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숲,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순우 글 그림 / 도솔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인적 드문 금정산 뒤편 양산시 동면 쪽 등산로를 따라 걷다보면 숨이 턱 막힐 때가 종종 있다.

가령, 얼어붙고 메말라 의식마저 정지시킬 듯 혹독한 시절, 산 길 안쪽 한 모퉁이를 막 도는데 갑자기 훅 끼치는 보춘화 향기에 아득해져서 세상이 다시 촉촉하게 살아나고 무기력하게 찌든 몸 생기로 충전되는 듯 짜릿해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화사하던 봄꽃 어느새 스러져 나뭇잎, 잡초 등속으로 온통 초록 일색인 즈음, 나뭇가지 위에 둥실 얹힌 듯 피어있는, 너무 기대 밖이어서 오히려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으아리꽃, 마삭줄들 앞에 아! 하는 영탄을 다시 내뱉기도 한다.

겨울 산사 내원 꽃 한 점 잎 하나 없는 가운데 달빛 아래 아기자기 오밀조밀 얼려있는 목백일홍 잔가지들 쳐다볼 때 이 세상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잠시 나를 잊기도 한다.

아마 나와 같은 이런 경험 몇몇, 흐뭇한 기억들이 쌓여 저자의 마음을 자연스레 움직인 것이 "산책의 숲"으로 태어난 것이리라.  출판사의 기획이나 작가의 인위적 의지만으로는 낳을 수 없는 소박하되 품격 있는 밥상이다.  이 즐거운 정찬에 참여하여 이순우님의 심사와 행로에 동행하는 동안 때론 충만해지고 더러는 서늘해지는, 그리하여 우리의 강퍅했던 정서가 눈 녹듯 풀리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샘 2006-05-10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누구나 보는 것을 누구나 느끼는 것은 아니죠. 저도 잘 읽고 있는 중입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