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정신의 확산 바다로 간 달팽이 15
박영란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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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나’는 거구 여학생이다. 게다가 하나의 ‘전설’을 남긴 친구다. 중2때, 남학생 5명과 5:1로 싸워 이긴 친구다. 그 뒤로는 아무도 ‘나’의 곁에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혼자다. 그런 ‘나’에게 매일 한 번씩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 바로 조. 조는 학교에서 쎈캐(쎈 캐릭터)다.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한 마디로 노는 아이들의 리더다. 언제나 오싹한 기운을 몰고 다니는.

 

그런 조는 점차 ‘나’를 자신의 일에 끌어들인다. ‘나’는 조가 노는 세상에 관심이 없지만, 그럼에도 조를 좋아하기에 점차 조금씩 조의 일에 협조한다. 새롭게 세력을 만들어 조의 세력 ‘구가다’를 위협하는 ‘신가다’와 싸울 때, 함께 해 줄 것을 요청하자, 그 일이 싫으면서도 ‘나’는 참여한다. 이런 식으로 ‘나’는 조의 세상에 이런 저런 모습으로 발을 들이게 된다. 과연 ‘나’는 조와의 관계를 어떤 모습으로 이어갈 것인가?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못된 정신의 확산’ 첫 번째 모습이다. ‘나’는 조의 세상에 조금씩 발을 딛는다. 그리고 조 역시 자신의 세력 확장을 위해 ‘나’를 이용하고, 가까이 접근한다. 폭력을 싫어하고 노는 것을 싫어하는 줄을 알면서도 자꾸 ‘나’를 끌어들이려는 조의 모습이야말로 ‘못된 정신의 확산’이다.

 

그리고 이 소설 속에서 작가가 말하는 ‘못된 정신의 확산’ 두 번째의 모습은 재개발병이다. 재개발이 답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재개발에 목을 매는 모습들. 재개발이 많은 소시민들 삶의 터전을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빼앗아버리는 행위임에도 가진 자들은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재개발을 선호한다. 그리고 그 일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들은 보다 더 나은 환경으로 변한다는 논리에 찬성한다. 또한 그렇게 새로워진 공간에 재개발에 반대 의사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제 그곳에 입주하여 편의를 누리게 된다. 이것이 소설에서 발견되는 두 번째 ‘못된 정신의 확산’이다.

 

또 하나 ‘못된 정신의 확산’은 ‘트로이의 목마’에서 볼 수 있는 폭력의 재생산이다. 트로이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도시국가를 공격한 적들에 의해 집단학살을 당한다. 그 끔찍한 집단학살을 피해 난민이 된 트로이 시민들은 자신들 역시 자신들을 집단학살하였던 그 악마들의 모습 그대로 로마의 원주민들을 집단학살하고 그곳에 로마제국을 건설한다. 폭력의 재생산, 즉 ‘못된 정신의 확산’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못된 정신이 확산’되는 이유를 작가는 이렇게 들고 있다.

 

“못된 정신은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지. 모두 꼼짝 못하게 말이지. 그래서 그 편에 서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되지. 말하자면 이기는 편에 서고 싶다는 욕망, 그게 이 세계의 모순이기도 하고.”(194쪽)

 

하지만, 이런 ‘못된 정신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착한 정신’이 있기에 세상은 유지됨을 작가는 말한다.

 

“못된 정신에 비해 착한 정신은 적지만 견고할지도 몰라. 중요한 건 우리 안에 착한 정신 편에 서려는 욕망이 있고, 결국은 의지를 내보인다는 거지. 인류의 역사를 봐도 알 수 있어. 못된 정신이 한차례 확산되고 나면 뒤이어 착한 정신이 그걸 뒤덮기를 반복하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인류는 벌써 멸망했을 수도 있지.”(194쪽)

 

그렇다. 비록 다수가 못된 정신을 따라간다 하지라도 착한 정신을 붙잡고 투쟁하는 이들이 있기에 인류는 유지되고 있다. 비록 여전히 ‘못된 정신’이 큰 소리를 내고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비록 작은 소리이지만, 자신의 신념이 확고한 ‘착한 정신’을 붙잡는 이들을 위해 사회는 유지된다. 오늘 우리 사회 역시 마찬가지이고. 이 사실을 알기에 어쩌면 ‘못된 정신’들은 그토록 ‘착한 정신’을 두려워하고 끊임없이 밟으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비록 지금 내가 약자의 입장에서 ‘착한 정신’을 붙잡고 있다면, 그리고 ‘못된 정신’의 강자들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비록 추후에 내가 강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 할지라도 내가 당한 고통을 다른 이들에게 다시 전해주지 않겠다는 그런 정신에 도달할 것을 작가는 말한다. 이것이 바로 트로이 이야기를 꺼내는 목적이기도 하다. 이것 역시 우리가 주의해야할 부분이 아닐까? 분명, ‘착한 정신’의 입장에서 투쟁하며 세상을 밝게 하는 데에 역할을 했던 이들이 정작 자신들이 기득권층에 앉게 되면, 슬그머니 ‘못된 정신’을 붙잡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봐왔지 않은가?

 

아울러 이것이야말로 작가가 제시하는 ‘못된 정신의 확산’의 고리를 끊는 방법이기도 하다.

 

“연속되는 고리를 끊어 내는 행동. 내가 당한 못된 일을 다른 사람에 물려주니 않겠다는 윤리적 정신을 다지는 것. 그리고 행동하는 것. 돌발적일수도 있고, 냉정할 수도, 대담할 수도 있는 어떤 행동이 우리의 정신을 바꿔 놓는 지점이 될 수도 있겠지.”(205쪽)

 

그렇다. 비록 내가 ‘착한 정신’을 붙잡고 살아감으로 피해를 본다 할지라도, 그리고 추후 내가 힘을 갖게 된다 할지라도 여전히 ‘착한 정신’을 붙잡는 모습이야말로 ‘못된 정신의 확산’의 고리를 끊는 행위가 아닐까? 소설 속의 전설적 싸움꾼이 되어버린 ‘나’가 힘이 있음에도 끝까지 ‘못된 정신의 확산’에 함몰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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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된 건 너 때문이야
수 패턴 테올 지음, 신주영 옮김, 최현수 그림 / 그여자가웃는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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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프로그램에서 한껏 차려입은 부부와 며느리가 등장하여, “누려”를 외치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젠 부자가 되어 누릴 수 있음에도, 그리고 누리기를 원하는데도 “어머니, 몸이 기억해요.”라던 웃픈 대사가 떠오른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책 『내가 이렇게 된 건 너 때문이야』를 읽으며 떠오른 장면이다.

 

이 책의 저자는 20년이 넘도록 정신분석가로 상담을 하며 많은 여성들에게 도움을 준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이력이 이 책에 오롯이 녹아 있다고 저자는 밝힌다.

 

그러니, 이 책의 내용들은 언제나 건강하게 살고,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가는 여성들을 소재로 삼기보다는 삶 속에서 이런저런 모습으로 상처입고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당당하게 살아가야 함에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여성들, 때론 누리며 살아야 함에도 누리며 살지 못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12단락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많은 내용을 보이는 것은 바로 ‘자신감’, ‘자존감’을 가지라는 말이 아닌가 싶다. 여성으로서(사실 남성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책은 여성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상처입고,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움츠리고 살아가는 모습이 아닌, 언제나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살 것을 말한다.

 

아울러 자신을 먼저 사랑하며, 자신을 인정할 것을 말한다. 언제나 난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라고 살아가기보다는 자신은 사랑받아 마땅함을 생각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감탄하며 바라보라고 권면하고 있다. 나의 단점보다는 장점에 집중하고, 나 스스로를 좋아하고 존중함으로 자존감을 가질 것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린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가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는 상처 입은 여성들이 그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책 제목은 『내가 이렇게 된 건 너 때문이야』이지만, 실상은 나 스스로에게 집중한다(사실 이 책이 제목이 이와 같은 건, 여성들이 언제나 희생하고 용납하며 자기 탓으로 돌리며 살지 말길 바라는 저자의 바람이 담겨 있다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이렇게 된 건 나 때문”임을 먼저 자각하고, 그 ‘나’를 사랑하고, 존중함으로 다시 힘을 낼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너’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나’에 관심을 기울인다. 사실 내 마음이 변하면 내 삶이 바뀌게 된다는 그런 관점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면, ‘내’ 삶은 점점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 믿음을 갖고 살길 권면한다. 그렇지 않을 때, 오늘의 삶을 불안감 가운데 허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서 미래의 불안과 과거의 상처 어느 것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기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오늘’에 관심한다. ‘나’에게 주어진 ‘현재’의 삶을 누리며 살길 권하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나’를 바라보는 ‘내’ 관점의 변화에 따라 ‘내’ 삶이 바뀌게 될 것을 이야기한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들도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간다면 좋겠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삶을 ‘누려’ 보자. 왜? 저자의 말처럼, ‘난’ 누릴 자격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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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Much As A Rat's Tail : Korean Slang, Invective & Euphemism - the Insider's guide
피터 N. 립탁.이시우 지음 / EXILE Press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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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Korean Slang-As much as a rat's tail" 은 제목 그대로 우리말 가운데 ‘비속어’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그러니 대상은 우리말을 배우기를 원하는 영어권 외국인이겠다. 책 내지의 책 정보를 보면, 우리나라와 미국 양국의 ISBN 넘버를 받아 출간된 것으로 되어 있으며, 출판사는 미국출판사에서 작업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 책의 대상은 우리말을 배우기를 원하는 영어권 외국인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속어만이 아닌 은어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몇몇 단어의 경우는 젊은 감각이 없다면 한국인도 잘 모를 법한 단어도 몇 개 눈에 띈다. 나름 우리의 젊은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속어들을 잘 설명하고 있어 우리말을 배우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에게는 도움이 되리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없진 않다. 몇몇 설명의 경우, 그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설명들도 없지 않으며, 잘못된 설명 역시 없지 않다. 예를 든다면, “몽땅”이란 단어에 대한 설명도 그런 예라 할 수 있겠다. “몽땅”이란 단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 표현은 ‘모두’의 충청도 지방 사투리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또한 욕망, 탐욕을 의미하는 ‘몽’이라는 단어와 지구 혹은 대지를 뜻하는 ‘땅’이라는 단어가 결합되어 모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짧고 굵은 것을 뜻할 때도 쓰이는데 ‘몽땅연필’을 예로 들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몽땅”이란 단어는 예전부터 사용되어지던 표준어이다. 게다가 ‘몽’과 ‘땅’의 결합이 과연 그러한지는 알 수 없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많은 속어를 설명할 때,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과연 그 근거가 맞은 지, 아니면 저자들의 추측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짧은 연필을 ‘몽땅연필’이라 한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다. 누가 ‘몽땅연필’이라 하는지 모르겠다. 요즘 젊은이들이 그렇게 잘못 발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몽땅연필’이 아닌 ‘몽당연필’이 부른다(게다가 ‘몽당’은 비속어도 아니다). ‘몽땅연필’이라면 모두 연필이란 뜻일까? 이런 식으로 쎈 발음으로 우리의 언어를 변형시켜 접근하는 경우가 이 책에서는 많다. 이것 역시 우리의 언어를 잘못 전하는 나쁜 예가 아닌가 여겨진다.

 

또한 많은 단어가 성과 관계가 있어, 물론 ‘비속어’라는 단서가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마치 우리 국민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관심사가 성문제에 집중해 있는 느낌을 갖게 하는 부작용도 없지 않나 싶다.

 

“만먹다”라는 단어의 경우, 굳이 이것을 우리의 속어라고 해야 할까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책에서도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맞먹다”의 발음일 뿐이기 때문이다. “너, 나랑 맞먹자는 거냐?”라는 표현에서 그 발음이 ‘만먹자는 거냐?’라는 식으로 발음되는 것이지, “만먹다”라는 속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속어라기보다 발음 그대로 적은 오용이다. 만일 요즘 젊은이들이 이런 단어인줄 알고 사용한다면 그것은 단어를 모르는 경우이지, 새로운 비속어는 아니리라 여겨진다. 이 책 등장하는 단어들 가운데는 이런 식으로 그저 발음상의 단어들을 새로운 속어인 양 기록하고 있는 단어 역시 적지 않아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요즘 젊은이들의 언어기록을 따른다고 한다면, 그것은 속어가 아닌, 그들만의 은어로 접근하여야 하지 않을까? 이런 구분이 없음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게다가 우리 언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이 책에 실려 있는 단어들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무난히 생활하는 분들이 많으리라 여겨질 때, 굳이 외국인의 입장에서 이런 속어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한다. 그럼에도 ‘비속어’를 많이 사용하는 내국인들을 상대하는 외국인들이라면 이 책이 대단히 유용하게 사용되어질 것이다.

 

뿐 만 아니라, 말 그대로 이 책은 ‘비속어’에 대한 책이다. 그러니 그것을 감안하고 접근하면 좋겠다. 상당히 흥미로운 작업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흥미로운 작업을 한 저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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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도 - 관점을 뒤바꾸는 재기발랄 그림 에세이
김수현 글.그림 / 마음의숲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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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의 세 번째 에세이집인 『180도』엔 이런 부제가 붙어 있다. “관점을 뒤바꾸는 재기발랄 공감 에세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 책이 지향하는 내용은 관점을 뒤바꾸는 데에 있다. 책 제목마저 『180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솔직한 평가를 한다면, 관점을 뒤바꾸는 내용들은 글쎄다. 새롭게 접근하는 내용으로 본다면 그런 내용들은 별로 없다고 말해도 좋겠다. 하지만, 독자들의 생각을 바꿔주는 의미라고 본다면, 이런 단서를 붙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의 생각을 바꿔줄 수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내용들은 어쩌면 독자들 역시 알고 있을, 또는 그렇게 실제 삶 속에서 살아내고 있을 내용들이기도 하다. 독자들에게 새롭다는 의미는 별로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디 해 아래 새것이 있겠는가! 우린 여전히 누군가의 글을 참고하고 인용하지 않는가? 내가 모를 뿐이지, 여전히 누군가의 글과 사상에 영향을 받아 말하고, 글을 쓰고 하니 말이다.

 

그 다음 문구인 ‘공감 에세이’에서의 ‘공감’은 있다. 그리고 비록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가운데서 나에게 공감을 주는 내용들을 붙잡고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면 되지 않을까 싶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을 함께 나눠본다면, “두 종류의 꿈”이란 글이다. 이렇게 시작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꿈이 있다. 현실로 이루기 위한 꿈과 현실을 미루기 위한 꿈. 현실을 미루기 위한 꿈은 현실을 외면하는 그럴듯한 명분이 되기도 하고,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을 타인에게 떠넘기기 위한 비겁한 변명이 되기도 한다. 그저, 노력 없이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꿈도 있는 것이다. (이하 생략)”(30쪽)

 

과연 내가 꿈꾸는 꿈은 현실로 이루기 위한 꿈인가? 현실을 미루기 위한 꿈인가? 다시 한 번 꿈을 향해 담금질 해보게 된다.

 

요즘 이 책처럼 별반 새롭지 않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어낼 만한 내용들을 모아, 저자의 창작인지, 인용인지 알 수 없는 글들과 여기에 예쁜 그림을 곁들여 출판되는 책이 적지 않다. 이것 역시 요즘의 유행 아닌 유행인가 보다. 솔직히, 우려하는 마음이 없진 않다. 그럼에도 뭐 어떠하랴. 나 역시 이렇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여전히 찾고 있으며, 그 안에서 나름 공감을 느끼고, 뭔가를 붙잡을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도 책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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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나로 살지 않은 상처
앤 비티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테라피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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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비티의 소설 이후 ‘비티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그녀의 작품은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 앤 비티. 과연 어느 정도 길래 이런 찬사가 붙었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편다.

 

『온전한 나로 살지 않은 상처』는 앤 비티의 9편의 단편들을 모아놓은 단편집이다. 이 가운데 마지막 이야기인 「낱말 바꾸기」만이 2001년 작품이고, 나머지 작품들은 그녀의 초기 작품들(1970년대)인 듯싶다.

 

다 읽은 후에 든 생각은 솔직히 ‘이게 뭐지?’ 였다. 특별한 사건도, 특별한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누군가의 일상의 한 단면을 잘라 옮겨놓은 듯한 이야기들.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의아한 밋밋한 전개들.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래서 앤 비티가 글을 쓰던 당시를 한 번 떠올려본다. 그 당시는 히피문화가 미국전역을 휩쓸 때였다. 그래서인지, 「온전한 나로 살지 않은 상처」에서는 이러한 히피문화를 느낄 수 있고, 일면 동경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로스쿨 진학을 위해 애쓰던 샘은 어느 날 갑자기 진학을 포기하고 자유로운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샘은 자신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행 중에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서부로 오세요. 따뜻하고 아름답습니다. 시도해 보지 않고 어떻게 알겠어요?

 

자유를 찾아 떠난 여행이 그에게는 아름다운 행복을 주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오늘날에도 미국의 창조성은 히피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래서인지, 「온전한 나로 살지 않은 상처」에서의 샘이 음악교사인 엘런에게 해주는 아이디어들은 독창적이고 창의적이다. 자유를 갈망하는 그 영혼에 이러한 창조성이 감춰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야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있다. 그것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삶이 대체로 정돈되지 않은 뒤죽박죽의 삶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의 니트족처럼 일하지 않으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일하려 하지 않고, 그저 마리화나나 피워대는 모습. 게다가 이혼이 빈번하며, 배우자보다는 개나 고양이를 더욱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모습이 앤 비티가 당시 미국 사회를 향한 풍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특별한 사건도, 특별한 스토리도 없는 이야기들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면 어쩌면 그것이 앤 비티의 능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는다. 책에서 인용한 글 가운데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어 적어본다.

 

“우리는 늑대 꿈을 꿔서 겁먹는 것이 아니다. 먼저 겁을 먹었기 때문에 늑대 꿈을 꾸는 것이다.”- Samuel Taylor Coleridge (112쪽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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