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을 받다 장정일 문학선집 6
장정일 지음 / 김영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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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주목을 받다

아무것도 아닌 것
아무것도 아닌 것들
단지,

지루하리만큼 긴 비명
뼈 속까지 내려간 울음
그러나,

격문은 아닌 것
호소도 아닌 것
아무것도 아닌 그런 것들이,

주목을 받다ㅡ

꽃.

각 연이 제시하고 있는 의미들을 대략 정리해 보면, 1연의 '아무 것도 아닌 것'은 2연에 등장한 '긴 비명'이자 '울음'이고 이것은 3연에서 등장한 '격문'도 아니고 '호소'도 아닌 것이다. 결국 이 시를 읽는 독자가 궁금해 하는 것은 시인이 연을 바꿔가면서 반복적으로 여러 단어들로 변주해서 얘기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란 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시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게 무엇이냐는 것이 아니다. 4연을 살펴보면, 시인은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결론부터 얘기한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주목을 받(았)다. 이것이 시인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시를 훑어 보면 결코 '그것'은 결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긴 비명'처럼 처절하고 '뼈속까지 내려간 울음'처럼 진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목을 받은 것이다. '주목을 받다라-'는 말 끝은 길게 늘어진다. 줄표(-)는 무언가를 준비하기 위한 숨고르기다. 그리고 약간의 침묵.

'꽃'이라는 한 단어로 구성된 마지막 연은 일종의 화룡점정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 '꽃'이라는 단어를 찍는 순간 긴 비명과 울음들은 '꽃'으로 변해버린다, 마치 모자 속의 비둘기가 마술사의 모자 속에서 꽃잎으로 변해서 무대 위에서 날리듯이.  

8월이 시작되면서 처음 읽은 것은 장정일 선집에 들어 있는 <주목을 받다>라는 시집이다. 이 시집의 최대 미덕은 쉽다는 것이다. 게다가 매 작품마다 시인이 직접 간략한 해설을 달아놓았다. 물론 해설이 달려 있다고 해서 시가 항상 이해하기 쉬워 지는 것은 아니다. 문학과 지성사 시집 뒤에 달려있는 무시무시한 시 해설을 보라. 해설을 읽고 시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시 '주목을 받다'의 해설이 뭐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사실 해설을 읽으면서 시를 하나하나 풀어서 읽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는 늘 '전체'로서 다가와야 한다. 그럼에도 이 시의 마지막 연에 쓰인 '꽃'의 의미는 궁금하다. 나의 해석은 이렇다. 이 시에 쓰인 '꽃'은, 또는 '꽃'이라는 단어는 '예술에 대한 열망'이 아닐까? 

김춘수 시인의 '꽃'에 나오는 꽃처럼, 말은 본래의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릴 때 비로소 투명해진다. 

이 시 속의 '꽃'도 투명하다, 한, 없,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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