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시전집 1 - 1941년 첫시집 <화사집>부터 7시집 <떠돌이의 시>까지
서정주 지음 / 민음사 / 1994년 12월
평점 :
품절


  自畵像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기퍼도 오지 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 싶다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 않는다하는 外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눈이 나는 닮었다한다.
스물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눈에서 罪人을 읽고가나
어떤이는 내입에서 天痴 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오는 어느아침에도
이마우에 언친 詩의 이슬에는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꺼있어
볓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수캐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종을 아비로 둔 ‘나’는 밤이 깊도록 돌아오지 않는 애비를 기다린다. 방안에는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어매가 있다. 어매는 손톱이 깜한 ‘나’에게 바다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숯많은 머리털과 크다란 눈을 가졌던 외할아버지의 모습에 대해 얘기한다. 시 속에서는 더 이상의 내용이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그 이후의 어매의 이야기는 ‘나’가 외할아버지와 닮은 구석이 많다는 얘기 정도였을 것이다. 젊은 시절 성격은 이랬고, 어떤 일들을 하고 다니셨으며, 어떤 친구들을 사귀었고 등등등. 결국 이 구절은 ‘나’가 애비와 어매를 닮았고, 애비와 어매는 그들의 애비와 어매를 닮았으며, 또 그 애비와 어매의 애비와 어매는 그들의 애비와 어매를....... 이 끊임없는 핏줄의 인과관계(?)가 스물 세 살의, 현재의 ‘나’를 만들었을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나를 만든건 八割이 바람이다’라는 진술을 통해서 ‘나’는 핏줄의 인과관계의 결과물로서의 ‘나’라는 견해를 전적으로 부정한다. 굳이 얘기하자면 나머지 이할 정도만이 이런 인과관계의 산물일 뿐이다. 그럼 팔할을 만든 ‘바람’이란 것의 정체는  대체 뭘까? 물론 바람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듯이 이것은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시속에서는 바람의 본질이 무엇인지 또는 바람이 무엇에 대한 은유인지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가도가도 세상을 부끄러워하였고, 어떤 이들은 내눈에서 죄인을 읽고 갔고, 내입에서 천치를 읽고 갔다. 이 말을 다시 정리하면 나를 이루고 있는 팔할의 바람 때문에 나는 부끄러워졌고 죄인이자 천치가 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 바람이라는 것은 결국 세상에 떳떳하지도 못하고 정의롭지도 못한 그 무엇이, 또는 그렇게 만들어버린 그 무엇이 아닌가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죄인이자 천치인 시인은 세상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이러한 시인의 진술은 바람이 만들어낸 결과들을 세상이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자신은 뉘우칠 생각이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세상과의 불화 때문에, ‘나’의 이마우에는 詩의 이슬과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다. 시의 이슬은 바람이 내게 만들어 준 것이고 멫방울의 피는 팔할을 이루고 있는 바람 때문에 생긴, 세상과의 불화 때문에 생긴 결과물이다. 어느 아침에나 이슬과 피가 범벅이 되어 있는 나의 모습은 그래서 늘 혓바닥 느러트린 채 헐덕이는 병든 수캐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시의 제목인 자화상, 나의 모습인 셈이다.

혓바닥 느러트린 채 헐덕이는 병든 수캐!

미당 시전집을 읽었다. 여러가지 생각들 때문에 미당의 시를 읽는 것은 맘이 편하지 않다. 사실 그래서 제대로 읽어내기가 힘들고 편견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래서 더욱, 읽지 않게 된다.

미당 시전접을 읽고 나서 처음 느낀 느낌은 놀라움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글쎄, 아마도 내 직업이 시인이었다면 약간의 질투를 느꼈겠지만 난 안타까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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