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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카니발 ㅣ 율리아 뒤랑 시리즈
안드레아스 프란츠 & 다니엘 홀베 지음, 이지혜 옮김 / 예문 / 2012년 12월
평점 :
[신데렐라 카니발]은 추리소설의 전형에 충실한 작품이다. 우선 끔찍한 사건 현장에 출동한 민완 형사들과 법의학 감식팀, 그리고 내근 분석조의 공조를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이를 치밀한 두뇌 게임을 통해 풀어나가 결국은 악의 세력을 단호하게 심판한다는 어쩜 약간의 상투성이 느껴지는 스토리 라인이 그러하다. 또 용의자들을 범죄의 길로 내 몬 심리적 트라우마에 대해 지나치지 않는다는 점도 미스터리물 특유의 설정이다. 그런데 곰곰 따져보면 여느 추리소설과는 뚜렷한 차별성이 느껴진다. 다른 추리물에서는 보기 드문 여러 가지 색다른 시도로 신선하게 눈길을 흡인하고 있는데 특히 예술성 있는 감성적 톤과 경찰관들의 트라우마에 초점을 맞춰 접근하는 모습이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그리고 두 명의 작가에 의해 작품이 완성되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런 사례가 없진 않지만 작가의 사망에 따른 미완성분을 작가의 팬이었던 독자가 이어받아 마무리 지었다는 점은 특이한 경우이다. 그래서 [신데렐라 카니발]은 작가와 독자의 상호 감응이 낳은 합작품이라 하겠다.
살인 현장마다 오디오 시스템에선 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이 흘러나온다. 알렉산더(스포일러가 되지 않으려 성을 생략한다.)가, 그리고 소설 후반부에는 제3의 인물이 사건 현장에 자신의 서명을 남기듯 이 곡을 반복 재생시켜놓고 떠난다. 그런데 이런 설정이 겉도는 게 아니고 스토리 라인에 자연스럽게 접목되어 있어 묘한 톤을 연출한다. 율리아 뒤랑의 컴백 계기가 되었던 살인사건의 피해자 제니퍼 메이슨은 의식이 가물거리며 마치 천국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서 있는 듯 간절히 육신의 허울을 벗고자 열망하는데 아마 이때 Led Zeppelin의 곡이 은은히 울리고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그가 그녀 위로 몸을 기울였다. 차가운 금속이 목에 와 닿는 순간까지도 그녀는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몇 초 뒤, 기분 좋은 온기가 이 모든 고통을 잊게 만들었다. 제니퍼 메이슨이 마지막으로 지각한 것은 쇠의 맛, 그리고 편안한 무게감이었다. 그녀는 이 성가신 몸뚱이가 영혼을 놓아 주는 것을 감사한 기분으로 느끼고 있었다. (8쪽)
마지막 순간에 처한 이들은 눈앞에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그리며 어서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하는데 용의자는 자신이 이를 들어준 것이니 가여운 영혼을 구원한 셈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과 살인 과정을 녹화한 스너프 동영상 시청자들에게 이를 과시하듯 배경 음악으로 깐 셈이다. 자비네 형사가 스너프 동영상 제작자들의 이런 예술성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도리스가 발끈하며 무슨 예술성 운운이냐며 항변했지만 자신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와 관련된 상징적 표식을 남기는 것은 비록 사이코 패스의 짓이긴 해도 예술적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상식으로 보자면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가 환각 상태에서 타인이 공감하기 어려운 퍼포먼스를 벌인 것쯤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하여 [신데렐라 카니발]은 비록 왜곡된 형태이긴 하지만 예술성 있는 감성적 톤을 깔고 있는 보기 드문 작품이라 하겠다.
흔히 추리소설에선 용의자들의 트라우마를 꼼꼼히 그려낸다. 이 작품에서도 알렉산더가 어릴 때 배변훈련 과정에서 겪은 처참한 굴욕이 생생하게 드러나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납치되어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서 떠올린 기억만으로도 알렉산더는 치를 떤다. 그런 스트레스가 알렉산더를 반사회적 인격 장애로 일그러뜨렸을 것이다. 그런데 [신데렐라 카니발]에선 용의자들의 트라우마보다 오히려 경찰관들의 심리적 상처에 더 주목하고 있다. 율리아 뒤랑 형사는 명료하지 않은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혼란스러웠으며, 최근엔 토마스 홀처라는 사이코에게 납치되어 지하 감옥에서 며칠을 지옥처럼 보내며 극도의 공황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형사로 재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신이 피폐해져 있다. 이런 아픔 때문인지 성 범죄자, 납치 강간자 등에 대한 적대감이 매우 강하다. 연쇄 살인 사건 해결 과정에서 뒤랑은 자주 개탄하며 분노를 폭발시키는 모습을 보이곤 했으니. 젊고 매력적인 자비네 형사에게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자신의 속내나 가족 관계 같은 것은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슬럼가에 거주하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늘 마음에 걸리기 때문. 그밖에도 뒤랑에게 밀렸다는 열등감을 갖고 있는 프랑크, 사내 커플로 공사구별을 혼동할 거라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반발하고 있는 페터와 도리스 커플 등 다들 약간씩의 핸디캡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추리물에 등장하는 심신이 균형을 이룬 안정감 있는 경찰, 전지전능한 해결사로서의 모습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있어 보여 상투적인 캐릭터에 식상해진 독자들을 신선하게 자극한다.
이렇게 일관성 있고 완벽한 짜임새를 갖춘 작품이 두 명의 작가에 의해, 그것도 전혀 의도되지 않은 돌발적 요인에 의해, 씌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원작자인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돌연한 죽음으로 그의 열렬한 독자였다가 나중에 추리 작가로 등단한 다니엘 홀베가 엉겁결에 나머지 부분을 집필하게 된 것이니. 그럼에도 완성도 높은 매끈한 작품을 만들어내었다는 게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후반부를 집필한 다니엘 홀베가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앞부분에 대한 독자들의 격려성, 혹은 비난성 댓글을 참고하여 작품을 완성했다고 밝히고 있는 점이다. 그러므로 [신데렐라 카니발]은 작가와 독자의 상호 감응이 낳은 공동창작물인 셈이다. 독자들의 견해를 수용한 것은 물론 다니엘 홀베 자신도 작가이자 독자였으니 말이다. 요즘 얘기되고 있는 집단지성이 발휘되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 작품은 추리소설사에 하나의 기념비적 위치를 차지하게 될 듯하다.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미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예술성이 가미된 독특한 톤에다가 용의자뿐 아니라 경찰관들의 아픔과 인간미를 그리고 있는 등 새로운 감각과 상상력을 듬뿍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추리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상찬받을 만한데 더 결정적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작품 완성 과정이다. 원작자의 사후에 독자가 나머지 부분을 완성하여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 만들어냈다는 특이한 작품이력은 명예의 전당 헌정 감으로 충분하다 하겠다. 그런 측면에서 [신데렐라 카니발]은 안드레아스 프란츠 작가 개인에게나 추리소설사에 있어서 뚜렷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추리소설을 읽는 이라면 누구든지 이 일을 두고두고 입에 올리며 이 작품을 기억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