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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구운몽 ㅣ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최인훈의 『광장』은 대학 들어와서 처음 읽은 소설이면서 책읽기를 권한 선배들이 처음으로 권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은 것이 91년도였으니까 십육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어렴풋하고 불확실한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내가 기억하는 『광장』은 이데올로기에 회의하는 지식인에 관한 소설이었다. 남에도 북에도 섞이지 못하는, 자본주의에도 사회주의에도 동의하지 못하는, 어찌보면 우유부단하고 어찌보면 생각이 너무 많은 지식인의 고뇌를 이 소설의 주제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다시 읽어보니 이전의 십 육 년 전의 ‘기억’과 실제의 ‘작품’은 조금 차이가 있었다. 가장 큰 차이는 이 소설의 주제가 이념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집판에서 평론가 김현이 밝힌 것처럼 이 소설의 핵심은 ‘사랑’에 있다. ‘회의’도 아니고 ‘이념’도 아니고 ‘상처’도 아닌 ‘사랑’ 말이다. 작품 속에서 보면 이명준이 그토록 바랬던 남한의 ‘밀실’과 북한의 ‘광장’을 연결시킬 유일한 방법은 ‘사랑’이다.
그 이전의 판본에서 이명준의 죽음은 중립국에서도 별로 보람 있는 삶을 찾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자의 죽음이지만, 전집판에서의 이명준의 죽음은 정말로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투철하게 깨달은 자의 자기가 사랑한 여자와의 합일, 작자의 표현을 빌면 “무덤 속에서 몸을 푼 여자의 용기”에 해당하는 행위인 것이다. 작자가 전집판에서 이명준의 죽음을 사랑을 확인하는 행위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그 이전의 판본에서 그가 이명준의 죽음을 이데올로기적인 죽음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에 비교할 때, 그의 사고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작가 자신은 이데올로기 대신에 사랑을 택한 것이다.
김현은 5번의 개작의 방향을 근거로 하여 『광장』이 ‘사랑’에 관한 소설임을 주장하였다. 비단 김현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사랑’이 『광장』의 중심에 있다는 주장은 그리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 아니다. 여기서 멈추지 말고 하나 더 생각해보자. 근데 왜 하필 ‘사랑’일까? ‘이데올로기’일 수는 없는 것일까? 무덤에서 몸을 푼 여자를 따라서 바다에 몸을 던진 이명준은 결론이 되고 풍문으로만 남은 허무한 이데올로기 때문에 죽는 이명준은 왜 결론이 될 수 없었던 것일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작가의 인생관 또는 세계관과 관련되어 있다. 김현이 인용한 『구운몽』의 장면이나 『가면고』와 같은 작품들을 떠올린다면 ‘사랑’이라는 결론은 너무나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깡통. 말이라고 해? 끔찍한 소릴? 부지런힌 사랑했을 거야. 미치도록. 그 밖에 뭘 할 수 있었겠어."
구운몽에서 작가가 이토록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사랑밖에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