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운명이라는 착각. 5840.82분의 1의 확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비행기 안의 수많은 좌석 중에서 하필 내 옆자리에 앉게 된다. 그녀의 웃음, 약간 벌어진 치아의 틈. 어느 순간 내가 그녀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한다. 그녀를 만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운명이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난 그렇게 생각한다.

아! 내가 이런 운명적 사랑을 경험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정말 그녀가 과연 나의 '줄리엣'이나 '엘로이즈'일 수 있을까? 혹은 그녀와 내가 타고 있는 이 비행기 안이 운명론적 사랑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과연 캐퓰릿가의 무도회장이나 중세의 수도원이 될 수 있을까?

사랑에 대한 낭만적 운명론을 확신하는, 또는 확신하고 싶어하는 한 철학자의-이십대의 철학 전공자라고 해야 더 옳은 표현일 것 같지만- 사랑의 문장은 대답할 수 없는 수많은 물음표를 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단지 작가가 철학자이기 때문에 질문이 많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본래 사랑의 과정이라는 것이 답을 알 수 없는 의문부호 투성이의 문장으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의 사제조차도 피할 수 없었던 큐피드의 화살이 철학자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었나 보다.

알랭 드 보통은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 생각하게 되는 운명적 사랑이라는 화두를 작가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적 사유로 풀어낸다. 하지만 원래 이런 낭만적 운명론의 마지막 문장을 장식했던 단어는 그것이 5일간의 짧은 문장이든, 아니면 평생을 걸쳐 써내려 가야하는 긴 문장이든 간에 '죽음'이나 '비극'이라는 끔찍한 단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독약과 칼로 문장을 완성하였고 아벨라르와 엘로이즈가 거세와 탈속(脫俗)으로 문장을 완성시켰듯, 작가 역시 '실패한 자살시도'라는 단어로 자신의 문장을 완성시킨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소설의 끝은 새로운 연인과 함께 또 다른 문장을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사랑'이라는 지극히 비논리적인 감정 상태를 논리적 언어로 차분하게 풀어 나가는 작가의 글쓰기 방식에 반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다소 현학적이지만 섬세한 감정 묘사와 분석 역시 이 책을 좋아하는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사랑의 실패를 헤쳐 나오는 작가의 인생관이 굉장히 건강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는 '사랑의 끝=자살'이라는 자아 도취적 등식에 손을 들어주지는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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