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이었나? 알라딘을 이용하던 초기에 <당신들의 천국>에 관한 서평을 쓴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는 <당신들의 천국>이 갖고 있는 주제의식이나 정서가 시대에 뒤떨어지고 재미가 없다는 얘기를 썼던 것 같다. 물론 아직도, 그 이후로 대 여섯번 더 읽어봤음에도, 이 소설이 그닥 재미있는 소설이 아니라는 생각은 크게 변함이 없다. 하지만 요즘에는 '재미'가 아닌 '의미'를 발견하려는 목적으로 이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이 소설이 질병을 새로운 방식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전 고인이 된 이청준은 질병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쓴 작가이다. 절대적인 작품 수 자체도 많은데다가 그 중에서 질병을 소재로 한 작품도 많이 썼으니, 아마도 질병을 소재로 가장 많은 작품을 쓴 한국작가가 아닐까 싶다. 

그가 흔하게 쓰는 질병들을 크게 구분하면 세가지 정도가 될 것 같다. 첫번째는 정신이상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작품은 열림원에서 나온 소설집<소문의 벽>에 모두 실려있다. '소문의 벽'의 박준이 앓는 진술기피증과 전짓불 공포증, '조만득씨'의 주인공의 병인 망상성 정신분열증, '황홀한 실종'의 윤일섭의 가학성유희욕과 기피증, <겨울광장>의 완행댁은 병명을 알 수 없는 정신병은 이 소설집에 나온 이들이 앓고 있는 질병 목록이다.이다. 두번째는 복통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청준의 데뷔작인 <퇴원>은 자아망실이라는 병과 위궤양을 앓고 있는 인물을 다루고 있으며, <귀향연습>의 주인공인 지섭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을 앓고 있다. 이청준 소설의 복통은 단식, 허기, 공복과 연결되고 그런 측면에서 보면 <씌어지지 않는 자서전>과 <조율사> 역시 같은 맥락으로 연결될 수 있다.  세번째는 <당신들의 천국>이 다루고 있는 나병이다. 이 소설이 발표된 초기의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통치자의 윤리와 같은 당시 정치적 상황에 관한 알레고리로 해석하고자 하였다. 초판에 붙힌 김현의 평론은 이러한 이들의 의견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봐도 이러한 해석에 별로 이의를 제기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치적 알레고리 소설이 아닌 질병, 환자, 의사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면 이 소설이 갖고 있는 새로운 측면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질병을 소재로 한 수많은  소설들 중에 이 소설만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선적으로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질병이 나병(또는 한센씨병)이라는 사실에서 부터 찾아야 한다.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수잔손택은 중세시대의 나병환자는 사회적 타락을 보여주는 일종의 사회적 텍스트,  타락의 사례이자 상징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당신들의 천국>의 주인공인 조백헌 원장은 나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닌, 나병이 갖고 있는 은유와 맞서는 의사인 셈이다. 의학을 소재로한 기존의 작품들이 질병 자체가 사회적, 개인적 병리를 상징하게 되는 알레고리로 이용하거나- 이청준도 이러한 방식을 자주 사용하였다- , 아니면 질병을 고치거나 질병 때문에 죽는 것에 관한 서사를 택하였다. 하지만 <당신들의 천국>이 택한 것은 질병과 환자를 격리하고 통제하는 서사인 것인다. 이 소설 속에서 나병은 사회병리를 압축하고 있지도 않으며, 이 소설 속의 인물들중 어느 누구도 나병으로 인해서 죽지 않는다. 원장이 부임하는 날 두 명의 환자는 섬을 탈출하고 한민이라는 청년은 자살한다. 결국 원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나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소록도를 배경으로 <당신들의 천국>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섬을 통해서 드러나는 나병의 질병관리 시스템인 것이다. 따라서 소록도의 역사는 이러한 질병관리 시스템의 역사이기도 하다. 기존의 평자들이 이 소설을 정치적 알레고리 소설로 보았다면 그것은 이 소설이 갖고 있는 질병관리 시스템이 이루어지는 장소인 병원이 정치적이며, 권력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는 것은 내버려두고, 죽는 것은 강제하라 laissez vivre, faites mourir"는 전시대의 명제는 "죽는 것은 내버려 두고, 사는 것은 통제하라 laissez mourir, faites vivre"로 바뀐다. 푸코는 19t세기에 특징적인 것이 생명에 대한 권력이 관심이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군주가 갖는 '칼의 권리'가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두는' 권리였다면 19세기의 정치적 권리는 '죽게 내버려 두고 살게 만드는' 권력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나병과 같은 전염병의 역할은 이러한 질병들이 갖는 집단적 차원이 권력의 관심을 개인의 신체에 관한 문제에서 인구의 문제로 확장시킨 것이다.  <당신들의 천국>은 나병에 관한 소설이면서 나병을 관리하는 시스템에 관한 소설이다. 주인공인 조백헌 원장을 나병을 치료하는 의사로서 그리지 않고 나병 환자들을 관리하는 행정가인 병원장으로 그려낸 점과 이들이 놓인 시간적 배경이 혁명정부 시절이라는 점은 푸코가 언급했던 살게 만드는 생체권력의 모습을 문득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이 소설을 한국 소설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도록 한다. <당신들의 천국>은 아마도 한국 문학 최초로 '생체권력'에 대해서 얘기한 작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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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 제1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마도 내가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장소는 지하철이 아닐까싶다. 근데 꼭 나만 이런 것은 아니리라. 좀 과장해서 말하면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은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 할 수도 있다. 근데 이게 꼭 나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대학원 수업을 같이 들었던 어떤 소설가는 목적지에 도착할수록 책읽는 속도는 빨라지고 집중력은 점점 더 높아지며, 이해력 역시 급격히 상승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물론 그녀가 한 얘기는 어느 정도는 농담이었다.

이 소설은 지하철에 관한 소설이다. 지하철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하철이 지나다니는 공간, 그것이 바로 제목이 암시하고 있는 언더그라운드이고, 이 소설 속의 화자가 거주하고 있으면서 그려내고 있는 곳이다. 난 이 책을 3호선을 타고 학교가는 중에 읽었다. 그러고 보니 지하철에 관한 소설을 지하철에서 읽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책 속의 지하철은 뉴욕의 것이고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곳은 서울이지만 말이다.

이 책을 고른 유일한 이유는 이 소설이 한겨레 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준 유쾌함과 동질감, <도모유키>가 주는 속도와 색다른 문체는 내게 한겨레 문학상을 소설의 신선함을 보증해주는 그 무엇이라고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 뒷표지에 쓰여있는 심사평들은 이 소설에게 그러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물론 그러니까 상을 주었겠지만.

하지만 이 소설은 산만하고 혼란스러우며 자신감이 부족하다. 뒤로 가고 앞으로 가고 소설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처음으로 가며 그러다가 다시 진핻되면서 결말이 난다. 근데 왜 이런 복잡한 순서를 택했을까?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진행시키면 무슨 문제가 있는걸까? 이러한 궁금함에 대한 답이 없기 때문에 이 소설의 구성은 내게 혼란스러웠다. 그러니까 당연히 이야기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질 수 밖에. 아마도 작가가 복잡한 구성을 택한 이유중에 하나는 실패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자신의 이야기가 너무 상투적이고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이야기들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소재 자체가 그리 신선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뻔해도 이러한 이야기가 재미있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반복된다고.

작가가 복잡하게 뒤죽박죽으로 섞어 놓은 이 소설의 이야기 속에도 여전히 뻔하고 상투적인 면과 신선하고 감동적인 면들이 섞여 있다. 전자는 이야기의 소재 자체와 관련된 것이고 후자는 작가의 상상과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 구성을 비비꼬아 놓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닐 것 같다. 그보다는 작가의 상상과 경험을 강조하고 극대화시키는 것이 이야기의 상투성을 좀 더 극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좀 아쉬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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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바흐 : 무반주 첼로 소나타 전곡 [2CD] - Great Performances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작곡, 요요 마 (Yo-Yo Ma) 연주 / SONY CLASSICAL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카잘스랑 비교하면 밝고 경쾌하다. 그게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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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조세프 마리 클레멘트 달라바코 : 무반주 첼로를 위한 11곡의 카프리스 [Digipak]
골츠 (Kristin von der Goltz) 노래, 달라바코 (Joseph Marie / RaumKlang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1번이 가장 멋있지만 나머지 10곡의 카프리스도 모두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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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야콥 클라인 : 두 대의 첼로를 위한 6개의 소나타
Jacob Klein 작곡, Gerhart Darmstadt 외 연주 / Cavalli Records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바흐 이전의 작곡가들을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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