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 / 고려원북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를 키우면서 고민의 순간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내 이웃에 놀러갔던 아이가 돌아왔다. 이웃이 전화한다. 아이가 놀다 간후 지갑이 없어졌다. 지갑이 있던 곳에서 아이들이 놀았는데 이후 아무리 찾아도 없다

내 아이는 지갑은 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럼 나는 아이를 믿어야할까 아니면 의심해야할까

아이를 의심하고자 들면 그 근거를 몇가지 끼워 맞출 수 있다.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지만 간혹 아이가 잔돈에 손을 댄 적이 있었다,

갖고 싶은 팬시류를 사달라고 한걸 최근에 거절했고 아이는 실망했다,

요새 유달리 돈에 관심이  많고 욕심을 부린다.

돈이 많으면 좋겠다 복권에 당첨되면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아이가 이웃에 다녀오고 비밀이 많아진거 같다. 자꾸 방문을 잠근다,

방안에 못들어오게 한다..

의심은 점점 커지고 그럴 수록 그 근거도 자꾸자꾸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나는 정말 이성적인 부모이므로 아이의 잘못을 덮고 지날 수 없어 그런거라는 나 스스로에 대한 변명도 커지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아이에 대한 믿음은...

그건 다만 내 아이는 그럴 리 없다는 부모된 마음의 무조건적인 믿음이다,

나의 의심은 이성적인 근거를 가진 것이고 나의 믿음은 무조건적인 사랑일뿐이다,

그러면 무엇이 옳을까

의심할 수록 아이는 불만이 늘어갈테고 나도 아이를 쳐다보는 눈길이 불편하고 어색하다,

어쩌면 이웃은 이미 지갑을 어디 엉뚱한 데서 찾았을 수도 있고 미안하다고 전화를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와 나 사이에는 이미 미세한 균열이 생겨버렸고 그걸 잘 메워내더라도 이미 그 흔적을 아예 지울 수가 없다. 작은 균열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건 어디서 어느 순간 다른 균열을 불러와 내가 아이가 머무는 이 울타리를 벽을 지붕을 모두 무너뜨려버릴 지도 모른다.

의심은 그런 것이다.

무조건 믿자는 감정을 넘어서는 이성이라고 스스로를 무장 시키는 힘이며

동시에 우리 사이에 더이상 넘지 못한 선을 그어버리고 균열을 만드는 시작이다.

 

이 책은 소녀 유괴사건이 중심이 아니다.

누가 죄를 지었는지 누가 범인인지는 중요치 않다.

사건이 일어났고 에릭은 순간 키이스를 의심했고 그 의심은 점점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산사태를 일으킨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에릭은 이미 유년기의 상처가 있는 인물이지 않은가? 사랑하는 여동생의 죽음 그리고 가족의 붕괴 세상에 적응못하고 늙어가는 형... 그는 그럴 수 밖에 없지 않냐고. 이미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이니 의심이 쉬운거 아니냐고

과연 에릭이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아름다운 유년을 가지고 정의롭고 자상한 부모를 가졌고 나의 모든 일상에 감사하는 사람이라도 일단 의심이라는 것이 내 속에 들어오면 그건 모든 것을 부식시킬 것이다.

에릭만의 일이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의심은 근거가 없다 하지만 점점 커지면서 스스로의 근거를 만들어낸다. 그 근거 밑바닥에는 아니땐 굴둑에 연기나랴... 뭔가 있으니 소문이 생기는 거 아니냐는 정말이지 단순한 사고에서 시작된다. 소문과 의심은 스스로 몸뚱이를 부풀려 나가고 사람들을 짓누르고 망가뜨린다.

그저 사춘기 소년의 일탈이라고 넘어갈 수 있는 키이스의 행동들이 모두 사건의 범인이므로 가능한  그럴 수 밖에 없는 행동으로 모아진다. 친구가 없는 것 패쇄적인것  자존감이 낮은 것 모든 것이 그럴 범인일 수밖에 없다고 맞추어진다.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끼워 맞추어지는 식이다.

그 의심은 이제 서서히 다른 곳으로 퍼져나간다.

이제 아들도 믿을 수 없고 아들을 대하는 아내도 믿을 수 없다. 아내가 누군가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모습 손짓  전화통화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가족이라고 무조건 감싸고 안고 가는 것을 가족이기주의라고 한다면

가족이라서 일단 의심하고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도 걷잡을 수 없다.

사실 가족이라는 것은 쉽게 헤어질 수도 없고 쉽게 와해되어서도 안될 가장 기본단위이기에 오히려 더 허약하고 불안한 집단이다. 싫어도 함께여야 하고 보여지는 것도 중요한 복잡한 인간관계

그래서 에릭은 더 불안하고 두렵다.

내 형을 의심하고 내 아내를 의심하고 내 아버지를 의심하고 내 아들을 의심하고

그땐 내가 믿어서 발등을 찍혔다면 지금은 의심해서 모든 것을 풀어나가리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의심이라는 건 어떻게 사람의 마음속에 또아리를 틀고 어떻게 커지고 어떻게 균열을 만들어내는가 이야기는 유괴사건보다 거기에 더 촛점을 맞춘다.

그런데 신기하게 글이 몹시 아름답다.

다른 리뷰에서 아름답다 아름답다 했을때 사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번역인데 장르소설이라는데 아름답다니...

한데 더이상 다른 표현을 모르겠다.

묘하게 슬프고 묘하게 아름답다.

에릭의 외딴집이 아름답고 일본 단풍나무가 아름답고 에릭의 그릴이 아름답다.

그래서 슬프다.

그 아름다운 장소를 상상하고 문장을 읽으면서도 그 속의 의심은 자꾸 자란다.

그게 슬펐던거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놀 2014-02-02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심을 하면 사랑하지 못하고,
의심하지 않으면 사랑하고,
그런 얼거리가 우리 삶이지 않나 싶어요

푸른희망 2014-02-04 00:28   좋아요 0 | URL
슬프지만 그런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