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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여왕 (10disc) - 천년여왕 Vol.1+2
니시자와 노부타카 감독, 마츠모토 레이지 원작 / 미디어파크 / 2010년 11월
평점 :
아주 오래 전 MBC에서 해준 <천년여왕>을 너무도 재미있게 봤던지라, 최근에 극장판을 입수해서 봤습니다. 오래된 작품이어서 그런지 요즘 나오는 작품들과 비교해 작화의 퀄러티가 좀 떨어지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그리도 환상적이었는데) 하지만 다 보고 나니, 예전에 미쳐 생각지 못했던 껄끄러운 감정이 고개를 듭니다. 매끄러운 이야기 전개 속에 숨어있는 <천년여왕>의 위험성은 도를 넘어섰다는 게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다 좋은데, (그가 우익 인사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군국주의적인 인상을 의도적으로 풍깁니다. <우주전함 야마토>에서도 그랬고, <cockpit>에서도 그랬죠. 근데 <신죽취물어 천년여왕>(이하 천년여왕)에서는 한술 더떠, 상당히 위험한 생각을 노골적으로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미시마처럼 작품에서만은 군국주의적 주제를 안 다뤘으면 하는데..)
이 작품 <천년여왕>(극장판)은 천년에 한번 봄이 오는 혜성 라메탈이 1999년 9월 9일 9시 9분 9초에 지구와 충돌할 궤도로 태양계에 진입한다는 지구종말에 대한 종교적 신비주의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 작품은 마츠모토 레이지가 일본의 '신죽취물어'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작품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논란 거리는 플롯 구조 자체에 있습니다. 언뜻보면, 천년여왕의 스토리 전개는 참으로 구슬프고 애처롭게 다가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천년여왕은 행성 라메탈의 제2여왕으로서 라메탈 행성의 최고권력자를 대신해 지구를 천년간 통치하는 여인입니다. 라메탈 행성은 태양계와 안드로메다계의 중간에 위치에 있는 혹성 헤비멜다를 중심으로 천년의 주기를 갖는 혜성으로서 천년에 단 한번의 봄을 맞이합니다.사람들은 기나긴 세월을 캡슐에서 보내면서 천년에 한번 돌아오는 봄을 기다립니다. 이 봄의 시간 만이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입니다.(남극 지방을 생각하면 쉬울 듯 합니다. 남극도 짧은 여름동안만 얼음이 녹고 인간이 생활할 정도의 기온이 된다니, 이때 사냥해서 겨우내 먹을 식량을 준비하고 각종 생활을 위한 활동을 하지요.) 이 짧은 봄 동안만 그들은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고 다시 천년의 겨울 잠을 자야하는 비운의 운명을 가진 족속입니다.
원래는 호전적이지 않고 상당히 자기 만족적인 족속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별이 영원한 어둠, 즉 영원한 겨울이 있는 우주의 가장자리 끝으로 날아가 버릴 위기에 처하자, 라메탈 행성 사람들은 그 위기를 타개하고자 천년동안(사실 천년은 라메탈 시간으로 천년이지 지구 시간으로는 1년 이네요) 천년여왕을 통해 감시해온 지구를 그들의 제2의 고향으로 정하고 이주 대책을 세웁니다. 말하자면 천년여왕은 그들의 이주대책 실행을 위한 지구의 정탐가 였던 것입니다.
역대 천년여왕들의 주 임무는 지구의 데이타를 수집해 라메탈로 전송하는 것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지구 이주대책을 실행하기 위해, 라메탈이 지구와 가장 근접한 때에 지구에 다리를 놓아 지구 침략을 개시 합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연약하고 평화적인 라메탈 사람들이 지구보다 몇십 배 더 발전된 과학지식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헌데, 여기서 라메탈 행성 사람들은 아주 무서운 계획을 실행합니다. 바로 이주계획인데요. 라메탈 행성 사람들은 지구인보다 월등히 앞선 기술로 지구를 식민지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구를 식민지화시키는 길을 택하지 않고 이주계획을 실행합니다. 이 이주계획이라는 것은, 라메탈 전 종족을 지구로 이주시키고 지구인 모두를 라메탈로 이주시키는 계획 말합니다. 그들은 지구인과 같이 사는 식민계획을 반대합니다.
반대 이유는 명확합니다. 인간이 너무 인간중심적이고 호전적이어서 평화를 사랑하고 연약한 그들과는 공존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지구인들을 식민지화 해 봤자, 결국에는 라메탈 종족들이 지구인들에 의해 멸종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기본 플롯 구조를 정리하면 위와 같습니다. 뭐 하지메와 천년여왕과의 관계, 천년도둑, 그리고 천년여왕의 배신 등을 이야기하기에는 논의가 너무 넓어져 여기서 줄이고, 이 스토리에 대한 상반된 관점을 좀더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라메탈 행성은 정말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별입니다. 천년에 단 한번 돌아오는 봄에 만족하면서 사는 슬픈 운명의 종족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지구 이주 계획은 어느정도의 정당성을 갖습니다. 그들의 슬픈 운명을 타개하기 위한 마지막 희망은 어찌 보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감상적인 평가는 여기까지 입니다.
행성 라메탈의 슬픈 운명은 일본 열도의 슬픈운명과 그 궤를 같이 합니다. 일본은 정말 열악한 자연환경을 가진 열도입니다. 화산과 지진이 끊일 날이 없고, 태풍도 매우 잦은 불모의 땅 입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영원한 봄의 땅, 한반도와 중국대륙응 옛날 부터 호시탐탐 노려 왔습니다. 한국의 역사는 그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7년 조일 전쟁과 일본제국주의의 대한제국 침탈이 바로 그것입니다.
일제시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그토록 원하던 한반도를 손에 넣자, 그들은 한술 더떠 대동아 공영권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패전하여 역사의 뒤로 물러섰을때 그들은 참회는 커녕 항상 변명을 하거나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항상 그들의 열악한 환경만 탓했습니다. 바로 이 작품, <천년여왕>의 이야기 구조와 똑같습니다.
일본역사는 그들의 힘이 강할때는 밖으로 눈을 돌렸고, 명분을 내세워 침략행위를 정당화 했습니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천년여왕>을 통해서 또 하나의 다른 변명으로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일본의 골수 우익 인사 중 하나라는 단순한 사실을 넘어, 언제나 작품으로 우익의 힘을 정당화 하려는 그의 의도가 참으로 거슬립니다.
언제인지 오래돼서 책 제목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만, 그 책에는 일본열도가 해마다 몇 센티씩 바다로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일본 열도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주로 일본 환경의 열악한 면을 분석한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말은 저에게 충격 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바다건너 저 편의 동쪽을 보고 웃고 있었다"라는 말. 이 <천년여왕>을 보고 난 이후 든 착잡한 생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