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진행할 수업과 관련이 있어서 다시 읽게 된 책이다. 희곡이나 시는 다시 읽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소설을 다시 읽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다. 아마도 대개가 분량이 길어서 오랜기간 동안 집중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었던 것은 91년이었고, 당시에는 굉장히 참신하고 재미있었던 책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읽으면서 느낀 건데, 도대체 그 때 무슨 재미로 읽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는 뒤죽박죽 되어 있고, 인물들은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으며, 작가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혼란스럽다. 게다가 지금와서 새삼 느낀 건데, 번역도 이상하다. 읽으면서 가장 이상한 것은 토마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테레사에게 존댓말을 쓴다는 것이다. 내 생각엔 첫 만남엔 존칭을 하더라도 동거하면서 부터는 말을 트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다. 부부가 결혼을 하고 나서도 서로 존칭을 쓴다?  

이 소설은 이야기 전개나 인물의 묘사보다는 작가의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와 인물은 작가의 에세이를 위한 도구들일 뿐이다. 작가의 에세이는 크게 세가지 인데, 첫번째는 회귀와 삶의 의미에 관한 것이고 두번째는 공산주의, 이념과 개인, 세번째는 성과 사랑 이다. 토마스와 테레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 소설은 이 둘의 죽음을 작품의 중간에서 미리 알리면서 첫번째 문제를 제시하고, 유능한 외과의사였던 토마스가 신문에 쓴 한 편의 글 때문에 몰락하는 것으로 두번째 문제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 토마스가 집착하는 섹스와 테레사가 꾸는 꿈의 이미지들을 통해서 세번째 문제를 보여준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작가는 이야기와 인물들의 죽음을 통해서 결말에 이르지 않는다. 작가는 문제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이야기와 인물은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기 위해서 끌어들인 도구들일 뿐이다. 독자들이 이 소설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려면 작가의 이야기가 아닌 에세이를 즐겨야 한다. 회귀와 우연이 삶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전체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어떻게 '키취'가 되는지, 섹스라는 행위와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떻게 다른 건지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이 쬐끔 더 재미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때는 그래서 재미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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