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살인 - 범죄소설의 사회사
에르네스트 만델 지음, 이동연 옮김 / 이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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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특히 장마비가 구질구질하게 내리는 여름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된다. 살해된 이유도, 방법도, 장소도 다양하다. 때로는 해묵은 원한 때문에, 때로는 돈 때문에, 때로는 애증(愛憎)때문에 살해된다. 인적이 드문 거리에서 칼에 찔린 채 발견되는 수도 있고, 조용한 시골 마을의 가정에서 총을 맞은 채 발견되는 수도 있다. 상류층의 대저택에서 독살되어 창백한 시체로 발견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사실보다 더 끔찍한 사실을 하나 더 추가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 엄청난 살인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긴다는 것이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사람들은 새로 발생하는 살인이 이전보다 훨씬 교묘한 방법으로,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인물에 의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물론 소설 속에서.

끔찍한 '살인'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맑시스트라고 해서 예외가 되지는 않는 듯하다. 범죄 소설 애독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맑스주의 경제학자 에르네스트 만델은 '즐거운 살인'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인이 어떻게 즐거움의 대상이 되었는가라는 쉽지 않은 화두를 풀어낸다. 그의 질문을 다른 식으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끔찍한 살인'이 '즐거운 살인'이 되었는가이다.

물론 저자 자신이 '즐거운 살인'의 초반부에 언급했듯이 이 질문에 대한 평범한 모범 답안은 '기분전환' 혹은 '대리만족'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일상에서 도저히 할 수 없는 행위를 소설 속에서는 초인간적인 능력을 지닌 탐정이 대신해 준다. 복잡하고 미궁에 빠진 듯한 사건을 놀라운 지적능력으로 풀어나가는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주인공이 소설 속에서 이룩한 행위로부터 독자는 만족감을 느낀다. 결과적으로 독자는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고 '기분전환'에 성공한다. 이런 식의 분석이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자에게나 독자들에게나 여전히 만족스러운 답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왜 하필 '살인'인가 하는 의문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 문고판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 있는 소재가 왜 하필 '살인'이 되었을까? 운명을 넘어선 사랑처럼 고귀하지도 않고 보물을 찾기 위한 모험처럼 신비롭지도 않은 '살인'이라는 소재에 사람들은 왜 이렇게 열광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얘기하기보다는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범죄소설의 폭발적인 인기가 갖는 의미를 해석하는 것에 더 치중한다. 그는 범죄 소설의 무대가 전 세계로 확대돼 온, 또는 개인 대 개인의 범죄에서 국가 대 국가의 범죄로 확대돼 온 범죄 소설의 변천사를 지적하면서 이러한 확대가 자본주의 사회 전체가 모순 덩어리의 거대한 범죄 조직임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저자의 해석이 왜 하필 '살인'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 되지 못하고 나 자신도 저자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비록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 책을 읽는 것은 여전히 제목만큼이나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약간 엉뚱한 이유 때문이다. 그중 하나의 이유는 마구잡이로 또는 단순히 흥미위주로 읽던 범죄소설의 자세한-수많은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열거된- 지형도를 얻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고전이 된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학은 사회의 거울'이라는 해묵은 명제를 증명한 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범죄 소설의 사회사'라는 이 책의 부제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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