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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보다 긴 하루 ㅣ Mr. Know 세계문학 14
칭기즈 아이트마토프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분량으로 따지면 '하루'보다는 '백년'에 가까운 소설 '백년보다 긴 하루'는 낯선 소설이다. 이 소설이 낯선 것은 단지 작가가 끼르끼즈 공화국이라는 낯선 곳의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친구의 장례식, 지구 밖으로 발사되는 우주선, 우주인들의 실종, 외계인과의 만남, 유목민들에게 내려오는 전설과 등장인물들의 과거. 이런 이질적인 이야기들이 뒤섞인 이 작품에서 어떤 독자들은 작가가 처했던 '정치적' 현실을 읽어 낼지도 모르겠다. 또는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를 떠올릴 지도 모른다.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과 이념의 문제가 너무 오래된 냄새가 나서 식상한다고 해서 이 소설을 읽지 않는다면 진짜 손해다. 이 소설이 그려내는 백년같은 '하루'의 무한함을 상상할 수 있는가! 책을 읽기전에 독자들은 '백년보다 긴 하루'라는 제목이 뭔가 있어보이려는 상징이려니 하고 지레 짐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소설이 그려내는 '하루'는 독자로 하여금 백 년만큼의 무한한 길이를 느끼게 해준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너무나 광활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빽빽한 도심의 손바닥만한 하늘과 골목길만을 경험한 나같은 사람들은, 아니 좀 더 나아가서 한국이나 일본처럼 좁은 땅에서 아옹다옹하며 지내야하는 이들은 절대로 이런 소설을 쓸 수 없을 것이다. 너무 단정적인가?
하지만 이 소설이 감동적인 것은 규모나 정치적 알레고리 때문이 아니다. 나는 이 소설을 한 남자의 '사랑'에 관한 소설로 기억하려고 한다. 발정난 낙타와 낙타를 매로 길들이는 주인공, 나와 사랑하지만 사랑하면 안 되는 여인, 끝없는 기차길과 우주, 이런 단어들이 떠오른다. 이런 단어들이 마음을 어지럽히고 하루를 백년처럼 느끼도록, 아니 백년 만큼의 무게로 기억하도록 해준다.
이 소설 속의 하루가 백년 같은 것은 길이 때문이 아니라 무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