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 작품속의 등장인물은 어느 누구도 타인을 배제하지 않는다,

마을에 새로 들어오는 스즈에게도 나와는 다른 성향의 타인에게도 모두를 끌어안고 간다,

환타지적인 요소라고도 할 수 있지만  가마쿠라 라는 곳에 발을 디디는 순간 누구든 우리가 되어버리고 가마쿠라를 거쳤서 어디로 갔던 누구든 여전히 우리가 된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

어쩌면 조금 조심스럽고  적당한 간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어색함이랄까 거리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 만큼 거리는 있을 지언정 사이에 금을 긋지는 않는다,

먼 우리 가까운 우리 조금 어중간한 우리들이 모여  이야기를 이어간다,

새로운 동생을 바라보는 언니들의 시선, 전학생을 바라보는 동급생들의 시선

다리를  잃은 친구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

유부남을 사랑하는 사치를 바라보는 동생들과 축구 코치의 시선

스포츠 용품 점장과 카페 주인 아저씨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그 두사람이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 등등

모두가 타인임을 인식하면서 동시에 우리라고 생각한다.... 고 나는 믿는다,

만화니까 할 수 있는 일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곱권의 만화속에서 누구하나 타인은 없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아버지는 말한다

타인의  신발에 발을 넣어보기전에 판단하지 말라고

우리가 은연중에 받아들인 어떤 가치관이나  그냥 습관적으로  여기는 생각의 좌표속에 어쩌면 큰 편견이 있고 어떤 틀이 있어서 우리와 타인을 구분하고 타인을 나쁘다고 규정하고 벽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흑인이 나쁜게 아니고 마을에서 은둔하고 있는 이웃이 나쁜게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잘 모를 뿐이다,

알고 나서 그가 악한 사람인게 드러난 후에 미워해도 늦지 않다,

우리가 타인과 다른 건 당연하지만 다른 건 틀린 게 아니라고 남매에게 말해준다,

 

 

 

 

1968년  아이오와주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푸른눈 갈색눈의 체험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누군가를 편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차별을 하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는게 아니다,

아니 이유는 있지만 그 이유의 근원이 늘 옳은게 아니라는 것

누구든 누구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다른 것들사이에서 기어이 동질감을 찾아내고 학연 혈연 지연 피부색 종교 신념으로 덩어리를 만들고 다른 덩어리들과 구분하면서 우리를 더 멋지고 옳다고 믿기위해 다른 덩어리들을 계속 깍아 내린다,

내가 더 우월해지는 일은 내가 올라갈 수 있는 어떤 방향이 아니라 타인들을 끌어내리른 것으로 드러내려고 한다,

 

#2

 

현재 우리 사회에도 많은 우리와 많은 타인이 존재한다,

다문화가정이 많아진 만큼 인종적인 문제도 새롭게 드러나고

남자냐 여자냐의 문제

어느 지역 출신이냐의 문제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의 문제

나아가 집의 평수에 따라 사는 동네에 따라

심지어 어떤 계급의 부모를 가졌느냐에 따라 많은 구분들이 있다,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끈끈한 의리를 드러낼수록 그 끈끈한 우리바깥이 존재할 수 밖에 없아,

우리는 점점 끈끈해지고 의리있고 간도 빼주지만 우리가 아닌 타인은 그냥 투명해서 보이지 않거나  두렵거나 성가실 뿐이다,

차라리 콩가루처럼 하나하나 제각각 제멋에 놀고 나만 생각하고 고민하는 쪽이 오히려 타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본다,

나만 빼고 모두가 타자라면 타인이라면 그건 외로울 일도 없고 이방인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을까

너무 극단적인가?

 

어쩌면 이제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없어지면서 그 틀은 더욱 견고해지고 우리끼리라는 내부적 단결이 강해지고 그 내부의 순수함을 더 강하게 지키고 싶어한다,

조금이라도 타인이 섞이는 것 그래서 어색해지고 내키는대로 말하고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어색하고 싫어서 그저 편하고 잘 아는 ... 서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를 더 편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익숙함이 편해지고 더 이상 우리 이외의 것에 호기심이 생기지도 않고 관심이 생길 필요가 없다면 벽은 더욱 높아지고 견고해진다,

편한 걸 마다할 이유가 없다,

편하고 익숙하다는 것만으로도 차별을 진행된다,

어떤 인식이 없고 나는 아무런  편견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나만의 익숙함에 만족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차별이 될 수 있다,

상상력을 가지고 누군가 다른 이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것

차별을 줄이는 건 거기서 시작할 수 있다,

 

#3

 

모든 남자가 여혐은 아닐것이고 잠재적 범죄자는 아니라고 주장만을 할게 아니라

여자들이 두려워하는 현실을  한 번 쯤은 상상해보고 공감하려고 해보라는 거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다닐 수 있는 밤길이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의 원인일거구

그냥 내 마음이 급해서 발걸음을 빠르게 하며 앞사람을 따라잡았던 그 순간

그 앞사람은 혼자 생사를 오가는 상상을 했을 수도 있다고

어두운 골목길은 더 이상 낭만이 아니고 벽으로 밀어붙이고 안아주는 연애가 누군가에게는 폭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는 것

내 좋은 의도가 상대에게도 똑같은 모양으로 갈 수 없을 수도 있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면 안될까,.. 라고

돈이 많은 집안의 어린이까지 공짜 급식을 먹을 필요는 없지않으냐는 합리적인 사고대신

의무교육중인 학생들은 누구나 공평하게 의무급식을 해야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 해볼 수 있는 것 , 내가 베푸는 선의의 시혜가 누군가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상처일수도 있다는 사고의 확장이 필요하다,

 

무언가 대단한 활동을 하는게 아니라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 내가 어떤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는 상식에 대해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는 순간 나의 경계가 더욱 확대되지 않을까

나와 같은 사람은 누구도 없다,

비슷한 사람은 있을지라도  하나하나는 다 다르다,

결국 사람은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 살고 함께 먹고 함께 일한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웃어야 하는 것이다,

 

내 삶에서 타인이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으면 한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 타인은 궁금하고  신비로운 존재이길 바란다,

알지 못하는 대상이 무섭고 공포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의 확장이었으면,....

그냥 그랬으면 좋겠어서,...

한줄 이상의 일기를 주저리주저리 오래오래 썼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6-16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특정 대상이나 상대방의 사정을 모르면 그/그것에 대한 편견이 생겨요. 그리고 그 편견을 바라보는 관점이 ‘차이’가 아니라 ‘차별’로 형성되고요. 타자를 알아야 편견의 오류를 알아낼 수 있는데, 무능한 생각이 들통날까봐 일부러 회피하는 것 같습니다. 편견의 가해나자 피해자 모두 지치게 만드는 상황입니다.

푸른희망 2016-06-16 18:3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모르면 두럽고 두려운건 나쁜 거라고 여기죠.다른건 결국 틀린것이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