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소설가 -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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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잡았을 땐 솔직히 약간의 거리낌이 있었다. 노벨상 수상자의 소설 및 소설가론이어서 관심은 많이 갔지만 이슬람 문화권인 터키 출신이고 수상 이후에 겨우 알려진 작가여서 그의 정신세계가 어떨지 독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위압적이지 않을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슬람권에 대한 선입견 탓인지 모르겠지만 권위적인 제스처로 군림하듯, 혹은 한 수 높은 고수가 하수를 계몽하듯 얘기를 풀어나가는 게 아닐까 해서다.

 

하지만 몇 장을 넘기지 않아서 그건 정말 공연한 기우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너무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같이 살가운 말투로 정겹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때론 수줍게 심경을 고백하기까지 하면서.

 

오르한 파묵은 우선 소설이 무엇이고 그 묘미는 어떤 데 있는지 생생하게 알려준 다음 마치 대학 문창과 수업 교육과정을 설계하듯 자신의 강의 계획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소설론을 들어보면 일반적인 얘기와 무척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이성과 감성을 아우르는 새로운 지경으로서 소설을 얘기하고 있다.

 

논리와 상상력, 이성과 몸이 서로 충돌하는 중심부가 하나뿐인 데카르트주의 세계의 논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의미입니다. 소설은 서로 모순되는 사고들을 우리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동시에 믿고, 동시에 이해하게 만드는 특별한 구조입니다.(39쪽)

 

자기 책에서 자기가 만든 캐릭터에 자기도 모르게 전파했던 감각적인 경험들에 대해 얘기하며 우리의 경계심을 허문다. 자연스레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소설 이론이 실재로부터 상상의 독립성을 지켜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리한 어떤 독자가 나의 소설에서, 그것들을 ‘나의 것으로 만든’ 나의 진짜 삶의 경험을 감지했다고 말하면, 나는 내 영혼에 대한 은밀한 고백이라도 한 것처럼, 그 고백을 다른 사람들이 읽기라고 한 것처럼 부끄러웠습니다.(55쪽)

 

그는 또 소설의 묘미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어떤 소설론보다 리얼했다 할까.

 

소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모두, 가장 소박한 작가에서 가장 성찰적인 독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설을 쓰거나 읽는 사람이라면 모두, 마음 한 구석에서 소설이란 이 아찔하고 모호한 느낌 때문에 읽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57)

 

이렇게 청중, 책에선 독자들과 래포를 형성한 다음 파묵은 먼저 작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다 소설 캐릭터로, 이야기의 구조로, 허구에 대한 개념으로, 소설 속 시간에 대한 문제로, 사물로, 관점으로, 박물관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의 발걸음을 따르다보니 어쩜 한 편의 작품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초보적인 습작 수준이 나오겠지만 말이다.

 

하여 파묵의 이 책은 소설처럼 한번 훅~ 통독하고 말 게 아니다. 문예창작, 혹은 소설 감상 텍스트처럼 깊게, 두고두고 읽어야 할 듯하다. 살갑게 다가오는 그의 강의를 듣고 있노라면 눈이 부쩍 높아질 것 같다. 스킬도 많이 향상될 듯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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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교과서, 세상에 딴지 걸다 생각이 자라는 나무 23
이완배 지음, 풀무지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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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자타 공인 경제 성장 모범국가이다. 단기간 압축 성장을 이룩하여 세계 유수의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였다. 특히 IT분야에서는 트랜드를 선도하며 세계 표준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리딩 그룹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외형, 실물 경제의 양적인 성장 이면에는 어두운 그늘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졸부, 악덕 재벌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어울리지 않는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지니고 있는 개인이나 집단이 주류로 행세하고, 소시민들도 건전한 경제활동을 통한 부의 축적과 합리적 소비생활을 실천하는 대신 한탕 심리에 젖어 일확천금의 꿈으로 온통 들떠 있는 지경이니 말이다. 이러니 기초가 부실한 사상누각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팽배해 있기도 하다. 실제로 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다른 나라들 보다 더 심각한 타격을 입어 거의 붕괴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기초가 튼실하지 못한 구조일까? 원인을 짚어보자면 여러 측면을 꼽을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학문적 배경의 빈곤 내지는 부재도 한 몫 하고 있다 하겠다. 다들 증권이다, 부동산이다 하며 경제에 관심은 많지만 정작 경제 활동을 설명하고 예측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경제학의 이론 체계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원리도 모르고 방향 감각도 없이 무조건 내달리는 형국이랄밖에. 한마디로 경제는 과잉 상태인데 경제학은 빈곤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이런 경제학의 빈곤은 또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우선 학문 자체가 난해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심오한 체계를 지닌 학문이라 하더라도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내용과 방법을 설계하여 가르친다면 대중들의 지적 수준에서도 능히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어쩌면 심오한 세계를 이해했다는 지적 효용감을 듬뿍 맛보게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 경제학의 빈곤이 외면한 대중들 탓이라기 보다는 학계의 대응 능력 부족이 더 근원적인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경제학의 집중 교육 대상은 누구여야 할까? 어떤 이들을 가르쳐야 이런 기초 부실 상태를 해소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당연히 청소년들이어야 할 것이다. 이미 사고방식이 고착화된 성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정보나 얻으려 할 뿐 지식의 구조에 대한 접근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교육의 효과, 습득 및 흡인력 면에서도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는 사물과 현상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하고 아직 세상의 때가 덜 묻어 있는 상태이므로 실용적인 필요를 떠나 지식의 구조를 빨아들일 수 있는 타블라 라사를 지니고 있다 하겠다. 그러니 비록 경제학이 어렵다 하더라도 잘만 가르치면 큰 반감없이 학문의 세계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들이 자라 실제 경제활동에 임하고 주류로 부상하게 될 때 기초부실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학문적 배경이 밑바탕에 깔린 상태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 교과서, 세상에 딴지 걸다]는 그에 대한 고민이자 응답이라 하겠다. 경제학 지식의 구조를 담되 청소년 단계의 지적 정서적 역량을 감안하여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호흡과 방법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그러니 경제학을 외면하고 있는 세상 풍조에 대해, 경제학을 기피하게 만든 교수방법론에 대해 딴지를 걸고 있다 하는 것 아니겠는가. 우선 시선을 확 끌 수 있게끔 도발적인 질문부터 던진다. "이 세상에 라면이 신라면밖에 없다면?" 이런 제목을 본다면 솔깃하지 않겠는가? 궁금증을 유발하여 관심을 불러일으킨 다음 독과점이라는 경제 이론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시퀀스를 엮어나간다. 그러면서 경제학 입문 단계에서부터 국제경제이론까지를 두루 톺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결 같이 청소년을 배려한 장치들을 깔아두고 있다. 매 단락 첫 부분에는 친근한 만화를 보여준 다음 드라마 등 생활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친숙하고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서서히 풀어나가고 있다. 그러다 제대로 된 이론 설명이 필요한 대목에서는 '이것만 알면 나도 경제박사'코너를 두어 본격적으로 용어와 이론을 정리한다. 또 '아하 경제 뒷 이야기'라 하여 이를테면 가십 거리 같은 흥미로운 사실들을 소개하고도 있는데 다분히 호기심 자극용이라 하겠다. 군데 군데 배꼽 잡는 얘기를 펼치다 더러는 눈물 찔끔 나올 정도로 찡한 의미 있는 얘기도 곁들인다. 이러니 주의 산만의 극치, 집중력 제로만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 청소년들이 흥미롭게, 그러면서 의미 있게 일독할 수 있을 듯하다.

 

하여 [경제 교과서, 세상에 딴지 걸다]는 기초 부실로 딜레머에 처한 한국 경제에 제대로 한 방 먹이고 있다 하겠다. 폭증이랄 정도로 다들 흠뻑 빠져있는 현실, 실물 경제를 도무지 못 쫓아가고 있는,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경제 이론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효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방법론들을 동원하여 경제학의 기초를 심어주려 하고 있다. 바라기는 이런 시도가 대안으로 그치지 않고 주류 방법론으로 채택되었으면 한다. 적어도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엔 딱딱한 교과서를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것 보다 정말 이런 방식을 적극 도입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익혀야 할 것이라면 흥미를 유발하고 집중력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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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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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일견 이별과 죽음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듯 보인다. 카밀라가 자신의 친모, 열아홉에 생을 마감한 정지은을 찾아가는 여정 곳곳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이별의 회한에 몸서리치는 이들의 안타까운 눈물이 겹쳐진다. 그러나 행간을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판이하게 다른 얘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별과 죽음, 절망과 회한보다는 오히려 심연의 나락에 떨어져버린 연약한 이들을 구원한 희망의 날개, 곧 사람을 살리는 말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이 희재임을 알게 된 카밀라와 희재를 입양 보낸 후 죽음을 택한 정지은에게 다가왔던 이들이 이어준 희망의 날개는 다름 아닌 당신은 내게 소중한 존재라는, 나도 당신과 같으니 슬픔을 함께 나누자는 말, 결국은 사람을 살리는 말이었다.

 

 

1. 유이치의 말 : 카밀라를 일으켜 희재로 거듭나게 하다.

 

자신이 입양아라는 자의식을 갖게 된 후 카밀라는 늘 왼손잡이였다. 그런 카밀라를 일으킨 것은 레드우드나무 아래에서 만났던 유이치. 그동안 집안의 블랙십(black sheep)이었던 카밀라는 유이치를 통해 그 막막함과 무의미함에서 벗어나게 된다. 유이치가 건넨 말, 사람을 살리는 말 때문이었다. 황인종의 가면을 쓰고 있는 백인 같지 않은 백인으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던 카밀라에게 너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달콤한 말이 파고들었던 것이다. 유이치의 말에 카밀라는 그만 촛농처럼 녹아버렸다. 21년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고통과 절망. 고독과 분노가 말끔히 치유되는 느낌을 경험했다. 더구나 유이치는 카밀라에게 생의 의미까지 부여한다. 글쓰기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다. 카밀라가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유이치가 꼽아나갔을 때 카밀라의 표정은 어땠을까? 그게 진정 거듭나는 순간 아니었을까.

 

“첫 번째,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해. 고독을 즐기지. 그러니까 레드우드의 에너지에 끌려서 거기까지 걸어온 거야. 내면적이고 달이 영향권 안에 있어. 두 번째, 그래서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강한 사람들과도 투쟁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아. 세 번째 무엇보다도 네게는 쓸 이야기가 너무나 많아.”(29쪽)

 

오로지 막막할 뿐이라면 그 막막함에 대해 쓰라고 유이치는 말했다. ... 충고를 듣고 나서도 글쓰기는 어려웠는데, 어느 날 아침 마치 말문이 트인 아이처럼 내 손이 노트 위를 내달렸다. 어느 순간 무의식적인 검열의 문이 활짝 열렸던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어떤 감정이나 평가 없이 내 생각들을 글로 쓸 수 있게 됐다.(56쪽)

 

카밀라가 글을 쓰게 되면서 그동안 무의미하게 여겼던 어머니라는 단어가 의미 있는 말로 실감나게 다가왔다.

 

“나는 어머니라는 말을 들을 때, 그 아이들이 평화라는 말을 들을 때 느끼는 걸 똑같이 느껴. 전쟁터에는 평화가 없잖아. 그러니까 평화라는 단어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걸 가리키는 단어야. 그 아이들에게는 무의미한 단어지. 내게는 어머니라는 단어가 꼭 그렇거든. 내게는 무의미한 단어일 뿐이야.”(90쪽)

 

유이치의 말과 권유에 고무되어 삶의 활기를 되찾은 카밀라는 자신의 존재의 근원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진실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되면서 진남으로 향한다. 치유의 순례길에 오른 것이다.

 

빈 공간을 채우는 논픽션을 제안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건 운명이 부르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빈 잔은 채워지기를. 노래는 불려지기를. 편지는 전해지기를 갈망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돌아가고자 한다. 진짜 집으로. 진짜 엄마에게로.(34쪽)

 

엄마를 찾으러 진남에 들른 카밀라는 드디어 진실의 흐릿한 얼개를 접하게 된다. 그러나 그 진실은 거짓과 가식으로 여러 겹 위장되어 좀처럼 실마리가 드러나지 않는다. 카밀라는 하나하나 엉킨 실타래를 풀며 진실의 고갱이로 접근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정지은의 딸, 정희재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를 유이치에게 알린다. 자신을 일으킨, 사람을 살리는 말을 건넨 유이치에게 말이다.

 

나는 더 이상 카밀라가 아니야, 유이치. 내 이름은 희재야. 정희재. 문집에서 정지은이 작성한 앙케트에 나오는 이름이야. 그게 아들이든 딸이든 앞으로 태어날 자식에게 붙이고 싶다던 이름이야. 희재. 나는 희재야. 더 이상 카밀라가 아니야.(128쪽)

 

 

2. 엄마의 말 : 24년을 가슴에 담아두고 별렀던 고백, 바다 속에서 딸에게 들려주다.

 

유이치의 갑작스런 고백에 얼이 나간 카밀라, 아니 희재는 유람선이 떠 있는 곳이 엄마가 몸을 던졌던, 그 이전에 엄마가 엄마의 아빠, 오빠와 함께 배를 타고 진남을 바라보던 그 장소임을 깨닫고 엄마의 자장에 이끌리듯 바다로 몸을 던진다. 그 바다 속에는 24년을 한결같이 희재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가 있다. 엄마는 가슴에 담아두었던, 꼭 내뱉고 싶던 그 말을 희재에게 들려준다. 희재는 엄마임을 느낌으로 알아챘다. 간곡하게 들려준 그 말도 얼핏 들은 모양이다. 구조대에 의해 끌어올려진 후 의식을 되찾은 희재가 다시 그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려 했으니.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2005년을 기점으로 너는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아졌지. 그럼에도 네가 영원히 내 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 안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네가 나왔다니. (228쪽)

 

엄마 지은과 딸 희재는 이제 교감하게 된다. 엄마는 늘 희재를 지켜보며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다. 제2부 ‘지은’ 편은 온통 그런 얘기 일색이다. 엄마의 시점에서 희재를 애틋하게 살피고 희재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끊임없이 건네고 있으니.

 

“이건 우리 엄마 얘기니까요.” 네가 말한다. 이건 우리 엄마 이야기니까요, 라고. 그 말을 내가 듣는다. 맞다. 그건 내 이야기다. 그러니 내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렴. 얘야. 나 보다 일곱 살이나 더 많은 나의 딸아. (170쪽)

 

늘 자신을 돌보며 따뜻한 말로 일으켜주는 것을 느낀 희재는 더욱 힘을 내어 어머니를 복권시키는 일에 나선다. 그러면서 어머니를 살리려 따뜻한 말을 건넸던 이들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3. 이희재의 말 : 엄마를 구원한 희재, 최선을 다해 살아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들다.

 

카밀라, 아니 희재는 자신의 이름이 미리부터 정해져있었음을 알게 된다. 엄마는 앙케트에서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그게 딸이든 아들이든 이름은 희재로 짓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희재란 이름이 어떻게 엄마의 뇌리에 아로새겨졌을까? 바로 이희재와의 만남, 그에게서 들은 사람을 살리는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빠가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간 것을 알게 된 지은은 아빠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조선소 사장이 기거하는 양관으로 향한다. 그러나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무응답, 그러는 사이 아빠는 결국 죄책감에 몸을 던지고 말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기어이 아빠를 살려내고야 말겠다는 지은의 노력이 울림 없이 사그라지고 만 것이다.

 

우리는 이제 안다. 이 세상에는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이룰 수 없는 일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아니 거의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다는 걸.(287쪽)

 

그렇게 낙담한 엄마, 정지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이가 있다. 바로 사장의 아들 이희재. 그러나 실은 그도 이미 피폐하여 넘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머니의 자살에 이은 아버지 회사의 부도에다 자신과 얼마 차이나지 않는 새엄마의 등장, 그리고 세상의 온갖 부조리한 모습이란 모습은 다 보여주는 듯한 아버지의 행태에 분노하여 그를 쏴죽이고 싶다고 고해성사까지 했던 그였으니. 그런 희재가 지은을 보고 오히려 힘을 낸다. 생의 의욕을 다시금 느끼게 된 것이다. 그것은 측은함을 넘은 동질감 때문이었다.

 

내 심장은 왜 이토록 격렬하게 뛰고 있는가? 나는 자문자답했다. 이 아이의 손이 지금 내 심장에 닿았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죽음의 집으로. 이 기쁨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마침내 아버지가 몰락했기 때문에? 그럼 동시에 이 슬픔은 또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역시 아버지가 몰락했기 때문에? 아니, 누군가의 손이 처음으로 내 심장을 잡고 놔주지 않기 때문에 나는 기쁘고도 또 슬픈 것이다. (314쪽)

 

희재는 지은이 자신과 비슷한 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처한 입장이나 마음결의 울렁거림이 빤히 읽혔던 것이다. 그래서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고 안심하게 된다. 지은에게서 위안을 얻은 희재는 그런 마음을 고백한다. 먼저 마음을 연 것이다. 원수의 아들이라 냉담하게 대하던 지은도 희재의 그런 진정성을 읽게 되었고.

 

어때? 고통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너는 잘 알겠지? 우린 그런 점에서 서로 꽤 닮았으니까.(317쪽)

 

나는 너 만큼이나, 아니, 너보다도 더 아버지를 저주해. 그 점도 우린 닮았어. 그래서 너와 이 기쁨을 나누고 싶었던 거야. 드디어 몰락해버린 이 집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318쪽)

 

나도 너와 같다는 말, 그러니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자는 말에 엄마의 가슴이 요동친다. 마음속으로 어느새 희재가 들어와 버렸던 것이다. 그 순간 희재란 이름은 구원과 같은 말이 되었다. 그래서 카밀라에게 희재란 이름을 지어주었던 것이다. 무참한 나락에 빠져 있던 엄마, 심연 깊은 곳에 침잠해 있던 엄마에게 희망의 날개, 구원의 열쇠를 쥐어 준 이가 희재였으니 말이다. 이희재가 그랬듯이 정희재, 카밀라도 정지은에게는 날개였다.

 

너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갈 수 있니? 너 한테는 날개가 있니?... 그런 제게 지은이가 나한테는 날개가 있어. 바로 이 아이야, 라고 말하며 자기 배를 만졌어요. (278쪽)

 

 

4. 신혜숙의 말 : 희망의 날개를 꺾는 말, 엄마를 죽음으로 내몰다.

 

신산한 생의 고비마다 희망의 날개, 사람을 살리는 말에 의지하여 심연을 건너오던 정지은은 결국 말에 의해 침몰한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말이 때론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는 것이다. 오빠의 아이를 밴, 대책 없는 아이로 정지은을 매도한 신혜숙은 지은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희재를 강제로 입양 보내버린다. 일말의 희망이었던 아이, 그 여린 날개마저 앗아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지은에게 사람을 살리는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 누구도 지은의 심경을 헤아리고 나도 같은 마음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한 소녀가 고독 속에서 죽어갔다. 그건 누구도 그 소녀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며, 이 우주에 최소한 한 명은 너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쪽)

 

그때 유진이라도 지은에게 다가갔더라면 지은이 다시 힘을 내어 심연을 헤쳐 나갈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유진은 신혜숙 선생님만이 아니라 모두가 공범자라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신혜숙 선생님이 지은이를 죽였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사실은 불편하다는 편견 때문에 진실을 외면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지은이를 죽인 거지요. 하지만 진실은 불편하지 않아요. 진실은 아름다워요. (279쪽)

 

 

5. 엄마들의 말 : 그 따스한 보살핌에 어린 소녀 앨리스도 마음을 삭이다.

 

이희재의 엄마는 진남조선소 사장인 아빠의 지배욕, 소유욕의 대상일 뿐이었다. 한 번도 진실한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양관에서 고독하게 삶을 이어왔다. 그런 엄마가 몇 번이나 떠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 집을 떠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여 이희재는 어느 날 물어보았다. 엄마는 희재의 손을 이끌고 앨리스의 묘비가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앨리스에게 따스한 말을, 보살핌의 손길을 베풀기 위해 엄마는 그 감옥과도 같은 집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희재의 말에 위로받았던 정희재의 엄마, 지은도 앨리스가 안쓰럽기는 마찬가지. 그래서 안개 낀 날 남몰래 앨리스를 돌봐주며 희망의 날개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그 따스한 보살핌에 이국의 차가운 땅에 홀로 남은 어린 소녀 앨리스도 마음을 삭일 수 있었을 것이다. 안개 속에서 앨리스에게 다가가는 엄마의 모습에서 정지은의 얼굴을 읽은 희재는 안심한다. 앨리스도 외롭지 않으리라고. 그리고 자신도 엄마와 정지은의 가호 속에 다시금 심연에서 날개를 달고 희망을 얘기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했다.

 

이희재는 <바람의 말 아카이브>를 찾아온 정희재에게서 그녀의 엄마 정지은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래,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자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고 정지은도 그냥 의미 없이 사라진 게 아니었구나 하고 느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결국 사람을 살리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6. 사람을 살리는 말

 

죽음의 심연에 처한 가운데서도, 희망의 노래는 불리어진다. 그런데 희망의 날개를 전해준, 사람을 살리는 말을 간곡하게 건넨 이들은 결코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순전히 인간적인 측은함 혹은 동질감으로 같은 심연에 처한 이들에게 함께 가자 손을 내미는 것이다.

 

I've heard it in the chilliest land.

And on the strangest sea;

Yet, never, in extremity,

It asked a crumb of me.

 

가장 차가운 땅에서도,

그리고 가장 낯선 바다에서도 나는 들었네.

그러나 최악의 처지일 때도, 단 한번도,

그 새는 내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하지 않았네.

-에밀리 디킨슨의 시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의 일부-

 

그 새, 희망의 날개. 가장 차가운 땅에서 희재를, 또 지은을 일으킨 것은 너는 소중하다는 말, 나와 닮았다는 말, 너를 생각하며 기다렸다는 그런 말, 결국 사람을 살리는 말이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이렇게 죽음과 이별 대신 희망의 날개를 얘기하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말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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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 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신부와의 대화 이슈북 1
함세웅.손석춘 지음 / 알마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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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는 무척 얇다. 이슈북 시리즈가 독자 일반의 관심과 역량을 감안하고 배려하여 발간된 것이기 때문이다. 시사적으로 민감한 이슈의 토대가 되는 인문적 배경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풀이하고, 읽는 호흡도 고려하여 쉽고 짧게 정리한 것이다. 그래서 처음 책을 잡았을 땐 금방 독파할 수 있겠다 싶어 만만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도무지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게 아닌가. 평소 관심이 많던 분야이고 딱히 어려운 대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읽히지 않았던 것이다. 의아했지만 무슨 까닭인지 영문을 모르고 있다가 어느 순간 퍼뜩 짚이는 게 있었다. 마음결을 곰곰 가다듬다보니 몇 갈래 꼬인 가운데서 자그마한 실마리가 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우선 분노 때문인 것 같았다. 읽다보니 자연스레 감정 이입이, 그것도 과잉 개입이 이루어져 처참한 현실에 개탄하다 끝내는 분노심으로 들끓게 되었던 것이다. 손석춘 님이 마당을 잘 마련해서였는지 신부님은 거침없이 얘기를 풀어나갔는데 군데군데 나의 자아가 끼어들게끔 울컥하게 만드는 것 투성이였다. 그렇게 거북한 마음으로 어찌 가뿐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겠는가. 분노는 몇 군데 대목에서 특히 솟구쳤는데 신부님의 인생 역정을 정리한 부분에서는 눈이 번쩍했다. 신부님은 젊을 땐 영혼의 정의를, 장년기엔 정치의 정의를 위해 애쓰다 이제는 경제 정의를 위해 나서고 있다 했는데 이는 정치에 관한 한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리라. 그 부분을 읽다 현실 정치의 일그러진 모습이 오버랩되며 이건 신부님이 한참 싸우던 유신 독재 시절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아득해졌던 것이다. 거기서 답답하게 꽉 막혀버려 더 읽어나갈 수 없었다. 이 시대에 정치적 민주화는 당연히 돌이킬 수 없는 대세여야 하는데 작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참혹했던 시대에 대한 향수 정도가 아니라 본격 미화 작업이 시도되고 있고, 더구나 그 정신을 고스란히 계승하겠다는 이가 대선 가도의 선두주자로 나서는 등 수구적인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는 실정인데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또 하나 경제 민주화에 역행하는 맘몬의 세력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도 망연자실. 경제 권력이 얼마나 우리 삶을 교묘하고 철저하게 지배하고 있는가에 대한 신부님의 전언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모든 국민이 그들 조직의 부품으로, 하수인으로 전락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게끔 말이다. 가장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경제민주화의 개념조차 모르는 유신 미화 계승 세력이 이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나선 코미디 같은 일이다. 한때 경제민주화 주장을 빨갱이 짓이라고 매도하던, 집권하면 더욱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할 정책을 쓸 게 불 보듯 뻔한 이들이 집권을 위해 본색을 숨기고, 아니 그게 이율배반인지도 모르고 경제 민주화란 이름을 오용하고 있는 것이다.


분노를 넘어 더 멈칫거리게 만든 건 나에 대한 자의식이었다. 이는 정말 심각하게 나의 내면을 뒤흔들었는데 책을 읽어나갈수록 신부님이 말하고 있는 껍데기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는 사실이 또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껍데기의 횡포를 수수방관, 묵인하고 불고지한 주범이 나였다는 찔림이 밀려와 책을 던지고 싶을 지경이었다. 김용철 변호사가 비자금 의혹을 그렇게 명확하게 제시했는데도, 그 역시 삼성의 마름이었는데 이익 다툼 과정에서 뭐 뒤틀린 것이라도 있담! 하며 냉담하게 여겼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능히 그러고도 남을 줄 알면서도 삼성 제품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는 자각도 밀려왔다. 박근혜 지지 세력이 안철수, 문재인 등 속칭 민주 세력에 대해 딴지를 걸 때도 상대방에게 그런 빌미를 제공하지 말았어야지 하고 오히려 피해자를 탓했던 일도 떠올랐다. 그리고 신부님이 지적한 것처럼 물질의 노예, 맘몬의 숭배자가 되어 맹목적으로 황금만능의 대열에 합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순간 어쩜 방조 및 불고지죄 정도를 넘어 껍데기 자체로 살아온 것이었구나 하고 자탄했을 밖에. 신부님은 껍데기를 비판하려거든 자신부터 돌아보라고 했는데 말이다. “정의를 말하려거든 너부터 정의로워라.”는 신부님의 전언이 이처럼 따갑게 느껴질 수가. 이러니 책이 제대로 읽힐 리가 있었겠는가?


마냥 가라앉아 있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이런 껍데기의 시대에 도움이 될 만한 작은 일이라도 뭐 없을까 헤아려 보았다. 잘 찾아보면 실천의 여지도 있을 듯했다. 퍼뜩 떠오른 게 맘몬 숭배에 급급한 나의 마음부터 정리하자는 것이었다. 신부님이 언급한 악마의 하수인이어서는, 재물 앞에, 황금 앞에 무릎을 꿇는 노예여서는 스스로 용납할 수 없을 것이기에 말이다. 그래서 가급적 베풀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조용히 베풀고 소비생활은 줄여 나가야지 하고 각오를 다졌다. 정치-경제 지배 커넥션에 대해서는 고요히 심판할 생각이다. 그들의 분열적 면모를 친구들에게도 알려 심판 대열에 합류시키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선거라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효용을 아직은 기대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더 나아가 민주 진영 내에서도 과거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향을 이념으로, 정책으로 제시하고 추진할 의지와 역량을 갖춘 이들이 나올 수 있도록 선거로, 댓글로 또 독자 투고 등을 통해 의견을 개진할 생각이다. 너무 미미해 보이는 이런 실천들이 단번에 큰 변화를 이뤄내지는 못하겠지만 공감하는 이들이 조금씩 모인다면 집단 지성의 힘을 발휘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그 총합은 어떤 선각자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는 믿음으로 낙심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 추슬러야겠다.


하여 잘 읽히지 않는 이 얇은 책을 겨우겨우 읽는 가운데 나의 실상을 또렷이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일상에 치여 지지부진하고 있던 내 삶을 자가 점검한 셈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내 삶의 지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살짝 결기를 세워 나름대로 단호하게 나가야 하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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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쉽다! 1 : 왕, 총리, 대통령 중 누가 가장 높을까? - 우리나라와 세계의 민주 정치 사회는 쉽다! 1
김서윤 지음, 이고은 그림 / 비룡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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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실패기

 

지금은 대학에 다니고 있는 딸, 어릴 때부터 한 마디로 재기발랄 잘 나가는 타입이었습니다. 순발력과 적응력으로 치자면 어른 뺨칠 정도로. 그런데 문제는 진득하게 뚝심을 발휘해야 하는 분야는 젬병이라는 것. 그래서 공부도 수학, 과학, 예능 분야는 반짝거리는데 국어와 사회에서는 영 맥을 못추었습니다. 아빠가 좋아하고 잘 했던 과목인데 말이죠. 아마 엄마 탁을 한 듯했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그 과목 공부를 시켜본다고는 하였는데 성과는 영... 특히 사회는 초등 고학년 때부터 제가 봐도 아이들 수준에선 너무 난해한 내용에다 분량도 너무 많았습니다. 겨우 어영부영 중간치를 맴돌아 안타까웠지만 그럭저럭 넘어갈 밖에요. 그런데 문제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였습니다. 대입에 직결되는 내신성적이니까 말이죠. 고 1 중간고사에서 사회와 국사는 정말 바닥을 쳤습니다. 해도 너무 한다 싶어 제가 발 벗고 나섰죠. 그래서 기말을 앞두고는 딸내미와 제가 같이 공부를 했습니다. 서로 같은 자료를 복사하여 한참을 공부한 다음 제가 문제를 내고 딸은 맞히는 방법을 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별 무 변화. 기말 성적을 받고나니 참담했습니다. 이런 무작스러운 방법으론 안 되겠다. 막무가내로 외우기를 강요해서는 시간만 버리고 효과는 없구나 하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그래서 궁리해 낸 게 마인드맵 기법. 거기다 제가 약간의 그림을 그려서 곁들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죠. 드디어 2학기 중간고사에서 그 방법을 써 봤습니다. 딸이 약간 생동감을 보이며 참여하는 듯 했지요. 그런데 문제는 저의 극심한 피로감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내용을 구조화하고 그림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죠. 그런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성적에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때 내린 결론은 본인이 기꺼이 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무엇을 해도 소용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2. 사회가 쉽다고요??

 

아이들에게 사회는 암기과목으로 분류됩니다. 그냥 외워야 할 과목으로 여기는 것이죠. 그리고 내용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고요. 초등 고학년 정도만 되어도 현실 정치, 경제가 고리타분한 어른들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라는 걸 벌써 꿰고 있으니까요. 아이들 정서에 안 맞는 세계인 거죠. 그것에 관한 공부니, 생각만으로도 식상할 밖에요. 그리고 선생님들도 문제가 많아 보였습니다. 수학이나 과학처럼 내용 구조가 명료한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지식의 체계와 핵심을 잘 파악하지 못한 채 피상적인 내용만 가르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습니다. 어떤 분은 교과서 밑줄 긋고 그만이라는 식도 있었으니까요. 저 처럼 집에서 부모가 돕는 경우에도 사실 뾰족한 방법을 찾기 힘들답니다. 그래서 심각하다고 여기는 분들이 시청각 교육이다, 컴퓨터 활용 교육이다 하며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방법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기대만큼 효용이 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3. 사회가 쉬울 수도 있다!

 

제가 딸 아이 가르치려 했을 때, 마인드맵 기법이 그나마 아이의 관심을 끌었던 기억이 납니다. 거기다 우리 아이의 동기유발만 더해진다면 효과를 볼 수도 있을 텐데 하고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비룡소의 [사회는 쉽다]시리즈를 접했는데 몇 장 넘기지 않아 아! 하는 감탄이 나왔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부모들이 많구나, 이런 간절한 요구와 바람을 알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찌나 반갑든지요. 우선 도전적인 도입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제 제기로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으니까요. 제 아이가 딱 좋아할 스타일로 말입니다. "왕, 총리, 대통령 중 누가 가장 높을까?" 제가 이런 질문으로 얘길 시작했더라면 우리 아이도 훅 낚여왔을텐데. 그리고 스스로 읽어보려 나섰을 수도 있었을 건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 왔습니다. 이야기 전개도 아이들의 심리를 감안하여 시퀀스를 짠 듯 했습니다. 본 내용보다 먼저 생활 주변의 일상에서 소재를 끌어와 친근감 있게 진행해 나가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 대해 정리하기 전에 학급 반장 선거 얘기부터 끌어 와, 당선되면 피자와 치킨을 제공하겠다는 선심성 공약을 믿고 찍어 주었다 반장의 독단, 횡포에 시달린다는 상황 설정을 먼저 보여준 다음 자연스럽게 대통령 선거의 의미와 선택 기준으로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용도 세세한 지엽적인 것보다 전체의 얼개를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여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좋았습니다. 자잘한 것 외우다가 질려버린 우리 딸에게 이런 자료를 적용했더라면 좋았을 것인데...말미에 있는 낱말 풀이와 퀴즈도 아이들 호기심을 자극하고 집중력을 흡인할 수 있는 장치 같아서 적절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게 사실 더 결정적인 것 같은데, 이 책이 갖고 있는 아이들을 확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큰 미덕은 아이들 맞춤형 삽화와 만화가 아닌가 봅니다. 딱 아이들이 그린 것 같은 그림이어서 세련미는 떨어지지만 무척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만화의 말주머니에 들어 있는 말이니 아이들은 친구가 하는 얘기처럼 솔깃해서 들으리라 생각되었습니다.

 

4. 사회, 정말 쉬울 수 있다!!

 

하여 아이들이 이 책을 접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그들의 부모 혹은 선생님이 이 책에서 영감을, 방법론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꽉 막혀 보이는 일도 뚫고 나갈 방법이 있는데 아이들의 사회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과 진입장벽을 해소하는 일도 예외가 아니라 봅니다. 그 해결책의 일단을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그들의 심리를 자극하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적절한 자료였기 때문입니다. 자료만 좋으면 사실 외부에서 개입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저절로 책을 들고 그 세계로 몰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리즈의 다른 책은 아직 보지 못했으나 이 책 한 권만 봐도 아이들의 사회에 대한 인식을 확 바꿔 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음 편도 기대가 됩니다.

 

5. 그런데 누가 가장 높을까요?

 

책의 부제에 대한 제 나름의 대답은, 삼자동격. 민주 사회에서는 어떤 직책이든 서로 하는 일(역할)만 다르지 높낮이는 가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평등, 각 기관과 지위도 사실은 수평적 견제 관계이니까요. 초월적 위치에서 통치하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엔 법이라는 합리적 수단이 자리잡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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