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캐럴라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5
위니프리드 홀트비 지음, 정주연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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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내눈엔 여전히 늙은 사람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고, 평소 내가 갖고 있던 어떤 편견에서 그다지 많이 벗어나지는 않는 노인여자, 캐롤라인.
어찌보면, 70대 노인여자이면서도 여전히 어린시절의 그녀에게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꿈을 가지고 있어서, 차라리 더 나이에 어울리잖게 꿈을 꾸고,실은 그꿈은 몽상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여전히 운이 나빴고, 여전히 가난했으며, 빅토리아시대의 한물 간 노인 여자로서 시대의 행운- 교육과 기회, 직업-을 누리기에는 좀 늦은 감이 있는, 그래서 자신의 조카 엘리너에게 화를 내며 너가 내 운명에서 살아봤어? 라고 훈계할 수 있기도 했겠다만, 어쩐지 나는, 자신의 신념이든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듯하고, 주변 친척들에게 갚을 수 있을 법하지 않으면서 돈을 빌리고, 조카의 앞날을 사실상 가로막아(미국으로 갈 기회를 놓쳐버리게 했으니, 결과적으로 사랑을 찾도록 한 것인가?그러나 그건 이 책의 기조로 봐서는 더 나은 선택인지 의문) 자신이 저지른 형편없는 사업장을 처리하게 만든, 그야말로 전형적인 막무가내 노인네로 보였다(나 좀 꼬였음).
자신은 돈 한푼 없으면서 크리스천키네마를 만들어서 투자자를 만나기만 하면 성공할 듯한 망상이라니...물론 거기에 꼬여든 사람들 모두 손해를 본 것 같진 않지만, 엘리너 빼곤, 물론 인생사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긴 하지만.
뭐 그렇다는 이야기.
엘리너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여성상이 아니었을까? 과학을 배웠고, 다른 여자들처럼 그저 상대방의 말에 웃으며 네네 거리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관습적인 것에 냉담하니,
그나저나 불쌍한 캐럴라인....좀만 운이 따라줬더라면, 그녀 역시 진취적인 여성으로 나에게서 후한 점수를 받았을 수도.뭐 그런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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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 착각 - 몸과 마음에 대한 통념을 부수는 에이징 심리학
베카 레비 지음, 김효정 옮김 / 한빛비즈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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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치 금단현상처럼 마음이 떨렸다..앗, 이제 읽을 책이 없네...왜 아직 주문을 안했지? 하다가, 참..'불쌍한 캐럴라인'이 있었지하면서 안도했다.


그러나, 밤에 자기 전 읽을 책과 출근하면서 잠깐 전철에서 읽을 책은 다르므로, 책을 고른다.

나는 사 놓고 안 읽는 책을 보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화가 나서 되도록 읽을 만큼만 사는 축이다. 그러다보니 가끔, 이런 사태가 벌어지네.

두권의 책 사이에서 망설인다..

창조적 유전자와 진보와 빈곤



"부패한 민주정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성이나 애국심은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른다. 악한 자는 더 악한 자에 의해서만 쫓겨날 수 있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 자, 그리하여 결국 존경도 받게 되는 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어서 국민의 도덕성이 타락한다. … 부패한 민주 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중


이 문장을 발견하고 나서 진보와 빈곤을 장바구니에 안 넣을 수가 없었다. 

현재의 상황을 이토록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책이라면, 당장이라도 사서 봐야지 싶은 마음.

헨리 조지는 토지공산주의자라고 알고 있었고, 그의 책을 읽은 적은 없다. 

아주 아주 오래 전, 부활의 네흘류도프가 자신의 토지를 포기하는 장면에서 헨리 조지의 논문을 언급하는 장면에서 그의 이름을 들었고, 찾아본 기억이 있다. 사실 너무 오래 전의 이상적 가치이거니, 그래서 현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낡은 이상주의적 관념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런데...이 대목을 읽으면서..아니, 이건 지금의 현실에 너무 딱 맞는 진단이 아닌가...무릎을 쳤다.

너무 답답하던 차에, 누군가 바보야 문제는 민주주의의 부패야..하고 답을 딱 가르쳐준 격이랄까?


어제 저녁에 다 읽은 나이가 든다는 착각은, 사실 큰 임팩트는 없다.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계속 남는다. 

나이가 든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세포가 제 기능을 조금씩 잃어간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지않는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평가하느냐의 문제는 문화적, 사회적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이, 저자가 하는 말이라고 이해했다. 물론 다양한 실험과 연구결과를 언급하고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내 주름살이 주름살이 아닌건 아니다. 다만, 늙음을 바라보는 시각을 부정적인 것이 아닌 긍정적인 것, 이를테면, 연륜이 쌓이면 메타인지는 더 좋아지고, 뇌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나이가 들면 패턴 인식은 더 좋아지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운동능력이 쇠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놀라운 결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기억력이 더 좋아지기도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진짜인가? 의심이 드는 나도 연령차별주의자이겠지? 

일본의 노인에 대한 존경 문화가 장수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문화적 요인이 아닌가하고 제시하는 증거들.... 뭐 그럴 수도 있겠네..정도의 동의는 되지만,확신을 주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생각해 보니, 정년을 늘이는 것에 프랑스 사회는 반대한다지? 그건 노동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의미일까? 

그런데 미국의 노인차별반대 운동진영은 정년을 폐지하라고 하네. OECD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66세 이상 노인의 처분가능소득 기준 상대적 빈곤율은 대상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가 가장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는데...일이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된 나라에 살면서 이런 상반된 이야기를 들으면, 혼란스럽다.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인간이 점점 더 오래 사는 시대에서 노인이 된다는 것, 노인으로 살아야 하는 기간이 더 길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 존재의 의미를 숙고할 가치는 충분하다.

내 삶은, 그동안 어땠는지,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살아남을 것인지.

그리고 노인이 되어서도 삶을 여전히 활력있게,자발적으로 일하면서..살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도 가지게 되고..연령차별..이라는 용어도 알게 되었고..

주변에 존경하거나 롤모델이 되는 노인을 떠올려보라고 한다. 긍정적 나이 인식에 도움이 될 것라면서...아무리 생각해도 없다..이게 문제다..나의 인간관계가 내 또래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관심갖고 볼 만한 노인이 없기도 하고, 노인 하면, 뭔가 잘 흘리고, 잘 안씻고, 젊은애들 훈계나 하려들고, 자신의 생각을 마구 강요하고, ...어버이연합 같은.....그런 노인들만 떠오른다.

하지만, 또 궁리해 보니, 최재천 같은 노인학자도 있다. 그 분의 생활은 내가 모르지만, 적어도 언행일치의 모습, 여성을 존중하는 태도, 약한 존재에 대한 배려, 자연과 우주에 대한 폭넓은 사유 그리고 사회에서 받은 것을 다시 되돌려 주려고 하는 선한 영향력, 무엇보다 조곤조곤하고 설득력있게 말하는 솜씨.....(ㅋㅋ 최재천 샘 광팬인가 싶을 정도군...)

그리고 또 없나? 없네..ㅜㅜㅜ일단 롤모델이 될 만한 노인 한명 더 생각해 보기를 나에게 숙제로 준다...고 하면서 이 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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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된다는 것 - 데이터, 사이보그,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의식을 탐험하다
아닐 세스 지음, 장혜인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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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을 끝냈다.
그런데 한개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그건 나의 의식적 지각이겠지?
어떻게 이토록 이해가 안되는지. 따라잡기가 너무 쉽지 않았다.
최재천 교수는 독서는 일삼아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오며가며 출근길에 읽기에는 너무 어려운 주제였다고 인정하더라도, 어떻게 뭐 이렇게 머리가 멍한지.
딱 한개, 이해한 것이 맞다면,
의식이란 지능과는 별개이고, 인간중심적인 사고로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에게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면 안된다.
우리의 의식은 외부로부터 오는 물질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오류를 최소화하여 우리의 생존에 맞게 구성한 것이라는 것. 즉, 여기 빨강 의자가 있는데, 그 의자가 빨강인 것은 우리가 이 사물을 인식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그니까 문어는 빨강의자를 다른 식으로 지각할 수 있다는 것...
..어어..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이해가 힘들어졌다.
독서는 빡세게 일하듯 해야 한다는 최재천 선생의 말을 다시 되새긴 아침이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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츤도쿠 2023-01-15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인만의 관점을 가지고 읽는게 좋지않을까요? 최재천 교수님은 말씀이 이랬다저랬다해요. 여기저기 늘어두고 집히는대로 설렁설렁 읽다 집어던지고 그러라러니 또 빡세게 읽으래요. ㅎㅎ
 
버너 자매 을유세계문학전집 114
이디스 워튼 지음, 홍정아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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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중립적이다. 읽고 나서는 비참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다 싶었다.
나머지 두 편 징구, 로마열은 지난번 단편집에서 읽었던 이야기였다.
세 작품 중에서 버너자매는 제일 길고, 제일 강렬하다.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막막할 지경.
뉴욕의 한 뒷켠, 오래된 건물의 지하1층에 개인 바느질이나 비슷한 일을 하면서 두 자매가 별일 없이 그럭저럭 살고 있었지, 그런데, 어느날 언니가 동생의 생일선물로 사준 시계. 가 발단이 되어, 단조롭던 자매의 일상으로 한 남자가 등장하지. 그 남자는 겉으로 보기에 어딘가 병이 있어 보였으나, 손에 시집을 들고 있을 정도로 배운 사람 같다고 두 자매는 생각하지.
그리고 두 자매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남자에게 관심이 가지.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나서, 동생은 언니에게 말하지, 언니는 그 시계를 나에게 선물하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이 자매에게 경계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
생의 단조로움을 겁내지 말았어야 했을까?
미래의 어떤 것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가지지 말았어야 했을까?
어떤 상식적인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서로 의지하며 살고 싶은 소망을 가지지 말았어야 했을까?
아니면, 동생이 수고롭지 않게 시계를 사 주는 선의조차 가지지 않았어야 했을까?
그도 아니라면, 인생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간다는 것을 그저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순진한 두 자매가 품은 인생에 대한 작은 소망들이 인생이 얼마나 매몰차게 박살내어 주는지 목도하는 쓸쓸함. 너무 적나라해서, 슬픈 이야기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디스 워튼은 남자에 기대어 인생이 바뀌길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어서 끝내, 비극으로 이어질 뿐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가.
단조롭지만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었던 자매가, 예상을 뒤엎는 나쁜 남자와 얽히면서 자신들의 삶조차 침몰시키는 사정은, 현실에도 종종 있을 법한 일일 터.

사실 책을 사기 전에 이미 출판사에서 제공한 작은 소개를 보고 결말이 비극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비극일 줄은...
그래서 좀 날이 좋을때 읽으려고 계속 옆에 제쳐 두었더랬다.
날이라도 화창해야 덜 침몰할 것 같아서. 그런데 계속 떠다니는 이 기운은 뭐지?
이 비참한 기분은 무엇인지...이 쓸쓸한 기운은 무엇인지...
가을과 겨울에 읽으면 더더욱 이야기의 분위기에 압도될 것이니, 읽고 싶은 분들은 조심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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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테레사 > 밑바닥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한 작가

ㆍ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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