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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론리하트
너새네이얼 웨스트 지음, 이종인 옮김 / 마음산책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피츠 제랄드와 윌리엄 포크너에 비견될 만한 작가라는 카피에 솔깃해서 선택한 책이다. 이런 식의, 누구누구는 누구누구에 비견될 만하다는 식의, 카피는 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방식에 혹해서 사게 되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 곰곰이 되짚어 보면서 든 생각이지만 위의 두 작가가 실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루키가 그렇게 칭찬해 마지않았던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으나, 물론 그의 말대로 세 번을 읽은 것은 아니다,
그가 왜 그렇게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작가인 지 알 수는 없었으며 포크너 상을 받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기는 했지만 정작 포크너의 작품은 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이상 문학상 수상집은 열심히 읽었지만 이상의 소설은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 나왔던 '날개' 말고는 읽은 적이 없으며,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작가들의 작품들은 읽었지만 영화화된 '라생문'말고는 아쿠타가와의 작품은 읽은 적이 없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위대한 개츠비'나 '미스 론리 하트'나 등장인물에게 쉽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면 비슷한 류의, 그게 카피의 의도는 아닌 것 같지만, 작가인 것 같기도 하다.
미스 론리 하트. 소설의 제목을 직역해보면 '외로운 영혼의 여자' 쯤 될 것 같다. 한국말로 엉성하게 직역을 해놓고 보니 꼭 안마 시술소나 룸살롱 광고 전단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문구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미스 론리 하트는, 책 소개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여자가 아닌 남자이다.
그가 하는 일은 독자들이 편지로 보내는 사연을 보고 입에 발린 위로를 칼럼에 쓰는 것이다. 이것 역시 책 소개에 나와 있다. 절망녀를 비롯한 이러저러한 여자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고통을 나눠 가질 것을 기대하며 편지를 보내고 미스 론리 하트는 그들의 짐을 덜어주는 척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행위들이 위선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오직 위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모든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은 오직 신문의 지면을 통해서 뿐이며 미스 론리 하트에게 이 일은 지긋지긋한 '사무'이지 절대로 외로운 영혼들의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면 속에서만 이루어지던 이 지겨운 사무가 일상에서 이루어진다면? 편지를 보낸 독자를 실제로 만나고 그들의 고민을 듣고 해결해야 한다면? 편지를 보낸 절름발이의 아내와 정을 통한 후 이 지겨운 사무를 그리스도의 사명과 같이 생각한 미스 론리 하트의 운명은 결국 절름발이의 총 한방으로 파국을 맞는다. 미스 론리 하트가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사실. 절름발이의 아내의 딸이 절름발이의 딸은 아니라는 사실. 이러한 진실이 오히려 거짓보다 낯설게 느껴지는 사회에서 진실이라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따라서 미스 론리 하트의 진심은, 내가 그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유죄이다. 자신을 철저히 감출 것. 그렇지 못한다면 총살이다.
작품에는 안 나와 있지만 미스 론리 하트의 마지막 대사는 아마도 이 말이었을 것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