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책 제목을 보고 누구나 금방 떠올릴 수 있는 이 책의 주제는 아마도 '독서'의 의미일 것이다. 만약 약간의 상상을 보태서 거기서 좀 더 나아간다면, 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독서'라는 행위에 대한 하나의 우화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사실 이 추측은, 추측이 아닌 사실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실제로 많은 해설들이 이 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독서' 의미라고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그럴까? 

그렇다면, 좀 엉뚱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여기서 말하는 '독서'라는 행위는 '책읽기'일까? 아니면 '책읽어주기'일까? 이런 미세한 의미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책읽기라는 행위와 책읽어주기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가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것이라면 후자는 공적이고 공개적인 것이다. 전자가 욕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후자는 소통과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독서'라는 한국말,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자어, 에서 이 두가지 의미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굳이 군더더기를 붙인다면 사적인 독서, 대개의 사람들이 행하는, 와 공적인 독서로 구분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단어를 쓰지 않는다. 왜냐고? 독서라는 것이 대개는 혼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아마도. 책읽어주는 남자란 부제에, 물론 이건 번역판에서 붙인 것 같지만, 드러난 것처럼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전자가 아닌 후자, 그러니까 '책읽어주기'에 대한 것이다. 앞서의 논리를 빌어서 바꾸어 얘기한다면, 이 소설은 관계와 소통을 위한 '독서'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또 한 번 아마도!.   

주인공에게 책읽기란, 아니 책읽어주기란 한나와의 섹스, 좀더 보편적으로 보면 '관계',를 위한 주문이고, 한나와의 '관계'는 씻김(목욕)을 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씻김'이라는 행위가 일종의 치유를 의미한다면, 목욕은 미카엘을 한나와 맺어주었던 간염이라는 육체적인 질병의 치료법이면서 동시에 간염이라는 질병으로 드러난 정신적인 질병의 치료법이기도 한다.  

정신적인 질병?  저자의 말처럼 이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 속에는 어머니는 없고 아버지만 존재한다. 하나 더 지적하자면, 이 책의 주무대가 되고 있는 법정과 법관들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아버지를 상징하는 배경소들이고 미카엘이 몸을 담궜던 목욕물과 호수의 물은 모두 어머니를 상징하는 배경들이다. 이 지점에서 한나는, 책속에서 직접 저자가 언급하고 있듯이 어머니의 부재-이것이 간염이라는 질병의 정신적인 의미이다-를 대행하는 인물로 치환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이 책은 독서라는 행위에 대한 정신분석학적인 우화?  정신분석적인 접근이 가능한 것을 여기까지다.  

첫사랑-성장-재회-죽음으로 이어지는 이 책의 이야기를 '책'을 매개로 해서 다시 정리하면, 소년 미카엘과 한나 사이에 존재했던 독서라는 행위는 은밀하고 금지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가기 위한 주문이었다. 이 둘이 존재하는 공간은 소설 속에 간혹 등장하는 눈이 보이지 않는 연상의 연인을 위해서 책을 읽어주는 소년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동시에-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바람의 그림자>의다니엘 셈페레가 장님의 클라라에게 책을 읽어주는 장면을 떠올렸다-동경과 신비로 가득했던 첫사랑의 경험을 떠오르게 한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소년들의 첫사랑은 연상의 연인에 대한 무한한 흠모로 시작하나보다. 섣부른 일반화일까?

하지만 시간은 지나가고, 소년은 청년이 되고, 청년은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가 된 청년은 상상의 세계 속에 더이상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청년은 피터팬이 아니니까. 한나는 문맹을 벗어나는 순간, 문맹의 어둠 또는 문맹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순간 자살한다. 왜?  한나에게 어둠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아니라 상상으로 가득찬 세계였기 때문이다. 감옥은 상상과 현실의 경계이고 감옥문을 나오는 순간 상상 속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된 소년이 있을 뿐이다. 한나는 그날 죽는다. 상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의 감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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