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에 무릎에 간단한 수술을 받을 일이 있어서 입원을 하게 되었다. 다리가 불편하니 병실에서 못 움직일 것은 뻔하고, 그렇다고 주구장창 TV나 DVD만 볼 수도 없는 일이다. 이거나 저거나 모두 두시간이 넘으면 눈도 아프고, 머리도 띵해져 더이상 집중해서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책을 보는 것은 가능할까? 가능하든 안하든,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책을 입원가방(?)-여행을 할때 들고가면 여행가방이고, 출장할 때 들고가면 출장가방이고, 동원훈련때 들고가면 훈련가방이다- 에 넣기로 했다.  

얼마나 읽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첫번째로 생각한 것은 양이었다. 재미있으면서도 무지하게 길어야 한다. 책장에 워낙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 많지만 막상 고르려면 그리 선택이 다양하지 않은 법이다. 왜냐하면 양과 재미를 다 만족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입원해서 <사르트르 평전>이나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 같은 책들을 가져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아마도 가져갔다면 베개나 문진으로 쓰게 되지 않을까? (책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 곳은 따로 있다는 뜻이니 오해가 없으시길!)

그러다가 고른 책이 몇 년전에 사놓고 읽지 않았던 700쪽 분량의 소설 <핑거스미스>가 눈에 띄었다. 분량은 적당한데, 재미있을까? 책이라는 것이 예고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독자들 리뷰만 믿을 수도 없는 일이고...... 하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의 리뷰와 <개는 말할것도 없이>를 번역했던 최용준이라는 번역자와 먼저 읽었던 집사람의 극찬을 참고하여 결국 이 책으로 하기로 했다.  

빅토리아시대, 레즈비언, 도둑, 덧붙여 스릴러까지, 이 이질적인 조합들을 성공적으로 묶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러한 걱정도 잠시뿐. 왜냐하면 1부를 읽고 나면 궁금해서 2부를 도저히 안 읽어 볼 수가 없었으니까. 마찬가지로 2부를 다 읽을 때 쯤 되면 3부와 결말이 궁금해진다. 결국 소설의 주인공인 세 여인, 수, 모드, 석스비 부인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비비꼬인 매듭을 남은 시간에 풀 수 있을까? 이 때쯤 되면 소설이 아니라 손발을 묶고 탈출마술을 하는 마술사를 보는 심정이 된다. 째깍째깍......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디테일,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 신선한 서사라는 세가지를 모두 완벽하게 성취해낸다.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뒷골목, 정신병원, 시골 부잣집의 서재를 치밀하게 묘사하면서, 서로 다른 상황, 같은 운명, 서로가 필요하면서도 서로를 없애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 세사람의 진술을 통해서 서로를 속고 속이는 사기극을 긴장감있게 묘사한다. 빅토리아 시대에 낭만적이고 운명적인 사랑이 있다는 '이야기'(서사)들은 읽어봤지만 빅토리아 시대에 <오션스 일레븐>이나 <스팅>을 뛰어넘는 기발한 사기극과 레즈비언들의 엇걸린 운명을 다룬 이야기는 들어본적도 읽어본 적도 없다. 정말 어떻게 이런 소재로 글을 쓸 수 있을까.  

3부가 끝날 쯤이 되어도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이 셋의 혼란스런 관계를 작가는 단 한번에 정리한다. 코니 윌리스의 말처럼 집사가 언제나 범인이듯이, 해결의 열쇠는 항상 편지 속에 있다. 아, 더 얘기하면 안되는데......뭔가를 더 말하고 싶어서 자꾸 입이 근질거린다. 아니, 자꾸 손가락이 근질거린다. 자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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