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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황홀 - 김도언 문학일기
김도언 지음 / 멜론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문학 일기를 통해 김도언이라는 작가를 처음 대하게 되었다. 제대로 된 단편 하나 읽지도 않고 그의 글에 대해 가타부타 얘기한다는 게 도리가 아니고 정확성도 떨어질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객기를 부려 내게 다가온 주관적인 인상 몇 가지를 붙이고자 한다.

좀 불안하다 

그의 정체성, 특히 문체의 독자성만 두고 본다면 아직 고유의 영역에 이르지 못한 것 같아 약간 아쉽다. 실은 덜 무르익은 것 같아 좀 불안하다. 뭔가 낯익은 기시감이랄까 하여간 그만의 글은 아닌 것 같은 감에 갸웃거리다가 책 말미에서 연유를 또렷이 알 것 같았다. 김훈이 <추천의 말>에서 극찬을 한 2004년 10월 11일의 일기를 읽는데 김훈의 문체가 겹쳐보였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강 건너 편안한 마을에 닿고 싶었다. 강을 가로지르는 전동차를 세워놓고 내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내가 이 순간 바라는 것, 혼자만 알 수 있는 주소, 오로지 ‘그곳’만 표기되는 지도, 안내되지 않는 유선번호, ‘흐름’으로만 존재하는 선, 말하지 않고 말하여지지 않는 일상, 단순한 순환과 폭넓은 반전, 아무도 다치지 않는 생활의 안전을 경멸하지 않는 상식, 5킬로미터의 산책, 사과 반쪽. (341쪽)

관련 있는 대상을 한없이 열거하며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 진술 방식이나 ‘내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말하지 않고 말하여지지 않는 일상’ 같이 김훈이 즐겨 쓰는 표현을 그대로 차용한 부분에서 김훈의 아류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김훈이 좋아한다고 밝힌 2005년 2월 13일자 일기에서는 어릿광대의 삶을 통해 생의 어쩔 수 없는 근원적인 허무와 그것에의 경의를 표한 부분은 정신세계마저 김훈의 그것을 닮고 있는 듯했다. 하여 그의 입지가 좀 불안하게 보였다. 하여 대가의 그늘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그만의 세계 -지향이나 서사구조 특히 문체에 있어서- 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읽으며 황홀하기도 했다

김훈의 그림자가 어른거려 약간 수상하기도 했지만 많은 부분 그의 글은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 즐겁게 읽혔다. 내용의 함의가 만만찮은 것은 물론이고 기발한 아이디어, 발랄한 표현으로 배꼽을 잡게 만드는 대목도 많았다. 그의 글은 새로운 작품에 대한 구상을 밝히거나 지인들과의 교유나 삶의 현장에서 터득한 지혜를 고요히 드러내고 있었고 더러는 다른 이들의 작품에 붙인 촌평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 2009년 4월 15일자 일기의 새 작품 구상이 압권이었다.

공상 속에서는 실존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태어나곤 한다. 나는 방금 ‘아프로포니아스 독시투아키데스’라는 지극히 헬레니즘적인 이름을 가진 한 사내를 생각해냈다. 그는 오랫동안 전쟁터를 전전했고 애인의 사생활을 추측하면서 분노를 유지하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살아있으려고 애썼다고 상상한다. 아프로포니아스 독시투아키데스에게 전쟁은 문화였고 평화는 컬트였다. (36쪽)

새 작품에 대한 구상인데 인물을 창조해내고 플롯을 설계하는 것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마지막 부분의 전쟁은 문화였고 평화는 컬트였다는 대목은 징한 여운이 한참이나 지속되었다.

2009년 4월 9일자 일기에서는 삶에서 길어 올린 혜안이 엿보인다.

어른이 자기긍정과 타자에 대한 전폭적인 이해를 완성한 존재라는 관점에서 보면, 인간에게 어른의 시절은 없는 듯하다. 불안의 정도, 불안의 깊이가 다를 뿐이고, 사람들은 모두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어느 순간 죽음과 직면할 뿐이다. (37쪽)

내가 늘 안고 있는 고민이기도 한 것을 잘 정리하여 공감가게 표현하였다. 그의 생각의 깊이가 읽히는 대목이었다. 2009년 3월 18일자 일기는 오은 시인의 <동시다발>이란 시에 대한 촌평인데 시도 재미있고 해설도 착착 감기는 게 인상적이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일어나는 일의 전말에 대한 논평에 공감이 갔다. 이면우 시인의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에 대한 평에서는 시인의 결곡한 시뿐만 아니라 그의 삶에 대한 애정 어린 묘사도 인상적이었다.

하여 그의 글을 읽으며 때론 짜릿하고 유쾌한 기분에, 더러는 심각하고 진지한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런 감정의 바탕에는 물론 황홀한 발산과 발견의 기쁨이 깔려 있었던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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