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생각쓰기
윌리엄 진서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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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는데 뭔가 적당한 교재가 없을까 하던 중에 알라딘 광고를 보고 선택한 책이다. 소설이나 시를 쓰는 방법 뿐만아니라 '그냥 글'-그냥 글이라는 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을 쓰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나선 책들도 무지하게 많다. 그동안 글쓰기 관련 책들을 꽤 읽어봤음에도 여전히 생소한 책들이 많고 그 생소한 책들을 구경하는 중에도 글쓰기에 관한 책들은 끊임없이 출판된다. 전에는  한국말을 쓰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한국 저자가 쓴 걸 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것 저것 읽다 보니 그게 꼭 좋은 글쓰기 책을 고르는 기준은 아닌 것 같다. 요즘에는 글쓰기의 전통이 오래된 나라의 저자들이 쓴 것이 언어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진실'을 가르쳐 줄 거라고 믿는 편이다. 아직도 글쓰기에 내가 모르는, 하지만 그들은 아는 '보편적인 진실'이 있을 거라 믿고 있나보다. 아니 확실히 믿고 있다. 하긴 비슷비슷한 주제를 다룬, 고만고만한 책들을 사는 이들의 마음 밑바닥에는 늘 이런게 자리잡고 있다, '뭔가 있겠지' 하는 심리.

짜잔! 30년 동안 100만명이 읽은 글쓰기의 고전. 하지만 이 광고 문구가 꼭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몇백만이 읽은 고전이라든가, 몇 십년 동안 몇백만부가 팔렸다는 광고들로 무장한 책치고 좋은 책은 드물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는 거처럼. 적절한 비유가 될른지 모르지만, 유명 대학교수들이 신입생들이 읽어보면 좋다고 추천한, 수많은 인류가 몇 백년 혹은 천 년동안 읽어온 고전이라고 제시한 책 중에 신나고 재미있는 책이 드문 것과도 같은 이치인것 같다. 대부분 지루하고 무지하게 길다. 그 책중에 한권을 운좋게 일년 만에 읽고나도 남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 안든다. 왜냐하면 너무 오랫동안 읽어서 기억이 잘 안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다시 읽기에는 끔찍하기 때문이다. 끝까지 읽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든 생각인데, 결국 끝까지 읽어 본 사람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그래서 당연히 잘 모르기 때문에, 좋은 책이겠거니, 하고 생각해서 추천도서로 정해진 것이 아닐까. 좋다! 이참에 '좋은 책은 지루하고 읽기 힘든 책이다'라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증명해보자. 좋은 책이라는 것은 인생에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것이다. 속담에도 나와 있듯이 양약은 입에 쓰고 독약이 입에 단 것처럼, 또는 충언은 귀에 거슬리고 간언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처럼, 좋은 것이라는 것은 뭔가 쓰고 괴로운 것과 연관되어 있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약이 쓰고 거슬리는 것과 책이 지루한 것은 무슨 상관? 책이 아무리 마음의 양식이라지만 독자들이 그걸 실제로 먹는 것은 아니므로 (일종의 기우!) 마음의 양식이 쓰기 위한 조건은, 다시 말해서 마음의 양식이 진정한 양약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독서의 괴로움을  충분히 줄 수 있는 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양약, 아니 양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고전이나 추천도서가 지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증명하느라 글이 길어졌지만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절대로 고전이 될 수 없다. (이건 이 책을 칭찬하는 말일까?)  나라면 이 책의 광고를 이렇게 바꾸고 싶다. 짜잔, 30년동안 100만명의 독자가 그 누구에게도 추천하지 않은 책!  저자는 간결하고 담백한 어조와 단순한 논리로 글쓰기를 배우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한 수 가르쳐준다. 지루할 틈이 없다. 너무 간결하고 단순해서 읽는 사람이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글쓰기에 관한 거룩한 진실이나 형이상학을 원하는 사람들은 너무 싱거운 소리를 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추천도서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일종의 금단증상이라고나 할까, 적당한 양의 추천도서를 읽어야만 좋아지는. 이 책의 매력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논리에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글쓰기가 힘들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글쓰기가 정말로 힘들기 때문이다 (24쪽)' ,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3쪽)', 

'글은 써야 는다. 그거야 당연한데, 이 말이 당연한 것은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48쪽)'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자는 짧고 단순하게 가르쳐 준다. 마치 단순하지 않은 것은 진리가 아니라는 듯  그의 목소리에는 늘 단순함이 갖는 힘이 있다. 그의 말처럼 그가 오백번 맹장수술, 정확히 말하면 충수돌기염, 을 수술한 외과의사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그가 책 속에서 한 말 중에서 가장 멋진 말은 아마도 이 말일 것이다.

'글쓰는 이가 팔아야 하는 것은 글의 주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18쪽)'

늘 단순한 걸 잊어 버린다. 오래 간만에 자기 자신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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