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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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학회 갈 때 혹시나 읽을 수 있을까 해서 가져간 두 권의 책 중 하나이다. 절대로 두 권을 다 읽을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시간이 남으면 좀 읽어볼까하는 생각에 넣어갔는데, 왠걸, 결국 다 읽었다. 정확히 말하면, 두 권을 읽고도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몇가지 이유를 꼽아보자면, 우선 이 책과 함께 가져간 책을 너무 금방 읽어버렸다. 그렇게 금방 읽게 될 줄이야! 두번째는 시차적응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점심이 되면 졸리고, 에누리 없이 한국보다 정확하게 14시간 늦다, 새벽 3시가 되면 말똥말똥 해진다. 한국 시간으로 따져보니, 오후 한 두시는 한국시각으로 저녁 11시와 자정 사이이고, 새벽 3시는 오후 1시에 해당한다.  

점심에 졸린 거야 호텔방으로 올라가서 자버리면 되는 거지만, 새벽 3시에 말똥말똥한 것은 해결할 방법이 없다. TV는 온통 영어로 떠들어대고(그래도 결국 영어자막 TV를 꽤많이 봤다), 달리 할 것은도 없으니 책이나 읽는 수밖에. 밖에서 술을 사와서 마시자니 가게가 어디있는지도 잘모르겠고......하지만 이 모든 것 보다도 혼자 간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요즘와서 든 생각인데 혼자 여행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책과 캔맥주다.  

참고로 말하면 보스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는 사무엘 아담스다. 다른 말로는 보스턴 라거. 약간 쓴 맛이 돌지만 밍밍한 버드와이저보다는 나은 것 같다.

사설이 길었지만. 아무리 심심하고, 아무리 할일이 없고, 아무리 시간이 남았다하더라도 이 책이 재미없었다면 그토록 빨리 읽지는 못했을 것이다. 덧붙여 이 책과 함께 새벽 3시를 보내서 너무나 행복했다. 섹스 한 번 못해본 오스카와오의 삶, 고문과 몰락과 저주로 연결되는 그의 엄마와 누나와 할아버지의 삶. 이들 가족의 비극은 '푸쿠'의 저주로 설명되고, 이들의 삶은 그들이 '푸쿠'를 믿든 믿지 않든, 철저하게 파괴당한다.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면 트루히요가 할아버지 아벨라르에게 저지른 고문은 연적(?)에게맞아 죽을 뻔한 엄마와 결국 맞아죽는 오스카의 죽음으로 완성된다. 누가봐도 이건 피비린내나는 저주로 보인다. 하지만 이상한건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뭔가 가슴이 뿌듯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따뜻함이 책장을 넘기는 내 손끝에서 만져진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마도 이런게 아닐까. 저주와 가문의 비극을 벗어나는 것은 거창한 의식과 부적이 아니라 단지 살아가는 것이다. 단,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하면서, 마치 오스카와오가 그랬던 것 처럼. 그러니 여러분도 열심히 살아가시길, 그리고 열심히 사랑하시길.

추신: 이 책을 읽는내내 92년도에 비행기에서 읽었던 <백년동안의 고독>을 떠올렸다. 그게 벌써 18년 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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