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회 - 더글러스 애덤스의 멸종 위기 생물 탐사
더글라스 아담스 외 지음, 최용준 옮김 / 해나무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에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 코뿔소의 뒷 배경으로 희미하게 'last chance to see' 라고 적혀 있다. 직역하면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이것이 이 책의 원제다. 따라서 책표지만 봐도 어느 정도 책 내용이 감이 잡힌다. 멸종동물에 관한 이야기. 이런 생각이 금방 떠오를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금방 아냐고? 솔직히 말하면 '멸종 위기 생물 탐사'라는 부제가 제목 옆에 새빨갛게 찍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책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멸종동물을 보호하자는 얘기다. 혹 이런 주장에 콧방귀를 핑- 뀌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밍크 목도리를 두르고, 악어 가죽으로 만든 핸드백을 만지작거리며, 코끼리 상아로 장식된 목걸이를 드러낸 채, 자연의 법칙을 통달한 듯한 말투로 위대하신 다윈 할아버지의 진화론을 들먹거리며 '센 놈'을 선택하여 적자생존 시키는 것이 엄연한 자연의 법칙인데 그깟 동물하나 없어지는 것이 대수야! 물론 이런 식으로 진화론까지 들먹거리며 조목조목 따지고 든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저희들끼리 오순도순, 알콩달콩, 평화롭게 살고 있었을 동물들이 어처구니없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인간적인(?) 이유로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을 안 뒤에도 그걸 적자생존이니 어쩌니 하는 거창한 이유를 달 수 있을까? 예를 들면 북부흰코뿔소의- weit(넓은)이라는 원주민의 말을 영국인들이 제멋대로 영역(英譯, white)한 탓에 발생한 명칭이란다- 경우 단지 뿔이 두 개라는 이유로 다른 코뿔소들을 제치고 제일 먼저 멸종 위기에 처했다. 그 이유인 즉 코뿔소의 뿔이 단검자루의 재료로 쓰이는데 불행하게도 이 놈의 코뿔소는 그걸 두 개나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두 배, 아니 그 이상 위험할 수밖에! 몇 백년 후의 인류는, 그 때 까지도 인류가 역사라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면, 이 엽기적인 해프닝을 어떻게 기록할까?

'당시의 인류가 북부흰코뿔소라고 명명한 (20세기 인류는 색을 감별하는데 영 잼병이었던 것 같다) 종(種)은 20세기에 갑자기 숫자가 줄었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항간에는 고작 12달러 짜리 칼자루를 만들기 위해서 그들을 마구잡이로 죽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건 화성인들이 지구인들을 음해하기 위해 퍼뜨린 유언비어로 생각된다. 단 12달러 때문에 코뿔소를 멸종시켰다는 사실을 누가 곧이곧대로 믿겠는가!'

'멸종동물 탐사기'라는 부제만 놓고 언뜻 생각해 보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호소가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동물학자인 마크 카워디언이 아니라 코믹 SF 작가인 더글러스 애덤스이다. 따라서 그런 식의 주장이나 호소는, 전혀 없다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거의 없다. 배고프면 새끼도 잡아먹는, 이른바 존속살해를 자행하는 비정한 코모도왕도마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책의 초반부는 여행지에서 겪게 되는 해프닝과 공항 곳곳에 배치된 복지부동의 공무원들에 대한 신랄한 불평 불만으로 빼곡이 채워져 있다. 하지만 낄낄거리며 읽을 수 있는 부분은 책의 중반부까지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의 어조는 무거워진다. 아무런 저항없이 무덤덤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날지 못하는 카카포 이야기와 유람선의 음악소리 때문에 죽어 가는 앞을 못 보는 양쯔강돌고래 이야기는 연민의 감정을 넘어 엄숙함까지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이 엄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멸종 동물들이 겪고 있는 비극 때문만은 아니다. 2 미터에 가까운 거구의 코믹 SF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는 2001년 5월 심장병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그의 신랄하고 재기 넘치는 글재주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이 책이 마지막인 셈이다. 마지막 기회, 이 책의 제목이 정말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