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리터 - 피의 역사 혹은 피의 개인사
빌 헤이스 지음, 박중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과학이라는 것이 현실과 무관한 것이 아니고, 나 자신 역시 과학이 설명하고 하는 현실을 살고 있으므로, 이 둘을 연결시켜서 글을 쓰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사실 과학사를 다룬 책들을 즐겨 읽는 것도 그런 이론적인 '소망'을 언젠가는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11년 독서의 목표는 호러였고, 호러소설의 핵심에는 '뱀파이어'가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호러물하면, <전설의 고향>이고 <전설의 고향>하면 구미호 이야기인 것 처럼 말이다. 구미호와 뱀파이어 모두를 연결시켜주는 것은 이 책의 표지의 빛깔인 붉은 색, 피, blood 이다. 그럼 이쯤에서 문학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면, 왜 하필 '피'인가?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나누어 준 포도주도 '피'였고, 형제와 가족을 상징하는 체액도  '피'였고, 가문과 족보를 상징하는 것도 혈통이라는 단어 속에 존재하는 '피'였고, 병원의 검사실을 수도없이 들락날락하는 것 역시 피였다.   

신성한 것이면서도 끔찍한 것, 살아있는 것의 상징인 동시에 죽어가는 것의 상징인 것, 그게 바로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피'의 의미이다. 이 책은 '피'와 관련된, 역사로 부터 시작해서 시시콜콜한 개인사 까지를 다룬다. 갈레노스에서부터 베살리우스와 윌리엄 하비의 발견을 다루고, 누이 새넌의 생리통에서 시작해서 자신의 '핏'줄을 입양시킨 누이의 아픈 경험을 다루고, 에이즈에 걸린 자신의 동성 남자친구의 혈액검사로 부터 에이즈와 검사와 동성애자들의 헌혈에 관한 정치적인 입장을 다룬다. 피에 관한 역사서이면서 '피'라는 단어속에 들어있는 자신의 컴플렉스 또는 아우라를 기술하는 그의 방식이 신선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왜냐하면 피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빠졌기 때문이다. 이왕 피의 이야기를 다루기로 하였으면 꼭 나와야 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브람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이다. 소설 드라큘라로부터 포르피리아가 등장하고 여기서 혈우병과 영국왕실의 혈우병가계도 등장할 때 쯤 되면 이 책의 저자가 정말 대단해 보인다. 그러나 결국 이 책의 결론은 에이즈에 관한 것인 동시에, 자신의 애인이 갖고 있는 불행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위한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저자는 친구 스티브가 병원에 가서 피를 뽑는 것을 보다가 이 책의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을까?  

동성애를 다룬 소설도 읽고 영화도 보았지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책속에서 공공연히 밝히는 저자의 책을 읽어본 것은 처음이다. 더군다나 (비록 내추측에 불과하지만) 책 속에 에이즈에 걸린 자신의 친구 얘기를 쓰는 저자는 정말로 처음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로서 약간 불편했다면, 아마도 내가 이성애자로서 어떤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래도 불면증에 관한 그의 다른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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