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수목 그리고 돈요일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34
한아 지음, 배현정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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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금요일이 되면, 많은 분들의 숨통이 트이는 듯싶다. “불금”이란 단어가 이젠 통상적 단어가 될 정도이다. 금요일은 이제 다음날 출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시간, 불타는 열정을 태워내도 좋을 시간인 거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가 있다. 『월화수목 그리고 돈요일』의 주인공 동현이 바로 그런 친구다.

 

동현에게 금요일은 행복하지 않다. 오히려 금요일은 언젠가부터 동현에게는 저주의 날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그 날은 돈을 상납해야만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태수형은 매주 금요일마다 동현에게서 3만원씩 수금해 간다. 할당액을 맞추지 못할 때에는 폭력이 수반되고, 반드시 부족한 액수만큼 더하여 채워야만 한다. 그러니, 금요일은 행복한 날이 아닌, 돈요일이다(돈을 상납해야만 하는, 돈에 얽어매져 있는 요일이어서 돈요일 일뿐더러, 정상적이지 않은 마치 돌아버린 모습이기도 하다. 폭력이 가득한 세상은 돈세상, 돈요일이다).

 

그런 동현은 어느 날 자신이 태수형에게 맞을 때 창문을 통해 자신을 쳐다보고 있던 작은 친구를 보게 된다. 바로 동현이 하얼(하얀 얼굴)이라 이름 붙인 영기. 동현과 하얼은 금세 친구가 된다.

 

하지만, 하얼 영기는 사실 동현에게만 보이는 영(靈)이다. 이미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영기, 하지만, 그에게는 저 세상으로 가기 위해 마지막 숙제가 주어졌는데, 그것은 바로 ‘살아 있지만 죽은 영으로 살아갈 친구’를 돕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해 세 번의 기회(무언가를 의지대로 움직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으며, 몸을 가질 수도 있다)를 약속받게 되는데, 과연 이러한 기회를 통해, 영기는 동현을 도울 수 있을까?

 

이 동화는 학교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무거운 이야기이다. 읽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읽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야만 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또한 이처럼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무겁고 암울함 가운데서 찾는 재미랄까!

 

동화속의 폭력의 피해자인 동현은 공부도 언제나 1등을 한다. 그리고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른들만 모르는 비밀이 있다. 자신에게 할당된 액수를 채우기 위해 동현은 또 다른 폭력의 가해자가 되어 다른 이들의 돈을 빼앗고 있다는 것. 여기에서 폭력의 악순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현에게 월화수목 모든 날들은 돈요일을 위해 존재하는 시간들이다. 상납해야 할 돈을 위해 또 다른 폭력의 가해자가 되어야만 하는 슬픈 현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고 싶지만, 동현에게는 ‘용기’가 없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요 메시지는 바로 이것, ‘용기’를 갖자는 것이다.

 

“내게 필요한 건 용기일 것 같다. 태수 형이 처음에 돈을 요구했을 때 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내가 잘못했을 대 부끄럽더라도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는 용기. 그래, 난 용기를 구해야겠다. 어쩌면 이미 그 용기를 가졌는지도 모르겠지만.”(211쪽)

 

그렇다. 우리에게 이러한 용기가 있어야 한다. 거절 할 수 있는 용기,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자 하는 용기, 내 잘못, 내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는 용기, 이러한 용기가 우리 모두에게 있길 소망한다.

 

아울러 이 동화는 나의 폭력이 나에게서 쏟아져 나갈 때, 그것이 악의적인 것이건, 그렇지 않은 것이건 간에, 폭력은 반드시 그 폭력의 대상이 된 이에게는 누구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동화 속에서 하얼 영기의 친구인 진우가 그렇다. 진우는 영기의 폭력의 피해자다. 물론 영기의 입장에서는 그저 장난으로 괴롭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폭력으로 인해 결국 진우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영기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의 장난으로 인해 행해진 폭력이 누군가의 영혼과 그 삶을 송두리째 갉아먹을 수 있음을 생각해본다. 어린 시절 장난으로 개구리들을 낚시 한 적이 있다. 담 위 앉아, 담 아래 있는 개구리들을 낚시하여 뜨겁게 달궈진 대문에 매달아 놓곤 했다. 그럼 이 개구리가 뜨거우니 펄쩍 뛰었다가 다시 뛰고, 뛰고, 뛰고.... 반복하다 결국엔 죽게 된다. 그저 철부지 장난꾸러기의 장난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 생존 전부가 달려 있는 문제였다. 우리의 폭력은 마치 이와 같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 금해야 하지 않을까.

 

아울러 이렇게 폭력을 행하는 이는 지금 당장은 뭔가 얻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결국 공허함으로 이끈다. 폭력의 열매는 공허한 것이다. 동현에게 금요일마다 돈을 수금해 가는 태수형은 동현에게는 이제 귀신보다도 더 혐오스러운 존재에 불과하다.

 

“귀신보다 태수 형이 열 배 백 배 더 소름끼쳐.”(175쪽)

 

그렇다. 폭력을 행하는 자는 혐오스럽고 소름끼치는 존재에 불과하다. 동현 역시 이처럼 폭력을 행함으로 그 곁에는 어떤 친구도 없다. 모두 동현을 외면한다. 아울러 하얼 영기 역시 마찬가지다. 폭력을 행하던 그의 결말은 교통사고라는 끔찍한 결말로 다가온다. 이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일 것이다.

 

폭력은 날 결코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혐오스러운 존재, 귀신만도 못한 존재, 소름끼치는 존재로 날 몰아간다. 이것을 또한 기억하면 좋겠다.

 

비록 무겁고 암울한 주제의 이야기이지만, 쓸 수밖에 없고, 읽을 수밖에 없는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관심과 용기가 이 땅에 가득하게 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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