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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이야기
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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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놀라운 일들이 현실이라면 나는 미쳐버릴 것이다. 그것들이 상상의 것이라면 난 이미 미쳐 있는 것이다. -앰브로스 비어스-

베르나르 키리니의 [육식 이야기]에선 살짝 보르헤스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로맹 가리의 상상력도 어른거린다. 서문인 ‘고인들의 목록’과 ‘아르헨티나 주교’, ‘지금은 모두 죽어버린 몇 작가에 대하여’나 ‘유럽과 기타 지역의 음악 비평 몇 편’ 같은 데선 친숙한 이름이긴 하지만 가공의 산물인 것들이 어우러져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발랄한 상상력을 맛보게 한다. 안토니오 가우디나 피에르 굴드가 연이어 등장하고 익숙한 지명을 차용한 대목도 상당 부분 등장하는데 이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글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소재와 글쓰기 방식이라 하겠다. ‘기름 바다’나 ‘살인청부업자의 추억’에서는 삶이나 세상의 허무에 대한 비판적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로맹 가리의 세계도 겹쳐진다. 로맹 가리의 그것보다는 약간 비관의 색깔은 옅지만 말이다.

키리니의 [육식 이야기]가운데 내게 압권으로 다가온 건 역시 표제작인 ‘육식 이야기’라 하겠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발랄한 상상력, 거기다 허무의 그림자까지 곁들여진 게 이 책의 대표작으로 주저없이 꼽을 만했다.

영국 런던 경찰국 수사관 출신인 해리 그로워가 자신의 삶을 정리해 보고자 회고록을 집필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들춰보다 기묘하고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살해당한 식물학자 존 라투렐의 조수였던 오브롱 굴드의 편지와 그에 대한 답신이 오가면서 사건의 전말을 드러내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글이다. 역시 키리니답게 거대 식충식물인 디오나이아 투렐라(라투렐의 파리지옥)가 연구자인 라투렐을 공격하여, 시신이 물어뜯긴 채 온실에서 발견된 사건에 대한 수사 과정을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유해 식물과 독성 식물이 온갖 증오와 죽음의 악취를 풍기는 음산한 온실을 배경으로 연구자와 그의 조수가 식충식물에 심취되는 과정을 꼼꼼하게 그리고 있는데 조수인 오브롱 굴드는 식물에서 사악함과 비열함을 읽고 있고 라투렐은 파리지옥에 인격까지 부여하며 그를 마치 군주인양, 여주인이나 연인인 것처럼 여겨 사랑에 빠질 정도까지 탐닉하게 되는 모습을 통해 키리니 특유의 기괴하고 도발적인 상상력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결말은 의외의 진범이 밝혀지는 것으로 대반전이 이루어지고 있어 약간 어이없다는 느낌도 들었다.

베르나르 키리니의 [육식 이야기]에는 이렇게 한 편 한 편, 천천히 곱씹어볼만한 이야기들로 빼곡하다. 그리고 분량도 단편보다 더 짧은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호흡을 고르지 않고도 읽어낼 수 있어 더욱 쉽고 즐겁게 다가갈 수 있다. 두고두고 음미해볼만한, 재미있고 발랄한, 그러면서도 나름의 메시지도 담고 있는 이 책은 결코 일회용은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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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도 색깔이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검정도 색깔이다
그리젤리디스 레알 지음, 김효나 옮김 / 새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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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를 깨는 적나라함 

매춘이나 마약에 대한 얘기는 픽션에서도 좀처럼 다루기 어려운 주제이다. 그런데 논픽션에서 본격적으로 거론하는 것, 더구나 본인의 체험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여간 용기를 내지 않고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그런데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이런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뜨리고 있다. 붉은 색 대저택 거리의 여인이 되어 뭇 사내들을 상대한 것에서부터 아프리카 모로코에 가서 직접 구입한 마약을 밀거래한 것은 물론 직접 복용한 사실까지 가식 없이 생생하게 까발리고 있는 것이다. 대담하다 못해 치기 어린 것처럼 보여 뜨악한 감을 지울 수 없게끔 말이다. 그런데 그녀의 얘기에 귀 기울이다 보니 조금씩 그녀의 삶에 공감하게 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유별난 괴물이 아니었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우리 같이 사랑하고 고민하고 연민에 빠지곤 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살고 있었네 

매춘이나 마약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은 죽지 못해 겨우겨우 연명하는 구차한 인간들이란 선입견을 갖기 십상이다. 그리고 그곳은 약육강식의 정글이고 생존을 위한 동물적인 본능만 남아있는 곳이라 여긴다. 그러나 그곳에도 인간, 우리와 똑 같은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 살고 있었다. [검정도 색깔이다]는 이런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매춘굴에 있는 여인들 사이에도 우정이 존재하고 그들도 사내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집시 집단 거주촌에서 타타와 니나, 소냐 등과 나눈 우정은 아름다운 가족애랄 정도로 뭉클하게 만들었다.

진실한 사랑이 있었네

생존을 위한 직업으로서의 매춘녀는 대가 없이는 사랑을 나누지 않는 프로이다. 그러나 [검정도 색깔이다]에는 그들에게도 가슴 울렁거리는 사랑의 감정이 존재함을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로드웰과의 아릿한 얘기는 정말 설레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표범의 얼굴, 풀잎처럼 매끄러운 이마, 나무껍질처럼 자글자글 갈라진 두툼한 입술의 로날드 로드웰이여. 당신 눈동자의 보랏빛 홍채는 깊고 신비로운 우물입니다. 나의 밤, 나의 술, 나의 마약입니다. 당신의 페니스에서 솟구치던 유황과 암모니아 맛의 액체를 마셨었지. 당신 복부에 고인 짜디짠 샘의 가슴 위에 구슬 지어 흘러내리던 푸른빛 포도송이들에 축축하게 젖어가며.(281쪽)

진실로 사랑해보지 않은 자는 이 책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라는 작가의 일갈은 인생의 의미를 달관한 이의 솔직한 선언이라 하겠다.

영원히...듣고 있니, 로드웰. 난 영원히 당신을 사랑할 거야. 당신과 함께라면 지하 독방에서 20년 동안 철창신세를 지는 것도 행복일 거야.(373쪽)

한 고귀한 영혼의 자존감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 보헤미안의 영혼을 지닌 그녀에게 창녀라고 침 뱉을 자격이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때 묻고 속 좁아 터진 우리가 말이다. 그녀에게선 혁명가의 자부심과 당당함이 느껴진다.

우리에게로 오는 성경에서 말하듯 피곤하고 지친 모든 자들, 즉 우리가 자살과 고독에서 구해내는 자들, 우리의 유방과 질 속에서 스스로를 되찾는 자들, 가벼워진 고환과 뜨겁게 달궈진 심장으로 가정에 되돌아가는 바로 그자들이 우릴 괴롭히고, 비난하고, 부정하고, 세금을 매기고, 바가지를 씌우고, 억누르고, 맘대로 우리의 아이들을 고아원에 집어넣고 우리가 사랑하는 남자들을 감금하는 짓거리를 그만두도록...(433쪽) 

진솔하면서도 진부하거나 추하지 않고 인간 본연의 정서, 고귀한 영혼을 오롯이 드러내고 있는 선언이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비하하지도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자존감 넘치는, 스스로 혁명가임을 자처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 어디에서도 씁쓸한 패배자의 면모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여인의 담대한 자기 규정, 세상을 향한 자존감 어린 목소리가 바로 [검정도 색깔이다]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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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기 문학 B조 마지막 도서 <사랑, 마음을 내려놓다>
사랑, 마음을 내려놓다
설미현(미스트랄) 지음 / 베가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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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한 자기 고백을 담고 있다.

“고맙다 내 첫사랑. 평생 만나려들지 않겠지만, 언제 어디서나 행복해. 그리고 내게 이렇게 좋은 기억을 주어서, 사랑에 대한 확신을 주어서 너무 고마워.

글을 맺으려니 웃음이 터진다. 우리가 서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은 내가 그 아이보다 한 살이 많아서였는데, 그 당시 사회 통념으로 여자가 나이 많은 것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라 힘들어 했던 것이었는데, 지금 내 남편은 나보다 두 살 반이 어리다. 인생 참 짓궂다.”(76쪽)

설미현의 글은 꾸밈이 없다. 문장도 그러하거니와 글의 내용도 소재에 구애받지 않고 진솔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어린 시절 어쩜 유치하고 다시는 떠올리기 뭣한 풋사랑의 기억들까지 윤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니. 그리고 자칫 심각하게 빠지기 쉬운 얘기를 아릿하게 마무리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는 반전을 곁들였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도 역시 그의 솔직함에 공감해서일 것이다.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는 잔잔한 글이다.

‘만일 스물한 살의 가슴을 가지고 마흔다섯 살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다면 참으로 조화로운 삶이 될 것 같다. 불혹의 나이 마흔을 넘어 세상의 이치를 어느 정도 깨닫게 된 마흔다섯에는 가끔 청춘이 그립기는 하겠으나. 그래도 아직 살아보지 못한 쉰이나 예순에 대한 설렘 역시 공존할 듯하다. 특히 치열하게 삶을 뚫고 지나 온 중년들에게 마흔 다섯은 자랑스러운 훈장 같은 나이일 것이다.”(78쪽)

설미현은 또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끔 생의 지혜를 온축한 글로 마음을 움직인다. 무자년 신년 수필로 시애틀 지역신문 미디어 한국에 발표한 <나이의 미학>에서는 정말 인생의 경륜이 느껴질 정도이다. 잔잔하게 파고드는 게 여간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니었다.
 

다만 아쉽다면, 글의 질이 쭉 고르지 않다는 점.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약간의 수정 보완이 필요한 대목이 몇 군데 눈에 띈 때문이다. 하지만 글쓰기의 경륜이 쌓이면 자연스레 해결되어 품격 있는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자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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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랄 2010-10-21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 쓴 미스트랄입니다. 좋은 서평에 감사 드립니다. 글의 질이 고르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데에 저도 동감입니다. 아마 책에 실린 글들이 씌인 시기가 제각각 달라서일 거에요. 길게는 7년 정도 씌인 시기에 차이가 나기도 하니까, 함량이 불균일한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열심히 연습하면 나아질 것이라고 격려 주시니 고맙습니다.

어떤 부분이 어떻게 수정되면 더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하네요. 고견을 들을 수 있으면 다음 글을 쓸 때 고쳐보도록 노력해 보고 싶습니다. 귀한 시간 내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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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황홀 - 김도언 문학일기
김도언 지음 / 멜론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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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일기를 통해 김도언이라는 작가를 처음 대하게 되었다. 제대로 된 단편 하나 읽지도 않고 그의 글에 대해 가타부타 얘기한다는 게 도리가 아니고 정확성도 떨어질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객기를 부려 내게 다가온 주관적인 인상 몇 가지를 붙이고자 한다.

좀 불안하다 

그의 정체성, 특히 문체의 독자성만 두고 본다면 아직 고유의 영역에 이르지 못한 것 같아 약간 아쉽다. 실은 덜 무르익은 것 같아 좀 불안하다. 뭔가 낯익은 기시감이랄까 하여간 그만의 글은 아닌 것 같은 감에 갸웃거리다가 책 말미에서 연유를 또렷이 알 것 같았다. 김훈이 <추천의 말>에서 극찬을 한 2004년 10월 11일의 일기를 읽는데 김훈의 문체가 겹쳐보였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강 건너 편안한 마을에 닿고 싶었다. 강을 가로지르는 전동차를 세워놓고 내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내가 이 순간 바라는 것, 혼자만 알 수 있는 주소, 오로지 ‘그곳’만 표기되는 지도, 안내되지 않는 유선번호, ‘흐름’으로만 존재하는 선, 말하지 않고 말하여지지 않는 일상, 단순한 순환과 폭넓은 반전, 아무도 다치지 않는 생활의 안전을 경멸하지 않는 상식, 5킬로미터의 산책, 사과 반쪽. (341쪽)

관련 있는 대상을 한없이 열거하며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 진술 방식이나 ‘내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말하지 않고 말하여지지 않는 일상’ 같이 김훈이 즐겨 쓰는 표현을 그대로 차용한 부분에서 김훈의 아류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김훈이 좋아한다고 밝힌 2005년 2월 13일자 일기에서는 어릿광대의 삶을 통해 생의 어쩔 수 없는 근원적인 허무와 그것에의 경의를 표한 부분은 정신세계마저 김훈의 그것을 닮고 있는 듯했다. 하여 그의 입지가 좀 불안하게 보였다. 하여 대가의 그늘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그만의 세계 -지향이나 서사구조 특히 문체에 있어서- 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읽으며 황홀하기도 했다

김훈의 그림자가 어른거려 약간 수상하기도 했지만 많은 부분 그의 글은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 즐겁게 읽혔다. 내용의 함의가 만만찮은 것은 물론이고 기발한 아이디어, 발랄한 표현으로 배꼽을 잡게 만드는 대목도 많았다. 그의 글은 새로운 작품에 대한 구상을 밝히거나 지인들과의 교유나 삶의 현장에서 터득한 지혜를 고요히 드러내고 있었고 더러는 다른 이들의 작품에 붙인 촌평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 2009년 4월 15일자 일기의 새 작품 구상이 압권이었다.

공상 속에서는 실존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태어나곤 한다. 나는 방금 ‘아프로포니아스 독시투아키데스’라는 지극히 헬레니즘적인 이름을 가진 한 사내를 생각해냈다. 그는 오랫동안 전쟁터를 전전했고 애인의 사생활을 추측하면서 분노를 유지하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살아있으려고 애썼다고 상상한다. 아프로포니아스 독시투아키데스에게 전쟁은 문화였고 평화는 컬트였다. (36쪽)

새 작품에 대한 구상인데 인물을 창조해내고 플롯을 설계하는 것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마지막 부분의 전쟁은 문화였고 평화는 컬트였다는 대목은 징한 여운이 한참이나 지속되었다.

2009년 4월 9일자 일기에서는 삶에서 길어 올린 혜안이 엿보인다.

어른이 자기긍정과 타자에 대한 전폭적인 이해를 완성한 존재라는 관점에서 보면, 인간에게 어른의 시절은 없는 듯하다. 불안의 정도, 불안의 깊이가 다를 뿐이고, 사람들은 모두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어느 순간 죽음과 직면할 뿐이다. (37쪽)

내가 늘 안고 있는 고민이기도 한 것을 잘 정리하여 공감가게 표현하였다. 그의 생각의 깊이가 읽히는 대목이었다. 2009년 3월 18일자 일기는 오은 시인의 <동시다발>이란 시에 대한 촌평인데 시도 재미있고 해설도 착착 감기는 게 인상적이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일어나는 일의 전말에 대한 논평에 공감이 갔다. 이면우 시인의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에 대한 평에서는 시인의 결곡한 시뿐만 아니라 그의 삶에 대한 애정 어린 묘사도 인상적이었다.

하여 그의 글을 읽으며 때론 짜릿하고 유쾌한 기분에, 더러는 심각하고 진지한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런 감정의 바탕에는 물론 황홀한 발산과 발견의 기쁨이 깔려 있었던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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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데이비드 뱃스톤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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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 

우선 21세기, 이 대명천지에 그것도 미국이나 한국 등 문명국가에서 웬 노예제람. 이게 뭔 토픽이 되기나 할는지 너무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노예제는 19세기에 링컨 대통령이 해방 선언을 함으로써 지구상에서 사라진 제도이기 때문이다. 석연찮은 마음에 한동안 이 책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목의 함의가 심상찮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일독하기로 작정하고 필자의 들어가는 글 두어 줄을 읽는데 금방 눈이 확 떠졌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 2,700만 명의 노예가 존재한다는 대목에서 이건 예사 일이 아님을 절감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경악할만한 일이 지금 이 순간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읽어나가자 노예제의 실상이 하나하나 드러나는데 이건 해도 너무했다 싶은 것뿐이었다. 핫 이슈임에 분명하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안타까웠던 건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오늘날의 노예제가 인종 등 선천적 요인에서 비롯된 게 아니고 문화적, 경제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현대 문명은 노예제를 사회구성방식으로 전제하지 않고 아예 논외로 취급하는 문화적 신화에 젖어있다. 그러니 이런 현상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사고구조가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전지구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무한 이윤 추구 시스템인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이런 노예제를 낳을 수밖에 없는 토양이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윤만 있다면 도덕도 인륜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집착하는 이 시스템 자체에 착취 기제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신매매가 불법 무기거래보다 훨씬 수익성 있는 사업이라고 판단되기만 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이 사업에 뛰어들게끔 동기유발을 하는 것이 이 체제인 것이다. 그 피해자 대부분은 연약한 고리, 즉 여성, 어린이, 장애인, 저개발국 저소득층 등 가장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일 텐데도 말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 경제인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냉혈한이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리고 그 메커니즘은 교묘하고 집요하며 자기 완결적이어서 웬만해선 문제의 본질을 세상에 드러내어 처벌하기 어렵다. 대부분 악의 세력에 의해 암거래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문제 삼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닌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노예제가 과거에 이미 종결된 해묵은 역사가 아니라 아직도 생생하게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이슈임을 증명해보이고 있다. 정말 경악할 일이다.

공감 

또 하나 뜬금없다싶은 게 바로 책의 표제였다. 원제는 [Not for sale]이었는데 우리말로 옮길 때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로 바뀌었다 한다. 내용과 매치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건 서평단 서재의 문학 분야 대상 도서인데 웬 르포물이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장연구를 통해 얻은 생생한 사회문제 고발 관련서이기에 이건 인문, 사회과학 분야 대상도서로 적합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씩 읽어갈수록 이건 딱딱한 과학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우리의 아름다운 내면에 다가오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희덕의 <봄길에서>란 시에서 따왔다고 하는 책의 표제와 때론 로맨틱하고 더러는 아릿한 서브타이틀의 여운과 함의가 여간 문학적인 게 아니라는 데도 생각이 미쳤다. 하여 아! 이건 영락없는 문학, 감성의 세계에서 접근해야할 대상이구나 하는 자각이 들면서 오히려 책 제목과 도서 분류가 적합하다고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럼 나는

필자가 인용한 에드먼드 버크의 표현이 귀에 쟁쟁하다. “악이 승리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량한 사람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내 비록 선량하다고 자부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악의 커넥션에 직접 연관된 자가 아닌 이상 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해야 할 몫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나부터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부분은 없을까 고민하다 최근 선물 받은 공정무역 커피가 떠올랐다. 기아대책에서 판매하는 [따뜻한 향기]말이다. 노예노동으로 생산된 커피콩이 아닌 정상적 대가를 생산 농민에게 지불하고 구입한 원료로 가공한 것이니 자연 가격이 일반 커피보다 비쌀밖에. 하지만 그리 큰 차이는 아니다. 약간의 비용만 더 지불하면 나도 작은 몫이나마 노예노동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탤 수 있겠다 싶었다. 그 외에도 찾아보면 소소한 것 하나라도 이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들이 더 있을 것이다. 이제 두고두고 이 문제를 곱씹으며 연결고리를 발견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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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안그림자 2011-04-09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방에 들어 왔다가 시간이 가는 것을 잊어 버리고 서평문을 열심히 읽어 보았습니다. 읽어 나갈 수록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독서량도, 독서 깊이도 책이 가지고 있는 역활에 대해 정말도 생각을 많이 하게 해 주었습니다. 단순한 책을 좋아서 책을 읽고 그 책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을 글로 적어 놓은 것은 아니다 싶어 보입니다. 책 관련 전문가적 소견으로써 지식을 가진 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평범함 자체라면 책에 대한 식견이 너무 깊고 정확해 보이는 것에 대해 독자로써 대단함을 느껴 봅니다. 한 권의 책을 읽고도 그 속에 들어 있는 코드들과 부족한 점, 장점들을 끄집어 내어서 비교하고 평가하는 눈을 보고 있으니, 권 희철 평론가의 시각도 들어 앉아 있다는 것이 보여 집니다. 글들 너무 많이, 그리고 생각있게 잘 읽었습니다. 독자의 깊이 커져 갈 때, 작가의 사색도 깊어 져 간다는 것, 마음으로 느껴 봅니다. 정확성이 오락 가락하는 날씨가 황사 주의보를 켜 주었는데.. 하늘은 그것이 싫은 지 말을 들을 듯 말 듯 벌써 오후 반을 보내 버리고 있는 날입니다.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