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전집을, 틈틈이 읽고 있다.
이 경우, 읽고 있다고 하는 게 맞는지, 자신이 없지만.
김수영,
내 인생에서 김수영의 시는 아주 오래 전, 우리 집에 잠시 기거했던 사촌 오빠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사춘기 여고생이었던 어느날.
그때, 키가 180센티미터가 넘고 호리호리한, s대 대학원생 오빠가 나타났다.
내 인생은,늘 외로웠기 때문에,
사촌오빠의 존재는, 갑자기 드러난 이정표와도 같이, 닫혀진 나의 인생의 선명한 목표가 되었다.
그래 오빠에게 칭찬받고, 귀염받고, 사랑받고...뭐 그런 소녀다운 목표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싸늘했다.
오빠에게는 차분하고 맏딸다운 내 언니가 있었고, 나는 그 다음이었다. 실은 그 다음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다음, 오빠는 가녀린 서울 여인과 결혼하여 우리집을 떠났다.
그 가버린 자리에 책들이 남았다. 누렇게 바랜 냄새나는 종이들의 더미...를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그때 알지도 못했던 문학인들의 이름들이, 주목받고 싶었으나 결국, 아무것도 이끌어내지 못한,나의 실패를 증거하듯, 그 책들도 , 나를 외면하였을 것이다...아마도
그 때, 김수영이란 사람이,있었다..., 들쳐보았으나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를.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난다는 그 유명한 말, ..어쩌면 그때가 아니라 대학에 들어오고서야 그게 무슨 말인지 어슴푸레하나마 감을 잡았던 것은.
사실 그때 김수영을 처음 보았는지, 대학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만났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다만, 김수영 하면, 이상하게도 사춘기 시절 관심받고 싶었던 나의 좌절된 열망이 어김없이 떠오르곤 해서, 쓸쓸함이 그리고 종내는 부끄러움이 찾아 오는 것이다.
시를 뒤적이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여전히.
이 나이가 되었으나, 나는 아직도
김수영의 시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