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퀴즈 플레이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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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 주 이상 푹푹 찌는 무더위가 계속된다. TV와 신문에서는 연일 더위를 피하기 위한 갖가지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기 바쁘다. 거기서 제시한 모두를 다 해 보고 자신에게 가장 맞는 것을 찾는 순간 여름이 다 가버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물론 그것도 더위를 피하는 일종의 방법인지도 모르지만 난 고전적인 방법이 좋다. 뭐냐하면 추리소설을 읽으며 열대야로 잠이 오지 않는 밤을 약간의 머리(포와로 식으로 말하면 '회색빛 뇌세포')를 쓰며 보내는 것. 이게 내가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하면서 확실한 피서법이다.

코난 도일도 좋고 아가사 크리스티도 좋다. 단지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라면 작가가 누구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앞서의 작가들은 뭘 읽고 뭘 안 읽었는 지 잘 모르는 탓에, 읽다 보면 '어! 이거 범인이 OOO잖아!'하는 허탈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뭘 읽지? 전통적인 추리 소설 작가가 아니면서 탄탄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 이런 생각을 하며 떠오른 것이 폴 오스터와 그가 쓴 추리소설 '스퀴즈 플레이'다.

그의 소설을 읽고 나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스퀴즈 플레이' 역시 폴 오스터 답다는 것이다. 빠른 전개. 장면과 장면사이의 화려한 도약. 개연과 우연의 절묘한 조화. 비록 추리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었지만 작가로서의 그의 역량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협박편지를 받은 야구선수 채프먼이 신변의 위협을 느껴 사립탐정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의 전개 속도는 거의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직구 속도 정도 된다.

고전적인 추리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논리적이지 않은 추리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우연을 필연적인 운명으로, 환상을 현실로 둔갑시키는 작가의 재주는 탐정의 비약과 추측을 논리적인 추리로 둔갑시켜 버린다. 소설을 읽으며 가장 폴 오스터다운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절정에 이르러 주인공이 아들과 함께 야구를 보는 장면이다. 아니, 탐정이 범인은 안 잡고 왠 야구?

더 이상을 말하는 것은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실례가 되기 때문에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하자. 참, 잊은 게 있다. 스퀴즈 플레이는 메이저리그에서 그리 흔하게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다. 다른 제목을 제쳐놓고 굳이 이 제목을 쓴 이유가 뭘까? 이걸 이해하는 게 이 소설의 모든 비약적인 추리를 이해하는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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