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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고른 유일한 이유. 제목이 맘에 든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샀다. 내게 이런 일은 드물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선배들이나 혹은 친구들이 얘기해 준 책 중에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책은 이것저것 물어보느라 일 주일 정도 보낸 뒤 사곤 했다. 하지만 인터넷 서점이 생긴 후부터는 조금 달라졌다. 굳이 서점에 가서 책을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되고 친구와 선배들에게 물어 보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 서점에서 꼭 확인한다. 아직 문명화되지 못한 탓이다. 그냥 인터넷 서점에서 제목이 맘에 들어서 산 책. 특별한 책이다. 정확히 말하면 책이 특별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책을 사게 된 경위가 특별하다는 얘기다. 전경린이 어떤 작가냐? 어떤 식의 소설을 쓰느냐? 뭐, 그런 시시콜콜한 정보없이 그냥 샀으니까.
앞서의 모든 횡설수설이 그닥 논리적인 구매 동기가 되지는 못하지만, 아니 못하기 때문에 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은 '내 생에 꼭 한 권뿐이어야 될 특별한 책'이라는 부제를 붙여 주고 싶다. 제목만 보고 아무 정보 없이 산 특별한(?) 소설이므로.
하지만 이 특별함이 소설을 읽은 후의 특별한 느낌으로 이어졌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불행하게도, 아주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하다. 작가는 여자, 주부가 겪어야만 하는 일상의 비루함과 진부함과 지루함을 탈출하려는 주인공 미흔에게 '불륜', 혹은 속된 말로 '맞바람'이라는 통속적인 비장의 카드를 쥐어줬지만 주인공 미흔이 그 카드를 쥐고 자신이 속한 일상을 벗어나는 도박에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물론 현실이 엄연히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겠느냐는 반론을 편다면 그녀가 느닷없이 자신이 속한 일상을 혐오하게 된 동기, 혹은 작가가 주인공 미흔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지는 수밖에 없다.
소설이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주인공 미흔은 표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다. 혹시 작가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변하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전달하려 한 것일까? 하고 싶은 질문은 많지만 어떤 질문을 해도 궁극적으로는 작가의 편협한 시선과 지나치게 협소한 세계관이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결국 문제는 소설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바깥, 작가에게 있다, 그게 그 얘기지만.
전경린은 치밀하고 섬세하고 단단한 문장을 가진 소설가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통속적인 일상을 넘어서기에는 빈약해 보인다. 통속적이고 허술한 일상을 날카롭게 그려내는 작가들은 많지만 그걸 넘어서는 작가는 별로 없으며 그런 경지에 오르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생각보다 통속을 뛰어 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 더 있어야 한다. 나도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소설 '내 생에 하루뿐일 특별한 날'이 '내 생에 한 권뿐일 특별한 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작가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넘지 못하면 작가의 한계가 되는 거고, 넘게 되면 전환점인 그런 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