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
애니 프루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005년 5월하면 떠오르는 것은 콧물과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웃고 있는 두 아들의 얼굴이 나온 사진이다. 2005년 4월, 대전 자운대((紫雲帶)를 떠나는 가족들의 등 뒤엔 이 일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금병산이 우두커니 서 있었고 백목련과 자목련 나무들이 찻길을 따라서 길게 늘어서 있었다, 마치 배웅하러 나온 행렬처럼. 서울 아파트 입구에는 주먹만한 하얀 목련꽃들이 군데군데 환하게 피어 있었다. 하지만 서울의 아파트는 자운대의 아파트보다 훨씬 높았고 하늘은 훨씬 더 좁은 것처럼 느껴졌다. 아파트 주차장에는 붕붕카를 타고 노는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에 낮게 떨어지는 햇빛에 번쩍거리는 커다란 차들만이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백구(白狗)처럼 빽빽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큰 애는 가끔씩 자운대에서 놀던 동무들이 그립다는 말을 했고 나와 아내는 큰 애의 그리움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목련꽃이 환하게 피어 있던 봄날 내내 나와 아내는 아무 이유 없이 우울했다. 큰 애는 유아원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5월이 되면서 아프기 시작했다. 큰애와 작은 애 모두 꼬박 두 달 동안을 앓았다. 때론 기침을 하면서, 때론 눈물과 콧물을 쏟으면서, 때론 결막염 때문에 눈꼽이 잔뜩 낀 눈을 부비면서 두 달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내가 말했다, 자운대에 무언가를 두고 온 것 같다고.

소설집 <브로크백 마운틴>속에는 열 한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내용과 길이가 다양한 이 열한 편의 단편들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와이오밍’과 ‘남자’, 언뜻 생각하기에 이 두 단어를 연결시킬 수 있는 문장들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광활한 와이오밍의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남자들의 우정? 아니면 거친 자연에 도전하는 남자들의 불굴의 도전정신과 용기? 하지만 작가 애니 프루는 이 단어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연결시킨다. 작가는 와이오밍에 펼쳐져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속에서 사는 이들이 겪어야 하는, 또는 겪을 수밖에 없는 황량하고 냉엄한 현실을 그려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설 어디에도 아름답고 푸근한 자연은 등장하지 않는다. 애니 프루가 그려낸 와이오밍은 거칠고 혹독하다. 등장인물들은 이런 와이오밍을 견디지 못하며 그 속에서 좌절하고 버려진다. 애니 프루의 작품 속에서 더 이상 ‘남자’는 ‘사나이’와 동의어가 아니다. 열한 편의 단편들 속에 등장하는 남자들의 세계 속에선 ‘의리’도 없고 ‘정의’도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은 이기적인 욕망과 욕정뿐이다. <진창>의 주인공 다이아몬드는 차속에서 동료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동료의 아내를 겁탈하고 <블러드 베이>에 등장하는 카우보이들은 멋진 가죽 부츠를 얻기 위해 얼어 죽은 시체의 다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잘라낸다. 그래서 이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다소 냉소적이다. <목마른 사람들>에 등장하는 차사고로 불구가 된 라스무센 틴슬리의 끔찍한 모습과 <진창>에 등장하는, 로데오 도중 머리를 다친 후 삼십 칠 년 동안 매일같이 안장을 닦고 있는, 혼도 건쉬는 ‘사나이’가 되지 못했던 ‘남자’들의 비참한 말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열한 편의 단편 중 마지막 작품이자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브로크백 마운틴>은 ‘사랑’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이 책에 실린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와이오밍’과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네 가지 단어가 머릿속에서 금방 정리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이렇게 정리해보자, 이 소설은 ‘남자’들의 ‘사랑’과 ‘와이오밍’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라고. 이 작품의 주인공인 에니스 델 마와 잭 트위스트는 얼핏 보기에 여느 작품에서 등장했던 주인공들과 전혀 차이점이 없어 보인다. 작가의 묘사에 따르면, 이들은 고등학교를 중퇴하였고 미래에 대한 아무 전망도 없는 스무 살의 시골 청년들이고, 예절에 서툴고 말은 거칠며 금욕적인 삶에 익숙한 양치기들일 뿐이다. 어쩌면 이들에게 ‘사랑’이란 것은 욕정이나 욕망과 구별이 되지 않는, 아니 구별될 수 없는 모호한 관념이거나 도시에 사는 돈 많은 애인만큼이나 불가능하고 사치스러운 장식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 두 인물이 겪게 되는 감정의 변화과정을 밀도 있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둘이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양치기를 하며 보내던 어떤 날 겪게 된 실체를 알 수 없는 낯선 감정은 순간적인 욕정에서 욕망으로, 욕망에서 애정으로, 그리고 애정에서 열망으로 변모한다. 죽은 잭의 집을 찾아간 에니스는 잭의 방에서 브로크백 마운틴 시절에 입었던, 잭과 자신의 셔츠가 겹쳐져 옷걸이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 에니스는 겹쳐진 셔츠에서 무엇을 깨달았던 것일까? 에니스를 향한 잭의 영원한 사랑? 천만에! 그 순간 에니스가 깨달았던 것은 잭이 그토록 지키고자 열망했던 것이 실은 ‘사랑’이 아니라 ‘기억’-브로크백 마운틴이 그들에게 선물해준-이라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십 년 만에 이들을 회귀(brokeback은 ‘회귀’라는 뜻을 갖고 있다)시켜 만나게 만든 힘은 ‘사랑’의 힘이 아니라 ‘기억’의 힘이었던 것이다. 

2005년 5월이라는 시점으로부터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갔다. 나와 아내는 여전히 자운대에 무엇을 두고 왔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동안 아파트 입구의 목련나무는 한 번 더 꽃을 피웠고 두 아이는 가끔씩 아프기는 했지만 비교적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큰 애는 더 이상 자운대에서 같이 놀던 동무들을 찾지 않는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어졌지만, 서울에 올라 온 초기에 나와 아내는 가끔씩 무심결에 대전 지역의 일기예보를 유심히 듣곤 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안타깝게도(?) 서울이었고 그 사실을 알고 나서는 조금 허탈해 했다.

시간의 힘은 막강하다. 우리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자운대의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하지만 나와 아내는 더 이상 ‘시간’의 막강한 힘으로부터 ‘기억’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운대의 기억’을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은 ‘자운대의 기억’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 희미해져버린 ‘기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뿐인 것 같다. 가끔씩 그때를 떠올려보는 것, 그리고 아주 잠시 동안 그리워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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