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김은식 지음 / 이상미디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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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산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들은 날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자서전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와 함께. 그러니까 그동안, 책을 산 이후로 읽기 바로 직전까지, 이 책은 김대중 대통령의 자서전과 함께 나란히 책꽂이에 꽂혀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은 것은 바로 그 날이었다. 기아가 야신이 이끄는 SK와 한국시리즈 7차전을 하던 날이었고, 두 아이의 엄청난 짜증을 들으면서 겨우겨우 TV 채널을 사수하고 있던 날이었고, 1-5로 뒤질 때 즈음에는 경기를 거의 포기하면서 보고 있던 날이었고, 드디어 기아의 3번타자 나지완이 9회말 스크의 수호신-몸집으로 따지면 수호'산'에 가깝지만- 채병용의 안쪽 높은 직구를  홈런으로 만들었던 그 날, 그래서 집에서 자축하며 캔맥주를 마셨던 날. 그 모든 일들이 있었던 날, 단 하루 만에 즐겁게 맥주를 마시면서 다 읽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김대중 대통령의 부고를 듣고 샀던 책을 기아가 우승한 날 다 읽었다. 근데 이 책의 제목이 <해태타이거즈와 김대중>이다. 그렇고 보니 김대중, 광주, 해태타이거즈가 왠지 관련이 있는 것같다. 알고보면 그 사실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대충은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80년 광주항쟁을 공수부대로 제압한 전두환정권이 정치적인 치부를 무마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수많은 프로스포츠였고,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프로야구 였던 것이다. 그리고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우승을 기록했던 팀이면서, 브라보콘 팔아서 연봉을 줘야할 만큼 가난했던 팀이 바로 해태 타이거즈 였다. 근데 이 브라보콘 팀의 성적이 좀 황당하다. 15년만에 9번의 우승이라......  

이 모든 것은  왠만한 야구팬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이게 뭐 새로운가?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은 전혀 새롭지도 신선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 점이 이 책의, 또는 야구의 진정한 가치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정치적인 의도로 시작했어도 십 년이 되고 이 십년이 되고, 삼십년이 되면 결국 남는 것은 전두환과 정치권의 의도가 아니라 야구다. 정치는 떠나고 야구만이 남는 것이다. 사람들이 열광하고, 실망하고, 감동했던 것. 그것이 어떻게 시작했건간에 그건 야구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은 신선하지도 새롭지도 않지만 재미있다. 왜냐하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이 전두환 정권의 탄생과 광주항쟁의 의미도, 그들이 야구를 어떻게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했는가에 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단지 한국 '야구'일 뿐이다.    

기아가 우승하는 순간, 잠실구장의 기아 응원석에서는 해태타이거즈의 응원가였던 '목포의 눈물'이 흘러 나왔다. 그런데 왠걸? 아무도 따라 부르는 이가 없어서 중간에 그만 뒀다고 한다.'김대중-광주 민주항쟁-해태타이거즈-목포의 눈물' 로 이어지는 무조건 반사와도 같은 연쇄반응이 이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2009년의 한국시리즈 우승팀은 브라보콘을 파는 해태의 타이거즈가 아니라 오피러스와 K7을 수출하는 기아의 타이거즈이기 때문이다. 이종범의 말처럼 기아타이거즈 선수들도 예전처럼 전라도 출신이 주축이 아니다. 7차전에서 홈런을 터뜨린 안치홍, 나지완 모두 서울 출신의 선수들이고, 기아의 팬들 또한 전라도라는 지역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기아 팬들이 '목포의 눈물'에 꿀먹은 벙어리일 수 밖에! 

안타깝지만 해태 타이거즈는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의 말처럼 15년만에 V9를 달성했던 전무후무한 강팀의 전설은 이제 사람들의 뇌리에 아련한 추억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아무리 떠올려 보려 해도 더이상 그들의 모습이 쉽게 떠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마치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가 그런 것처럼. 

하지만 누가 알랴? 언젠가 그분과 그들의 정신이 필요할 때가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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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2-19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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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FC1995 2010-04-02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알기로는 목포의 눈물을 단장이 불러달라고..
꼭 우승하고 싶다고 해서.. 많은 올드팬들이 끝까지 노래를 불렀다고 하더라고요 ^^

지인을 통해 들은 이야기도.. 그렇고 ^^
가슴 뭉클했다고 하던데 ㅎㅎ;;

해태타이거즈는 없어질 수 없습니다.
없어져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전신이었지만.. 그 추억까지 버릴 수 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