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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오랜만에 황석영의 소설을 읽었다. 산 지는 꽤 됐는데 이러저래 미루다가 최근에야 읽게 되었다. 초기의 황석영 소설들에 대해서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삼포로 가는 길', '돼지꿈', '무기의 그늘'......좀 지루한 소설들이었다는 기억만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대하소설 <장길산>도 중반이후 부터는 지루했다.
개인적으로는 황석영의 소설중에서 가장 좋았던 소설은 <손님>이었다. 이런 소설은 아마 세계에서 황석영 혼자만이 쓸 수 있을 것 같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바리데기> 역시 황석영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 속에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가난과 풍요, 삶과 죽음, 귀신과 종교, 고귀한 것과 비천한 것들이 조화롭게 들어 있다.
덧붙여 이 소설이 황석영 '표'인 것은 황석영 자신의 장기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디테일들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아우르고 있는 공간과 정신적인 외연은 방대하다. 작품 속에서 북한, 중국, 영국, 아프리카와 이라크로 이어지는 공간의 변화와 바리데기라는 토속신화에서 출발해서 아프리카의 영매로 연결시키는 작가의 역량이 놀라울 따름이다. 한반도라는 세계의 귀퉁이에서 시작한 바리데기의 생명수 찾기는 바다를 건너서 영국이라는 섬에서 끝이 난다. 바리가 생명수를 찾아서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건너면서 깨달은 것은 '희망'에 대한 믿음이다. 어쩌면 바리가 찾던 생명수는 본래 부터 '희망'이라는 모습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닐까.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 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만,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 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286쪽)
추신: 이 글을 쓴 이후에 느낀 건데, 이 소설이 얘기하고자 하는 희망의 본질, 또는 희망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가 굉장히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내가 무덤덤해서 그런거라고 느꼈는데 꼭 그것 만은 아닌 것 같다. 한국에서 영국으로 이어지는 노정과 바리라는 무당과 아프리카의 영매까지 동원했지만 희망, 절망, 평화, 전쟁...... 이런 엄청난 무게의 가치들에 대해서 깊이있게 성찰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여기저기 구경만 하다가 간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추신을 달다보니 <손님>에서 보여준 탄탄함이 못내 아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