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백 희곡전집 1 이강백 희곡전집 1
이강백 지음 / 평민사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평민사에서 나온, 정확히 말하면 나오고 있는 이강백 희곡전집 시리즈는 희곡작가로서 그의 변모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작가 생활도 오래되었고 상을 받은 작품도 워낙 많지만 그 중에서도 그의 흥행작(?)을 꼽으라고 한다면 제19회 서울연극제 희곡상과 제4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영월행 기행'과 제 22회 서울 연극제 희곡상과 연출상등 5개 분야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은, '느낌, 극락같은'을 들 수 있다.

이 두 작품 모두 후반기의 작품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가 단막극을 쓰던 시절의 희곡들이 담겨 있는 1권이 더 정이 간다. 그의 말에 의하면 1권 속의 작품들이 골방의 작업실에 갇혀 있던 자신을 햇살 가득한 세상으로 나오게 한 작품들이란다. 그런 탓에 초기의 우화적인 작품들은 지하실의 습기 찬 골방처럼 어둡고 쓸쓸하다.

1권에 포함된 작품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셋'과 '결혼'이다. '셋'은 장님인 두 아버지와 죽음을 담보로 한 서커스를 하는 아들이 주인공이다. 무차별적인 운명을 상징하는 두 아버지와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인간을 상징하는 아들. 결국 아들은 죽고 두 아버지는 또 다른 공연을 준비한다. 인간은 아무도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인생이라는 것은 죽음으로 막을 내리는 반복적인 공연이다. 작가가 파악한 인간사에 대한 이러한 통찰을 우화적으로 드러낸 이 작품은 한국 연극사에 길이 남을 부조리극이자 블랙유머이다.

1권의 맨 마지막 작품 '결혼'은 '덤'이라는 여인, 그녀를 사랑하게 된 가난뱅이 백수, 백수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하인이 등장한다. 시간이라는 하인은 남자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아가지만 사랑은 인생의 '덤'으로 주어진다. 결국 영원한 것은 '덤'으로 주어진 사랑이라는 작가의 소박한 결론이 희극적으로 그려진 '결혼'은 1권의 작품 중에서 가장 밝고 대중적인 작품이다.

언제부터였는 지는 모르지만 연극은 의욕은 있으나 돈 없는 대학생들과 연극을 위해 대책 없는 충성을 맹세한 일부 가난한 예술인들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전업희곡 작가를 한다는 것은 확실히 미련한 선택이다. 그런데 이런 미련한 선택을 수 십 년 째 고집하며 창작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이강백이다. 여기다 한 마디 더 보태면 돈 안 되는 연극서적을 꾸준히 출판하고 있는 평민사의 뚝심 또한 작가의 그것만큼이나 대단하다. 이 책은 이 둘의 뚝심이 만들어 낸 첫 결실인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