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딴따라다 - 송해평전
오민석 지음 / 스튜디오본프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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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째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장기 tv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은 MC 송해 선생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비록 <전국노래자랑>의 골수팬이 아니라 하지라도, 송해 선생의 맛깔 나는 진행, 우리네 삶이 그대로 맡아지는 진행은 모두 인정할 것이다. 그런 그의 평전이 나왔다. 『송해 평전 : 나는 딴따라다』라는 제목의 평전. 표지부터 삶의 연륜이 느껴지는 푸근한 인상의 그가 흑백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잘 읽어보라는 듯 반겨준다.

 

이 책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며, 단국대 영문과 교수인 오민석 작가의 글로 기록되어졌다. 생존한 인물, 그것도 그(송해)가 말하는 것처럼 딴따라인 그의 평전이라니 감회가 새롭다. 이 책을 읽어가는 가운데,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송해가 아닌 한없이 편안한 옆집 할아버지 같으며, 또 한편으로는 사랑의 카리스마 넘치는 송해를 만나게 된다.

 

저자는 송해 선생을 목욕탕에서 만나 역사(?)가 시작되었다 한다. 그렇다. 송해 선생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 아닐까? 인지도 높은 연예인으로서 온통 싸매고 감추고서 마치 첩보활동을 하듯 바깥을 출입하는 것이 아니라, 알몸으로도 대중 앞에 노출(!)될 수 있음, 이 격의없음이야말로 그의 삶에서 강조되는 소통의 한 수단이며, 그가 사랑받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언제나 <전국노래자랑> 촬영을 위해 지방에 갈 때면, 그 전날 그 지방에 도착하여 그 지역의 대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며, 개방된 만남을 갖는다는 송해 선생. 얼마나 멋진 분이며,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분 아닌가.

 

또한 90의 연세까지 현역에서 뛰고 있는 달인인 그조차도 여전히 무대를 앞두고는 설렘과 함께 떨림이 있다는 고백을 통해, 그는 진정한 프로임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이제는 그저 연륜만으로 진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하며, 떨림을 간직할 수 있는 그 순수함 역시 그가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물론 저자는 이러한 떨림을 최선을 다하는 성실성만이 아닌, ‘영원한 비정규직 떠돌이 광대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 부분은 그렇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만약 이러한 비정규직 떠돌이 광대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해석된다면 그분은 그 연세에도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인배가 될 수 있기에).

 

아울러 영원히 ‘딴따라’의 길을 걷겠다는 포부와 그대로 살아내는 모습이야말로 거인의 발걸음이 아닌가 싶다.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송해 선생 시절의 ‘딴따라’는 비천한 신분이자, 욕설과 경멸의 기의를 가진 단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런 ‘딴따라’의 길이 마지막까지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라 확신하며 그 길을 오늘도 묵묵히 걸어가는 그 걸음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어느 길을 걷든 본받아야 할 모습이 아닐까?

 

남들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고, 더 안전한 직종이며, 그럴 듯한 자리이며, 성공한 표상이어서 그 길을 선택하고 걷는 것이 아니라, 비록 그 길이 멸시와 경멸을 동반한 길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길이기에 선택하고, 그 길을 묵묵히 가다보니 성공의 표상이 되기도 하고, 존경과 사랑의 자리에 앉게 되었음은 우리 모두에게 도전이 되는 부분이 아닐까 여겨진다.

 

작가는 송해 선생이 걸어온 그 걸음걸음을 단순히 소개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송해 선생이 겪어온 시대상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연예계의 실상 뿐 아니라, 그 역사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러니 이 책은 단순한 『송해평전』만이 아닌, “근현대 한국 연예 문화사”라 말할 수 있으리라. 어쩌면 학자이기에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의 발로일 수 있겠지만, 이러한 접근 역시 좋다. 물론, 때론 굳이 이런 해석이 필요할까 싶은 부분 역시 없진 않지만, 오히려 이런 접근과 평가가 이 책을 한편으로는 경멸의 기의를 품고 있는 ‘딴따라’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한 거인의 발걸음으로 격(?)을 높여주는 느낌 역시 없진 않다.

 

또한 작가는 이러한 표현을 거듭거듭 하고 있다. 송해 선생의 지나온 인생 역경, 그 발자취를 더듬어 가며, 순간순간마다 보이지 않는 손의 개입이 있어, 그 종착지가 <전국노래자랑>으로, 국민MC 송해로 이끌었노라고 말이다.

 

“이렇듯 송해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이 수십 년의 세월을 거쳐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전국노래자랑>을 향해 꿰맞추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하여 그는 <전국노래자랑>의 정신에 가장 적합한, 그리고 사실상 그 어떤 사람으로도 대체하기 힘든, 어떤 ‘완성의 경지’를 이룩하고야 만 것이다.” (247쪽)

 

이러한 해석을 기독교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신의 섭리하심 아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노라고 말이다. 그렇다. 작가의 해석처럼 송해가 이루어가는 선(善), 그 ‘완성의 경지’는 결국 <전국노래자랑>으로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그가 이처럼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수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게 된 이유는 뭘까? 작가는 말한다. <전국노래자랑>은 평등의 정신이 가득한 페스티벌이라고. 그곳에서는 행정 관료들이 주인공이 아닌, 모든 민중이 주인공들이며, 결코 로얄석이 없는 평등의 자리라고.

 

그리고 그 자리에서 민중은 ‘횡단의 쾌락’을 맛보게 된다고. 쉽게 표현하면, 결코 만만할 수 없는 거인, 점잖고 사회적 지위가 있으며, 근엄하고 연세도 지긋하신 어르신이 자신을 허물며 함께 망가져 줄때, 민중은 그를 통해 희열과 해방을 느낀다고. 이를 통해, 어쩌면 사회의 비주류, 주변인으로 살아가던 그네들의 삶 속에 새겨진 민중의 이야기가 <전국노래자랑>이라는 판에서 풀어내진다고.

 

그렇다. 송해 선생은 여전히 우리네 오빠, 헝아로서 민중과 괴리된 곳에서 우아한 진행을 하는 것이 아닌, 민중 그 한 가운데 자리하며 함께 웃고 울며 민중의 삶, 그 흔적의 이야기들을 껴안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의 바람처럼, 영원한 딴따라 송해 선생이 더 많은 시간 동안 우리 곁에 머물며 ‘민중적 웃음’이 가득하게 되길, 그 눈물과 웃음의 판이 계속되길 소망해 본다. 이처럼 좋은 책과의 만남은 행복이다. 아니, 말을 정정한다. 향기 나는 인생을 엿보는 것이야말로 행복이다. 『송해 평전 : 나는 딴따라다』를 읽은 그 행복에 감사하다. 아울러 나의 삶 속에서 그 향기가 스며들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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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서로를 춤추게 하는 거야! - 사막의 도우미, 뱀과 도마뱀의 시끌벅적 우정 쌓기
조이 카울리 지음, 홍한별 옮김, 개빈 비숍 그림 / 고래이야기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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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서로를 춤추게 하는 거야!』는 전작의 제목 『친구는 잡아먹는 게 아니야!』만큼이나 그 내용을 잘 함축하고 있다. 결코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뱀과 도마뱀. 이 둘은 얼핏 보면 공통점이 많을 것 같지만, 실상은 너무나도 다르다. 뱀은 기어 다니는 반면 도마뱀은 걸어 다닌다. 도마뱀은 작은 곤충들을 잡아먹지만, 뱀은 도마뱀과 같은 커다란 친구들을 통째로 잡아먹는다. 그러니, 뱀에게 도마뱀은 친구가 아닌, 먹이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둘이 친구가 되었다. 함께 굴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함께 같은 일을 한다. 사막 친구들의 도우미로서 친구들을 돕고, 그리고 그들의 고민을 상담하기도 하며, 사막 친구들의 어려움을 돕는 일을 한다.

 

이 책, 『친구는 서로를 춤추게 하는 거야!』는 바로 이런 두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우정이야기다. 서로 다르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그 마음이 아름답다. 그들은 함께 산책을 할 때, 이것을 ‘기걷기’라고 부른다. 한쪽은 기는 것이고, 한쪽은 걷는 것이기에 둘 모두를 아우르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다. 얼마나 상대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는 대표적인 모습인가.

 

하지만, 둘 간에는 여전히 차이가 존재한다. 그래서 우습거나 조금은 황당한 에피소드들도 만들어낸다. 예를 들면, 개구리가 도마뱀과 상담하기 위해 찾아왔는데, 이 고객을 뱀이 발견한다. 뱀은 왜 개구리가 이곳에 있는지 생각하지도 않고 꿀꺽 삼켜버린다. 한편 도마뱀은 온다던 고객이 오지 않아 의아해 하지만, 뱀은 딴청을 피운다.

 

U자형으로 된 그들의 보금자리 한쪽에 거미가 거미줄을 쳤다. 이에 뱀은 싫어하고, 거미에 독이 있을까 무서워하며, 거미를 내쫓자고 한다. 하지만, 도마뱀은 거미가 그곳에 있는 게 좋다. 왜냐하면, 거미줄에 걸린 벌레들을 수시로 꿀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둘은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둘은 아름다운 우정을 만들어 간다.

 

때론 상대에게 상처를 줄까봐 서로 다른 생각을 참기도 하고, 일부러 상대를 배려하기도 한다. 혹시라도 내 생각을 그대로 내뱉음으로 우정에 금이 갈까 조심하는 그런 둘의 모습, 그 배려가 아름답다.

 

또한 도마뱀은 비를 기원하는 ‘비춤’을 출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춘다. 그리고 우연인지 실제 비가 내린다. 이 일을 계기로 뱀은 도마뱀의 춤은 신비한 힘이 있다 믿는다. 실상 도마뱀의 춤은 얼토당토않은 우스꽝스러운 춤에 불과하다. 하지만, 뱀은 친구를 전적으로 믿는다. 이런 믿음이 둘 간의 우정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물론, 둘 간의 우정에 위기도 없지 않다. 그리고 실상 둘은 엉터리 같은 모습도 많고, 은근 허당 같을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엇보다 친구를 향한 ‘배려’와 ‘믿음’이 우정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가며, 그들을 사막의 진정한 도우미로 거듭나게 한다.

 

우리에게도 이처럼, 내 곁에 있는 이들을 향한 ‘배려’와 ‘믿음’을 가질 때, 그것은 큰 힘이 되어 아름다운 우정으로 만들어감으로 서로를 춤추게 하는 흥겨운 인생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배려’와 ‘믿음’, 그리고 말의 무거움, 말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참 멋진 동화다. 잔잔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안에 유머가 담겨 있고, 교훈적 힘이 담겨 있는 좋은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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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지식 ⓔ 10 - 다양한 가치관 EBS 어린이 지식ⓔ 시리즈 10
EBS 지식채널ⓔ 제작팀 지음, 서선정 그림 / 지식채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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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이런 문제 앞에 정답이 있을까? 사실, 많은 경우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어떤 문제에 대해 정해진 답이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정답 대신 어떤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합당한 답, 바람직한 답을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풀어나가는 답은 정답과 비교하여 해답이라 부를 수 있겠다.

 

살아가며 만나는 수많은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해답을 만들어나갈 때,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가치관이다. 그 사람의 가치관이 어떤가에 따라 같은 문제 앞에서도 전혀 다른 해답을 만들어 가게 될 것이다.

 

언제나 좋은 관점으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어린이 지식ⓔ』 시리즈의 10번째 책으로 바로 그런 가치관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어떤 가치관이 옳다는 의미가 아니다. 대신, 다양한 가치관들을 제시해 줌으로써, 아이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좋은 가치관을 붙잡을 수 있게 만드는 좋은 책이다.

 

환경을 지켜내려는 가치관으로 세워진 ‘라핀쿨타 태양 주방 식당.’

돈을 주고 사면 쉽지만, 사물의 소중함을 생각해보기 위해 직접 재료를 얻는 방법에서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행하는 모습.

비록 남들이 아무런 이득도 없는 그런 일을 왜 할까 생각할지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과감히 떠날 수 있는 모습.

내가 살 집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직접 짓는 그런 일들.

 

이처럼 남들과는 조금 다르지만, 자신이 옳다고 여겨지는 일들을 위해 비록 조금 돌아가고, 조금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행할 수 있는 가치관들이 멋스럽다.

 

뿐 아니라, 교육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그리고 삶에 대해서 남들과 다르지만, 바름직한 다양한 생각들을 소개하고 있다.

 

간단하지만,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 이 시리즈의 강점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비록 많은 사람들이 좇아가는 그런 관점이 아니라 할지라도 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보다 세상을 따스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관점을 견지한다는 점도 이 시리즈의 강점일 것이다.

 

많은 가치관들에 대한 소개들 가운데, 방송윤리를 생각해보게 하는 소개가 있다. 영국의 BBC 방송국에는 재난 보도를 할 때,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있다고 한다.

 

클로즈업하지 마라

인터뷰하지 마라

이름을 알리지 마라

 

특히, 이 가운데 재난보도를 함에 있어 재난의 피해자들의 ‘이름을 알리지 마라’는 부분은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 사실, 재난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혹 내 친지가 그 가운데 있진 않을까 궁금할 수 있다. 그렇기에 피해자의 이름이 보도되어지는 부분을 보며,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BBC방송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가이드라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희생자의 가족이 우리 방송을 통해 처음으로 희생자의 이름을 확인하게 해서는 안 된다. BBC는, 보도에서 피해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을 때 가족이나 지인들이 필요 없는 걱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방송을 통해 사태를 알게 될 때 가족이 받게 될 고통과 충격이 훨씬 더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124쪽)

 

시청자들의 알권리를 들며, 방송사들은 모든 것들을 걸러내지 않고 방송으로 흘려보내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희생자들이 방송을 통해, 자신의 가족이 희생자로 확인 될 때의 그 피해는 생각보다 더 크다는 이유로 인해, 결코 피해자의 이름을 방송으로 내보내지 않게 하는 이런 가이드라인, 이런 가치관,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왠지, 우리네 재난방송을 돌아보게 한다. 엄청난 재난피해가 일어났을 때, 피해지역에 자신들 방송사가 가장 가까이에 자리 잡았음을 거듭거듭 선전하며, 방송이 안 나가는 줄 알고 웃고 떠들던 방송윤리가 존재하지 않는 그런 방송을 봐야만 하는 우리들 입장에서는 희생자의 이름을 알리지 않게 하고, 뿐더러 이러한 희생자의 가족들과 방송 카메라는 멀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알권리나 시청률보다는 피해자들의 가족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아름다운 가치관인가!

 

이 책을 통해, 우리 어린이들이 아름다운 가치관을 그들의 인격 속에 키워낼 수 있길 바란다. 아울러 아름다운 가치관을 형성하게 될 때, 그 인생이 풀어나가는 해답들이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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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수목 그리고 돈요일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34
한아 지음, 배현정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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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금요일이 되면, 많은 분들의 숨통이 트이는 듯싶다. “불금”이란 단어가 이젠 통상적 단어가 될 정도이다. 금요일은 이제 다음날 출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시간, 불타는 열정을 태워내도 좋을 시간인 거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가 있다. 『월화수목 그리고 돈요일』의 주인공 동현이 바로 그런 친구다.

 

동현에게 금요일은 행복하지 않다. 오히려 금요일은 언젠가부터 동현에게는 저주의 날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그 날은 돈을 상납해야만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태수형은 매주 금요일마다 동현에게서 3만원씩 수금해 간다. 할당액을 맞추지 못할 때에는 폭력이 수반되고, 반드시 부족한 액수만큼 더하여 채워야만 한다. 그러니, 금요일은 행복한 날이 아닌, 돈요일이다(돈을 상납해야만 하는, 돈에 얽어매져 있는 요일이어서 돈요일 일뿐더러, 정상적이지 않은 마치 돌아버린 모습이기도 하다. 폭력이 가득한 세상은 돈세상, 돈요일이다).

 

그런 동현은 어느 날 자신이 태수형에게 맞을 때 창문을 통해 자신을 쳐다보고 있던 작은 친구를 보게 된다. 바로 동현이 하얼(하얀 얼굴)이라 이름 붙인 영기. 동현과 하얼은 금세 친구가 된다.

 

하지만, 하얼 영기는 사실 동현에게만 보이는 영(靈)이다. 이미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영기, 하지만, 그에게는 저 세상으로 가기 위해 마지막 숙제가 주어졌는데, 그것은 바로 ‘살아 있지만 죽은 영으로 살아갈 친구’를 돕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해 세 번의 기회(무언가를 의지대로 움직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으며, 몸을 가질 수도 있다)를 약속받게 되는데, 과연 이러한 기회를 통해, 영기는 동현을 도울 수 있을까?

 

이 동화는 학교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무거운 이야기이다. 읽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읽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야만 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또한 이처럼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무겁고 암울함 가운데서 찾는 재미랄까!

 

동화속의 폭력의 피해자인 동현은 공부도 언제나 1등을 한다. 그리고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른들만 모르는 비밀이 있다. 자신에게 할당된 액수를 채우기 위해 동현은 또 다른 폭력의 가해자가 되어 다른 이들의 돈을 빼앗고 있다는 것. 여기에서 폭력의 악순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현에게 월화수목 모든 날들은 돈요일을 위해 존재하는 시간들이다. 상납해야 할 돈을 위해 또 다른 폭력의 가해자가 되어야만 하는 슬픈 현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고 싶지만, 동현에게는 ‘용기’가 없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요 메시지는 바로 이것, ‘용기’를 갖자는 것이다.

 

“내게 필요한 건 용기일 것 같다. 태수 형이 처음에 돈을 요구했을 때 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내가 잘못했을 대 부끄럽더라도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는 용기. 그래, 난 용기를 구해야겠다. 어쩌면 이미 그 용기를 가졌는지도 모르겠지만.”(211쪽)

 

그렇다. 우리에게 이러한 용기가 있어야 한다. 거절 할 수 있는 용기,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자 하는 용기, 내 잘못, 내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는 용기, 이러한 용기가 우리 모두에게 있길 소망한다.

 

아울러 이 동화는 나의 폭력이 나에게서 쏟아져 나갈 때, 그것이 악의적인 것이건, 그렇지 않은 것이건 간에, 폭력은 반드시 그 폭력의 대상이 된 이에게는 누구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동화 속에서 하얼 영기의 친구인 진우가 그렇다. 진우는 영기의 폭력의 피해자다. 물론 영기의 입장에서는 그저 장난으로 괴롭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폭력으로 인해 결국 진우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영기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의 장난으로 인해 행해진 폭력이 누군가의 영혼과 그 삶을 송두리째 갉아먹을 수 있음을 생각해본다. 어린 시절 장난으로 개구리들을 낚시 한 적이 있다. 담 위 앉아, 담 아래 있는 개구리들을 낚시하여 뜨겁게 달궈진 대문에 매달아 놓곤 했다. 그럼 이 개구리가 뜨거우니 펄쩍 뛰었다가 다시 뛰고, 뛰고, 뛰고.... 반복하다 결국엔 죽게 된다. 그저 철부지 장난꾸러기의 장난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 생존 전부가 달려 있는 문제였다. 우리의 폭력은 마치 이와 같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 금해야 하지 않을까.

 

아울러 이렇게 폭력을 행하는 이는 지금 당장은 뭔가 얻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결국 공허함으로 이끈다. 폭력의 열매는 공허한 것이다. 동현에게 금요일마다 돈을 수금해 가는 태수형은 동현에게는 이제 귀신보다도 더 혐오스러운 존재에 불과하다.

 

“귀신보다 태수 형이 열 배 백 배 더 소름끼쳐.”(175쪽)

 

그렇다. 폭력을 행하는 자는 혐오스럽고 소름끼치는 존재에 불과하다. 동현 역시 이처럼 폭력을 행함으로 그 곁에는 어떤 친구도 없다. 모두 동현을 외면한다. 아울러 하얼 영기 역시 마찬가지다. 폭력을 행하던 그의 결말은 교통사고라는 끔찍한 결말로 다가온다. 이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일 것이다.

 

폭력은 날 결코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혐오스러운 존재, 귀신만도 못한 존재, 소름끼치는 존재로 날 몰아간다. 이것을 또한 기억하면 좋겠다.

 

비록 무겁고 암울한 주제의 이야기이지만, 쓸 수밖에 없고, 읽을 수밖에 없는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관심과 용기가 이 땅에 가득하게 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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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멍에 한국문학사 작은책 시리즈 3
홍상화 지음 / 한국문학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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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사회에서 쌓아온 자신의 경력과 지위, 생활 기반을 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이렇게 훌훌 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 그전의 나의 삶과 전혀 관계없는 그런 모습이라면, 뿐 더러 세상적 잣대로 인정받지 못할 그런 모습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뿐 아니라, 어떤 외부적인 압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런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자기 내부의 갈등과 확신으로 인해,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들을 자발적으로 털어낸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홍상화 작가의 소설 『사람의 멍에』는 바로 그런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소설 속 화자인 ‘나’ 대식은 어느 날 말도 안 되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의 오랜 친구인 승혁이 미국에서 쌓아온 모든 생활 기반을 버리고 한국에 입국했다는 소식이다. 승혁은 외국인으로서는 드물게 미국 건축설계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설계사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으며, 미모의 아내, 그리고 사랑스러운 딸, 이처럼 부족한 것 없는 삶을 살아가는 친구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입국했다는 거다. 심지어 오랜 세월 이상적인 부부상으로 살아가던 사랑하는 아내마저 버리고 말이다. 행복한 가정마저 버리고 승혁은 무엇을 찾으려는 걸까?

 

놀랍게도 입국한 승혁은 바닷가에서 막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뿐 아니라, 그 지역의 건달과 헤게모니 싸움까지 해가며 말이다. 이런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된 ‘나’는 더욱 의아해 하며, 승혁의 아내인 석영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석영의 고민 상담을 자처하기도 한다. 사실 대식의 마음속에는 석영이란 여인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여인으로 무의식 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과연, 승혁과 석영, 그리고 그 사이에 낀 ‘나’ 대식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이 소설 속에서 작가는 “사람의 멍에”를 과감히 끊어버리고 자유로운 삶을 찾는 중년의 남성, 그리고 “사람의 멍에”를 멍에가 아닌 안정적 삶, 성공한 삶, 행복한 삶이라는 자위하며 살아가는 중년의 남성을 대조시키고 있다.

 

엉뚱한 결정을 하였던 승혁, 그에게 있어서, 안정적인 삶, 성공한 삶, 행복한 가정, 이 모든 것이 도리어 ‘멍에’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막노동 현장에서 일하고, 지역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잡아가며, ‘영감’이라 불리고, 에이즈에 걸린 시골 작부의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받으며 살아간다. 물론, 여기에 더하여 승혁에게는 홀로 열정을 쏟으며 매달리는 꿈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국보 1호인 숭례문을 완벽한 건축물, 역사에 빛날 완벽한 건축물로 재창조하려는 꿈이 있다. 그래서 이 작업을 홀로 한다.

 

그러니, 승혁에게는 자신의 열정과 꿈을 좇는 삶이 아닌,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삶 속의 모든 여건들을 “사람의 멍에”라 여기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가정이라 할지라도. 아울러, 이러한 멍에에 매여 살아가며 세상적인 성공을 좇아 살아가던 삶은 마치 사육되는 돼지와 같은 삶이었다 말한다.

 

이처럼, 자신의 꿈을 향해, 모든 멍에를 깨뜨릴 수 있는 그 열정과 무모하리만한 용기가 멋스럽다. 게다가 자유로운 사랑을 지나 절대적 사랑, 완전한 사랑을 표상하기 위해 에이즈에 걸린 시골 작부를 등장시키는 모습 역시 뭔가 특별한 느낌을 주는 감이 없지 않다. 에이즈마저 겁내지 않고, 천대받는 인생을 세상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는 그 모습이 어쩌면 “사람의 멍에”로부터 자유로워진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굳이 이런 사랑만이 순수한 사랑일까? 게다가 이 시골 작부와의 사랑 역시 또 하나의 멍에로 승혁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지 않은가. 멍에를 벗기 위해 선택한 삶에서, 여전히 또 하나의 멍에를 매는 모습이 아닌가. 어쩌면 작가는 결국 우리네 인생이란 것이 “사람의 멍에”를 온전히 벗기엔 불가능함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승혁의 삶에 대조되는 인생이 바로 ‘나’ 대식이다. 대식은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 여긴다. 오히려 더욱 자유롭게 아부하고, 자유롭게 가진 자들과 관계를 만들어가며, 자신의 성공적인 삶을 추구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삶 역시 어쩌면, “사람의 멍에”를 벗어버리는 모습이라 볼 수도 있다. 세상의 어떤 비판과 손가락질도 상관치 않겠다는 자유함(!), 이것 역시 바람직하진 않다 할지라도 “사람의 멍에”를 벗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으리라. 결코 권장하고 싶진 않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나’ 대식 역시 여전히 “사람의 멍에”에 매여 있다. 그건 그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여인, 그리고 남 몰래 키워온 사랑의 대상 석영과 여행을 결정하면서도 여전히 현실에서의 삶에 발목을 잡히는 그런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을 굳이 “사람의 멍에”로만 해석할 필요도 없다 여겨진다. 어차피 우리네 삶이란 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 내 본능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며, 또한 그렇게 사는 것만이 자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날 힘겹게 하는 의무, 날 얽어매는 삶의 자리들, 이것들이 삶의 ‘멍에’가 아닌, 어쩌면 삶의 ‘축복’일 수도 있다. 특히, 가족이란 그렇지 않은가. 물론, 가족을 생각할 때, 내 맘대로 살 수 없다. 내 맘대로 결정할 수 없고, 내 맘대로 행동할 수 없다. 그러니, 어쩌면 ‘멍에’라 여길 법하다. 하지만, 그런 ‘멍에’는 기꺼이 맬 수 있는 멍에가 아닐까. 가족이야말로 날 현실에 안주하게 하는 ‘멍에’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내 삶에 가장 커다란 축복이며, 행복의 근원이기도 하기에 말이다.

 

그러니, 굳이 ‘멍에’라기보다는 또 다른 내 삶의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한계라 볼 수는 없을까.

 

 

그럼에도 작가가 말하는 분명한 바는 현실에 타협하며 살아가는 인생은 마치 사육되는 돼지와 같은 인생이라는 점. 내 열정과 꿈을 위해서라면, 내가 쌓아온 삶의 기반마저 포기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삶이 진정한 자유함을 누리며,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여전히 “사람의 멍에”를 수없이 매고 살아가야만 하는 인생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그 멍에가 의무감에 의한 것만이 아닌, 내 삶의 진정한 행복, 의미, 가치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이왕이면 그러한 멍에들 역시 함께 열정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동반자들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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