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귀한 책이라는 게 있다. 아주 좋은 작가(대중에게 사랑받는 작가)가, 것두 과작의 작가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책을 절판시킬 때다.
이런 사례는 종종 있어왔다. 대표적으로 법정 스님의 저작들이 그렇다. 스님이 입적할 때 한 유언으로 인해, 법정 스님의 책들은 이제 더이상 찍지 않는다.
그래서 법정 스님 전집은 현재 수십 만원을 넘는다. <무소유> 책 하나만 하더라도 몇 만원을 부른다. 헌책방에서도 거의 구할 수가 없다.
그런데 3주전인가, 흙서점을 우연히 방문했다가 들어온 '법정 스님 수필 세트' 9권을 만났다. 수중에 5만원이 있었는데, 아저씨가 권당 4천원을 부르셔서 그냥 닥치고 3만6천원에 데려왔다.
4년 전 법정 스님 전집을 구하러 다닐 때는 전혀 구할 수 없었는데, 너무도 우연히 전집을 구하게 된 상황. 이런 걸 '심봤다!'고 하는 걸까. 어쨌든, 현재 이 책은 내 책꽂이 가장 놓은 곳에 모셔져 있다.
그리고 한 주가 흘러 서대문 쪽에 약속이 있어 갔다가 시간이 난 김에 영천 시장에 있는 헌책방에 들렀다. 2년 만에 간 서점은 옆으로 이사를 했다. 책 정리가 한창이었다.
한 이십 여 권 골라왔는데, 그 중에 조세희 님의 <침묵의 뿌리>가 있었다. 난 이 책이 절판 도서인지 몰랐다. 그냥 있길래 넣었는데, 아주머니가 2천원에 주셨다. (뒤에 보니 이 책은 초판이다!ㅎ)
너무 우습게 구한 책이라 이걸 저번 주 알라딘 중고서점에 내 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책의 가격이 매우 높게 책정되어 있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검색하면 최고가 5만원, 최저가 2만5천원이다.
얼마에 내놓을까 고민하다가 1만5천원을 책정해 봤다. 그리고 완전히 잊었다. 책을 어디다 두었는지조차 몰랐다.
중고책을 등록하고 이틀 쯤 됐던 거 같다. 주문이 들어와서 책을 찾는데 도저히 어디다 두었는지 찾을 수 없었다. 파는 걸 포기했다.
그런데 어제 책을 대대적으로 정리하다가 <침묵의 뿌리>가 책꽂이 뒤에서 발견된 거다. 낮은 책꽂이 위에 책탑을 쌓았는데 뒤로 떨어진 듯하다.
어쨌든 책을 찾았기에 부랴부랴 주문 넣은 분에게 책을 보내려고 했다. 그러다가 혹시나 해서 열화당에 전화를 넣어보았다. 이 책 재고가 있냐고?
그랬더니, 직원이 하는 말이 절판이란다. 그리고 상냥하게 이렇게 덧붙인다. "아, 그 책은 선생님께서 책을 찍는 걸 원하지 않으셔서 절판시켰어요."
헉! 중고서점들이 이 책의 가격을 5만원으로 책정한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 또한 이 책을 팔지 않기로 했다. ㅎ
사실 <침묵의 뿌리>를 얼른 팔아 지식갤러리에서 나온 'DK 생각의 지도' 시리즈를 사려고 했다. <철학의 책>을 워낙 인상깊게 보아서 다른 책들도 탐이 났다.
아, 그런데 우선 알라딘 적립금으로 때우고, <침묵의 뿌리>는 10년 이상 소장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법정 스님 책과 함께 내 책 재산 목록에서 넘버 원이 될 확률이 아주 크니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