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 셰익스피어 & 컴퍼니
제레미 머서 지음, 조동섭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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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몇 주전에 파리에 가는 동생에게 <셰익스피어 & 컴퍼니>에서 아무 책이나 한 권 사달라고 부탁했다. 위치는 잘 모르지만 워낙 유명한 곳이라 파리에 사는 누구에게 물어보든 잘 알거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동생은 내게 책 한권을 사다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형, 그 옆 건물에 있는 빵집 주인도 모르던데 유명한 서점 맞아?"

<글쓰기 생각쓰기>의 작가 윌리엄 진서는 글을 쓴다는 것이 결국 나를 파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그는 이 말을 여러번 반복해서, 그리고 변주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인상적인 말을 하나 꼽으라면 야구에 관한 글, 새에 관한 글, 정치에 관한 글을 야구 용어와 조류학 용어와 정치용어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한결 같이 나의 언어로 썼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읽고자 하는 것이 결국 '나' 즉 글 속에 또는 글이 그려내고 있는 공간 속에 존재하는 '사람'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 책은 '나'와 '사람들'을 보여주는데 충실하다. 이것이 이 책이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이유이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 & 컴퍼니>라는 고서점의 역사에 관한 책이 아니고, 또 이 책은 서적 수집가들의 구미를 당기는 책에 관한 신기한 정보들이 있는 책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없이도 이 책은 감동적으로 읽힌다. 아마도 이 책이 철저하게 <셰익스피어 & 컴퍼니>라는 서점을 거쳐간 또는 그곳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리라. 따라서 당연한 얘기지만 서점 주인인 월트 휘트만과 그의 애인과 화자인 '나'와 내가 사랑했던 나디아와 코데인 시럽을 홀짝거리는 알콜 중독 시인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은 흥미진진한 읽을 거리지만 정보와 역사를 원하는 사람에겐 그럴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희극도 비극도 아니며 하나의 일상이며 생활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 책 속에 나온 많은 인물들의 인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동생의 시큰둥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파리에 가면 <셰익스피어 & 컴퍼니>를 꼭 방문하겠다는 내 희망 역시 여전히 진행형이다. 물론 서점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 곳에서 책을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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