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는 존경할 만한 소설가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평가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확실히 한국 소설이 갖고 있는 무거운 주제, 달리 말하면 근엄함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김영하는 최인훈이나 황석영 같이 분단이나 이념을 주제로 소설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것들에 철저하게 무관심하다. 그의 첫 장편소설도 그랬듯이 소설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근엄한 주제에 대하여 여전히 무관심하다. 소설집 어느 곳에서도 이념의 상흔이나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은 없다. 따라서 그는 존경받는 작가가 될 수는 없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존경받는 작가라는 범주에 속하게 되는 것에조차 무관심한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재미있는 작가이고 재능있는 작가임에는 분명하다. 그의 소설들은 아주 자극적이고 흥미진진하다. 자판기 커피만큼이나 자극적이고 홍콩 느와르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을 보았던가!). 그래서 그의 소설들을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 그의 소설들은 '작품'이라기 보다는 '읽을거리'에 더 가깝다. 때로는 추리소설('사진관 살인사건')의 형식을 취하기도 하고 때로는 괴담('흡혈귀')의 형식을 취하기도 하면서 그의 소설들은 '읽을거리'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이 소설집은 다양한 종류의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읽을거리'들을 한데 모은 것이다. 극장으로 비유하자면 대 여섯 개의 개봉영화를 동시에 상영하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라기 보다는 동네 후미진 곳에 자리잡은 동시상영 영화관에 가깝다. 또 음식점으로 비유한다면 전통 한식집이라기 보다는 모듬김밥, 참치 김말이 주먹밥, 온갖 종류의 사발면의 전시장인 24시간 편의점에 더 가깝다.

사람들이 항상 멀티플렉스 영화관만 찾는 것도 아니고 늘 정통 한식만을 먹고 싶은 것도 아니다. 때로는 음침한 동시상영 영화관에서 약간은 불온한 일탈을 꿈꾸고 싶을 때도 있고 24시간 편의점에서 아주 달작지근한 캔커피와 함께 사발면의 자극적인 국물 맛을 즐기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감상과 음미가 아닌 단지 자극의 소비를 위해서 그 곳을 가끔씩 찾는다. 따라서 나는 김영하의 소설을 읽지 않는다. 단지 소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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