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로봇이야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이기원 옮김 / 동쪽나라(=한민사) / 1993년 12월
평점 :
절판


만약 단순히 '읽을꺼리'가 필요했다면 무수히 많은 책 중에서 굳이 이 책을 선택할 필요는 없었다. 또 아시모프의 작품을 읽으려 했다는 것도 충분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나중에 읽으려고 아끼느라 안 읽은 로봇 시리즈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다른 개인적인 이유라면, 한 달 후에 태어날 아기 때문에? 글쎄, 아기랑 이야기하려면 한참 걸릴텐데 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꼬집어 한가지가 결정적인 이유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마도 위의 모든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해석일 듯 싶다. '읽을꺼리'가 필요했고 그러던 중에 이 전에 읽었던 '강철도시'를 들춰보게 되었다.

책머리에 아시모프가 쓴 '독자들에게'를 다시 보게 되었고, 다시? 서문을 그 당시에 읽었나?, 그가 19살에 쓴 단편 'Robbie'의 내용을 보게 되었다. 소녀를 사랑하게 된 로봇의 이야기라는 간략한 설명이 왠지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만들었고 그가 단편 'Robbie'와 몇 가지 이야기를 묶어서 'I, Robot'이라는 책을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I, Robot', 한국말로 직역하면 '나는 로봇'. '그런 제목의 소설이 한국에 나왔나?'라고 생각하다가 '서른이 넘었는데 무슨 동화냐?'라는 생각으로 잠시 넘어갔지만 출산을 앞둔 아내의 불룩해진 배는 한 달 후면 단지 한 사람의 성인일 뿐 아니라 한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아빠'라는 어색한 호칭과 함께 그 때 든 생각. 한 달 후면 아기가 태어나고 몇 년 지나면 옛날 이야기를 해주거나 아이의 책을 골라 줄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래 한 번 확인이나 해보자. 인터넷 서점-책찾기-저자명: 아시모프. 결국 이 모든 사건들이 연쇄적이고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는 로봇이야'를 고르게 되었다.

알고 보면 간단하지만 나름대로 복잡한 절차를 통해 고른 이 책은 더 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읽을꺼리'이다. 하지만 이런 평은 이 책에 대한 칭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평범하다. 비록 그가 '소녀를 사랑한 로봇(원제:Robbie)'을 쓸 때의 나이가 19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할 지라도 이 작품이 갖고 있는 특별함을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물론 어떠한 수식어와 미사여구를 갖다 붙인다 한들 아시모프의 위대함을 다 표현하기는 어렵겠지만.

'나는 로봇이야'는 아시모프의 다른 작품이 주는 즐거움과는 다른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그것은 이 작품이 훌륭한 '읽을꺼리' 일 뿐 아니라 훌륭한 '이야기꺼리'라는 것이다. 아시모프 할아버지는 75세의 수잔 박사라는 세헤라자드를 통해 끝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사랑스런 로봇들의 아라비안 나이트를 펼쳐 보인다. 로비는 소녀를 사랑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별하고, 스피디는 로봇 공학 법칙 때문에 위기에 빠지며, 큐티는 열등한 인간이 자신을 만들었을 리 없다는 귀여운-다른 작품이라면 굉장히 위험한-착각에 빠진다.

마치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같이 반복해서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들은 미쳐버린 데이브, 마음을 읽는 허비, 사라진 네스토르10, 시장이 된 스티븐으로 계속 이어진다. 이 책이 훌륭한 '이야기꺼리'라고 한 것은 단지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도 질리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앞으로 몇 번 더 읽어서 거의 외울 정도가 되면 아이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좋은 '이야기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가 오면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옛날 옛날에, 아니지. 아주 가까운 미래에 사랑스런 로봇들이 살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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