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베르의 앵무새 Mr. Know 세계문학 21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줄리언 반스의 매력? 무엇보다도 그의 소설들이 갖는 최대의 강점은 치밀함이다. 어떤 작픔은 너무 치밀해서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심리묘사는 혹시 작가가 의처증 환자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그의 치밀함은 비단 심리묘사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디테일들의 치밀함 또는 섬세함을 보여준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플로베르에 관련된 시시콜콜한 세부적인 사항들만으로 소설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 작품의 팔할은 '디테일'이다.  

이 작품은 플로베르의 개인사, 작품론, 주변인물들과의 관계, 스캔들, 소문등과 같은  플로베르라는 인물을 를 둘러 싼 모든 역사적 사실들의 조각들을 치밀하게 조직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일종의 '플로베르 담론'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제시되는 이러한 조각난 소문들이 지나치게 산만하여 독자를 의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소설 중반이 지나도 독자는 쉽게 소설 속으로 몰입할 수 없다. 도대체 이 모든 잡다한 것들이 무슨 의미야! 

줄리언 반스의 두번째 매력? 냉정함 또는 냉소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밀란 쿤데라를 닮았다. 이걸 다른 말로 바꾸면 소설 내에서 '이야기'의 함량보다 '에세이'의 함량이 많다는 얘기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에세이와 잡담 사이를 왕복한다. 현재와 과거에 대한, 과거에 대한 현재의 해석에 대한, 역사관과 정치관에 대한, 이 모든 것들에 대한  플로베르와 '나'와 다른 이들의 견해들. 플로베르와 관련된 무수한 정보들과 이에 대해 '나'가 제시하는 끊임없는 의견들. 하지만 이수많은 의견을 읽는 독자가 하고 싶은 말도 역시 마찬가지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야!

작가가 제시하는 것만 따라 가서는 도무지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없다. 이 소설의 흐름을 대강 정리해보자. 어떤 것이 플로베르에게 영감을 준 진짜 앵무새인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이 소설은 플로베르의 애정문제로 넘어간다. 엘리사 슐레징거, 루이즈 콜레, 조르주 상드와 매음굴, 그리고  여기서 은근슬쩍 에마 보바리의 눈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간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뭔가 할 얘기가 있음을 독자들에게 암시한다. 여기서 소설은 자연스럽게 <보봐리 부인>으로 넘어간다. 그 다음은 <보봐리 부인>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간통과 부정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흘린다. 에세이와 잡담은 여전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진정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순수한 이야기', 에세이도 가쉽도 스캔들도 아닌 진짜 순수한 이야기! 

간통한 아내와 살았던 한 의사의 이야기, 아내의 호흡 보조기를 떼고 보봐리 부인의 부정에 집착하는 '나'의 이야기가 소설의 끄트머리에 불쑥 등장한다. 작가는 이 사실을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봐리의 눈에 대한 이야기를 끼워 넣은 방식으로, 슬쩍 끼워넣는다. 주인공의 '과거'가 등장하면서 '현재'의 모든 디테일들과 이 디테일들이 갖는 '집착'들이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소설은 갑자기 끝난다.

작가가 얘기하려던 것은 결국 뭐였을까? 플로베르? 앵무새? 이 둘은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양념에 불과하다. 에마 보봐리의 눈에 대한 평론가의 시비? 이건 서론정도에 해당한다. 보봐리 부인? 플로베르의 연인이었던 루이즈 콜레? 드디어 본론에 가까이 왔다. <보봐리 부인> 속의 오쟁이진 남편과 간통한 아내의 죽음? '아니면 나'의 순수한 이야기?   

아주 혼란스러운 방식이었지만 작가는 모든 키워드를 가르쳐줬다. 이 모든 것들을 연결시키고 거기에 '해석'이라는 단어를 하나 더 첨가해보면 이 소설의 의미가 완성될 것 같다. 물론 그것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과거를 해석하는데 답이 하나라고 믿는 것 만큼 바보같은 일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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