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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상 -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ㅣ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비록 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소설 <죄와 벌> 속의 도스또예프스키의 관점은 여느 추리 소설 작가들이 넘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독특하다는 것이 반드시 다른 추리 소설들이 가지는 관점- 살인을 하나의 지적 퍼즐게임으로 보는 것-보다 우월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좀 다르다는 것이다.
좀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작가가 독자들에 던지는 질문은 '누가 범인인가?' 혹은 '왜 살인을 하게 되었는가?'가 아니다. 왜냐하면 소설을 끝까지 읽어 본 독자가 아니더라도 전당포 살인사건의 범인이 라스꼴리니코프라는 대학생이고 살해동기가 노파의 돈을 노린 것이라는 사실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두 가지 사실은 '죄와 벌'이라는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밝혀진다. 따라서 작가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이 그런 종류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소설 '죄와 벌'은 살인범, 라스꼴리니코프의 심리변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살인이라는 행위 이면에 깔려 있는 훨씬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를 건드린다. 작가의 질문은 이런 것이다. 어째서 살인이 '죄'인가? 혹은 왜 살인범이 '벌'을 받아야 하는가? 얼핏 보기에 이런 식의 질문은 마치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대답을 기대하는 것 같다. 인간의 생명은 조물주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심판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하는 것이라는 식의 거창한 대답 말이다. 물론 이런 식의 대답말고도 얼마든지 거룩한 답변이 가능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그것과는 약간 다른 것이다.
소설을 인용하여 앞서의 질문을 좀 더 구체적인 형태로 바꿔보면, 나폴레옹이 전쟁을 통해 벌인 대량 살상은 죄가 되지 않는데 고리대금업자 노파 한 명을 죽인 라스꼴리니코프의 행위는 왜 죄가 되는가. 이런 식으로 질문을 바꾸어 놓고 보니 이 질문에 선뜻 답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이 질문은 더욱 신선하다.
하지만 이 긴 소설을 다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아쉬운 점은 이 신선한 질문에 대한 대(大) 작가의 답이 별로 신선하지 않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성적이고 철학적인 답을 해줄 듯이 질문을 던졌지만 결국 작가가 답을 구하는 과정과 계기는 지극히 종교적이고 비이성적이다. 소냐의 희생과 어머니의 죽음. 시베리아 유형지에서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라스꼴리니코프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게 되는 이 두 가지의 결정적 계기는 지나치게 신파적이고 쉽사리 수긍이 가지 않는다.
이성적으로 시작한 소설의 감상적인 결말. 다소 실망스런 기분으로 책장을 덮으며 혼자 생각해 보았다. '근데 왜 노파를 죽인 게 죄지?' 라고가 아니라 '왜 나폴레옹의 살인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