠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몽담이도 책씻기를 하는 날을 맞는다,

남들보다 늦었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잘 가고 있다는 증거다,

훈장 선생님은 몽담에게  없을 無 를 써 준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장이란 뜻일까 하고 울음이 터질것 같은 순간 훈장 선생님이 말씀 하신다

" 오늘 몽담이의 책을 보니 난 비로소 부지런 할 근 (勤)자의 의미를 알겠구나

  배움은 그 시작도 마침도 모두 부지런 함이다

  몽담이는 그것을 잘 아는구나 난 몽담이에게 더 당부할 것이 없다"

 

그림책 내내 우울했던 몽담이의 얼굴은 無를 받아들고 비로소 환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책씻기  즐거운 시간들

 

몽담이는 다른이와 다른 시간의 흐름을 살고 조금 느리게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멈춘건 아니었다,

모두가 안달할 때 아버지와 훈장님이 그걸 알아 주었다,

몽담이가 아무리 엉덩이가 무거운들 모두가 믿어주고 기다리지 않았다면 훗날 김득신이 될 수 있었을까

사람은 저마다 다른 시간의 흐름을 살고 있을 거고 조금씩 다른 방향을 가고 있을 것이다,

그게 비슷해보이기도 하고 좋아보이는 것 납득이 가는 게 분명 있겠지만

세상엔 좀 이상해 보이고 고쳐주고 싶고 아닌거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조금 기다려주고 그러려니 하면 그것도 그냥 비슷하고 납득할 수 있는 게 되지 않을까

억지를 부리고 싶다,

성실한게 참 미덕인 세상이 있었는데

이젠 모든게 빨라지고 모든게 반짝거리는 창의력의 문제이고 모든게 타고난 운이나 능력이고

왠만한 노력은 누구나 한다고 노력의 가치는 이제 헐값이 되었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더 중요해진 세상이다,

 

아이는 고민하고 또 상처받고 그러다 좋아지기도 하며 자라는 중이다,

책을 읽어 주지 않아도 김득신도 되었다고 그를 걱정하는 척 혀를 차는 숙부도 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필요한 거 같다,

이렇게 바라봐 주라고 기다려 보라고 ...

그러다 아니면..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가끔 뚜껑 열리고 조급해지는 나에게 몽담이는 수줍고 나른하지만  자신있게 웃고 있다,

그냥 기다려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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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19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회가 풍요로워질수록 인내심의 가치는 점점 희미해집니다. 급격히 빨라지는 사회 변화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게 되니까 일을 빨리 끝내야 직성이 풀립니다. 천성적으로 행동이 느리거나 신중하게 일을 하는 사람들은 괴롭습니다. 나태한 성격으로 오해를 많이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