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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잡지였는지는 기억이 나진 않지만, 사실 잡지 이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21세기에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로 김영하를 꼽았다. 여기에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발 양보하여 김영하가 현재, 그리고 향후 한국 문학의 '중요한' 작가가 될 거라는 사실마저도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지금까지 쓴 작품들이 보여준 김영하의 장점은 빛나는 아이디어를 가진 이야기, 속도감 있는 문체, 군더더기 없는 플롯 이었다. 그렇다면 소설가로서 모든 걸 갖춘 게 아닌가! 하지만 '무게'가 없다. 그의 말마따나 좋은 작품들은 많으나 '대표작'이라 할만한 '무게'를 지닌 작품이 없다는 것이 소설가로서 그가 갖는 유일한 약점이 아니었을까?
<검은꽃>은 이러한 약점을 한 방에 날려버린, 이 한방은 오랜 공백끝에 결승홈런을 날리는 슬러거의 한 방에 비할만 하다,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말, 멕시코로 떠나는 배를 타는 다양한 부류의 조선인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멕시코 드림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더위, 혹사, 노예와 같은 생활. 이 빠져나갈 곳이 없는 답답한 설정에서 무슨 이야기가 더 나올수 있을까하는 것이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내 걱정이었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김영하는 역사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무색하게 만드는 자신만의 문체와 전개방식으로 사랑과 욕망, 야망과 생존의지에 관한 문제들을 풀어내 보인다.
가난한 황족의 딸과 도망중인 신부와 고아 소년이 어떻게 멕시코 유흥가의 거물이 되고, 무당이 되고 테러리스트가 되는가? 이 소설은 20세기 초 나라를 빼앗긴 조선인들의 이야기이면서, 최초로 멕시코 이민을 간 이들의 잔혹사이자 수난사이면서 동시에 아이러니한 인간의 운명에 관한 허무한 예증이다. 내가 이 소설을 김영하의 대표작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마지막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