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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들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0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평점 :
베르그손에 따르면, 우리의 삶은 순간들의 무수한 지속이다. 지속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순간을 산다. 그 순간들은 우리의 몸에 각인되어 기억으로 체화되고 현재의 순간을 만나 과거의 기억들은 새롭게 현재에 개입한다. 이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게 삶의 속성이다.
이 삶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감정이라는 부산물을 만난다. 그 감정은 부정적인 것일 수도 있고,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억(추억)이 순간적으로 응축되어 이미지화된 실체가 감정이라는 점. 이는 삶의 단면 속에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문학은 이 감정을 이야기로 담는 예술 영역이다. 잘된 작품은 삶의 페이소스가 플롯 속에 오롯이 담겨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우리가 문학을 읽는 목적이고 예술이 지향하는 바라 할 것이다.
트레버의 마지막 단편집인 <마지막 이야기들>(문학동네, 2023)을 읽었다. 마지막 책까지 그의 작품들은 문학이 추구하는 카타르시스를 완벽히 선사한다. 단 한 작품도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한결같다. 읽고 또 읽게 되며 행간을 음미하게 된다. 그런 후에 오는 아련한 마음의 황량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특이하게도 그 황량함과 쓸쓸함이 전혀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 현재를 살고 있다는 삶의 생생함이 단편이 끝난 지점에서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 아닐지.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고독과 비애를 담은 단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근본을 끊임없이 되새김질 하게 한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사고를 만나게 되거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게 상처이든 사랑이든 상실이든 우리는 그에 반응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게 된다. 어느 시점에서 점점 잊혀지지만 그 감정과 기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트레버의 작품들을 읽으면 그 부정적인 감정과 아픔이 아련하게 되살아나 마음이 황량해 지지만 이를 통해 삶을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기에 삶에서 ‘위안’이라는 것을 나는 작가의 단편집을 통해 ‘그 단어의 의미’를 처음 확인하는 경험을 했다.
여기 실린 10편의 단편들은 모두 주옥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 <겨울의 목가>, <여자들> 등이 특히 인상적이다. 삶의 페이소스를 함축적이고 절제된 글에 담아내어 깊고 강렬한 울림을 만들어 내는 단편들이다. 마지막 몇 문장을 통해 단편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일꾼들이 의자를 뒤로 밀치고 일어선다. 붉은 타일이 깔린 바닥에서 그들의 장홧발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메리 벨라는 불안감을, 그리고 어쩌면 연민을 감지한다. 그녀는 그것들을 웃어넘기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변함없는 사랑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그에게는 그 사랑이 그녀 의 그림자들 사이에 존재하고 그녀에게는 그와 함께했던 방들과 장소 에 있음을 일꾼들이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 사랑이 시들지 않을 것임을, 길고 느린 죽음이나 평범해진 사랑은 없을 것임을 일꾼들이 알 수 있기를 바란다.” (「겨울의 목가」, p.206)
「겨울의 목가」 마지막 부분이다. 이 몇 줄을 통해 작가는 메리 벨라(여주)의 감정을 아주 건조하게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읽는 독자들은 벨라의 생각을 읽으며 아주 깊은 ‘사랑의 상실감’에 공명한다. 그리고 앞의 이야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첫 문단을 작가가 왜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지 깨닫고, 여주 메리 벨라의 기대감이 어떻게 상실로 이어지는 지 눈에 들어온다. 작가는 마지막을 첫 5문장을 통해 결말의 복선을 아주 멋지게 깔아놓는다. 이것을 처음 읽어서는 절대 알아챌 수 없다. 마지막 문장을 봐야만 안다.
그래서 큰 여운의 감정을 안고 다시 읽을 수밖에 없게 된다. 트레버의 단편들은 거의 모두 이러한 구조를 갖고 있다. 별 것 아닌 사건이 마지막 몇 문장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모든 전제와 사건들은 마지막을 위한 절묘한 암시와 복선이다. 2-3번 읽으면 작가의 역량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소년이 돌아왔다―볼품없는 사춘기에 이르러 더 거칠고, 키도 더 크고, 더 험해진 모습이었다. 그는 그녀의 물건들을 돌려주러 온 게 아니었고, 곧장 걸어들어와서 피아노 앞에 앉아 그녀를 위해 연주했다. 그 음악의 미스터리는 그가 연주를 마치고 그녀의 인정을 기다리며 지은 미소 속에 있었다. 그리고 미스 나이팅게일은 그를 바라보며 전에는 알지 못했던 걸 깨달았다. 그 미스터리 자체가 경이였다. 그녀는 거기서 아무런 권리가 없었다. 인간의 나약함이 사랑과, 혹은 천재가 가져다주는 아름다움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해하는 데만 너무 골몰했으니까. 균형이 이루어졌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p.17)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 마지막 부분이다. 사실 트레버의 마지막 단편집에서 내가 제일 감명 깊게 읽은 단편이다. 작가는 ‘불완전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삶 자체’를 노처녀와 소년 그리고 피아노를 매개로 삶의 미스터리가 하나의 경이임을 깨닫게 한다.
단 9페이지 분량이지만 작가가 두 인물을 통해, 특히 미스 나이팅게일을 통해 말 해주는‘이해할 수 없는 삶 자체’에 대한 페이소스는 고통과 슬픔을 넘어선다. 그리고 삶을 관조하게 한다. 그러하기에 작가가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는 담담한 서사는 우아하고 매혹적이다.
윌리엄 트레버에 따르면 “단편의 아름다움은 하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그것을 영원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들 단편을 읽으면 ‘삶의 진실이 폭발하는 순간’을 체험할 수 있다. 압축된 서사가 주는 경이감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단편이 주는 삶의 매혹과 서사의 절제미를 맛보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작품이라 사료된다. 삶의 순간을 포착하는 단편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체험하고 싶은 분들에게 강추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