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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과학에 관한 책들과는 달리 이상하게도 '의학'에 관한 책은 잘 안 읽히는 편이다. 의학사에 관한 것은 특히나 더 그렇다. 수학사, 물리학사, 기학학의 역사 등은 재미있는데 왜 의학사는 재미가 없을까? 의학사가들의 글 솜씨가 특별히 다른 이들에 비해서 떨어지는 것은 아닐텐데. 어쨌거나 이 책 역시 여러군데서 읽었던 좋은 평에도 불구하고 별로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 책에 관한 언급 중 가장 의외의 언급은 연출가 피터브룩의 평전에서 이 이 책을 바탕으로 연극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의학' 특히나 특이한 '환자'들의 이야기라는 것 때문에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던 탓으로 이 책은 책장에 오랫동안 꽂혀 있었다. 결국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학생들 수업의 교재로 이 책을 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학생들만 읽게 할 수는 없으므로 나도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예상대로 이 책은 의학에 관한 것이었고, 그 중에서도 신경과질환, 희귀한 신경과 질환에 걸려있는 환자에 관한 것이다. 환자에 관한 꼼꼼한 기술, 의학적 설명까지는 예상한바다. 그것은 누가 책을 썼더라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묘미는 이러한 의학적 기술을 철학적인 문제의식으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환자들이 겪고 있는 신체적인 결함은 실존의 문제로 이어진다. 아니 작가는 이러한 연결을 기막히게 매끄럽고 진지하게 해낸다. 그래서 감동적이다.
신체적인 결함에 대한 의학적인 해석, 그리고 환자들이 겪고 있는 일상과 실존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찰. 어찌보면 희한한 증례들에 대한 기록을 묶어논 책에 불과하지만 이 책의 의미가 거기서 끝나지 않는 것은 '실존'의 문제가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의학을 알든 모르든 상관이 없다. 실존에 관한 고민은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이 특별해진 것은, 또 유명해진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