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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데이비드 뱃스톤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경악 

우선 21세기, 이 대명천지에 그것도 미국이나 한국 등 문명국가에서 웬 노예제람. 이게 뭔 토픽이 되기나 할는지 너무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노예제는 19세기에 링컨 대통령이 해방 선언을 함으로써 지구상에서 사라진 제도이기 때문이다. 석연찮은 마음에 한동안 이 책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목의 함의가 심상찮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일독하기로 작정하고 필자의 들어가는 글 두어 줄을 읽는데 금방 눈이 확 떠졌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 2,700만 명의 노예가 존재한다는 대목에서 이건 예사 일이 아님을 절감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경악할만한 일이 지금 이 순간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읽어나가자 노예제의 실상이 하나하나 드러나는데 이건 해도 너무했다 싶은 것뿐이었다. 핫 이슈임에 분명하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안타까웠던 건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오늘날의 노예제가 인종 등 선천적 요인에서 비롯된 게 아니고 문화적, 경제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현대 문명은 노예제를 사회구성방식으로 전제하지 않고 아예 논외로 취급하는 문화적 신화에 젖어있다. 그러니 이런 현상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사고구조가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전지구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무한 이윤 추구 시스템인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이런 노예제를 낳을 수밖에 없는 토양이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윤만 있다면 도덕도 인륜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집착하는 이 시스템 자체에 착취 기제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신매매가 불법 무기거래보다 훨씬 수익성 있는 사업이라고 판단되기만 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이 사업에 뛰어들게끔 동기유발을 하는 것이 이 체제인 것이다. 그 피해자 대부분은 연약한 고리, 즉 여성, 어린이, 장애인, 저개발국 저소득층 등 가장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일 텐데도 말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 경제인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냉혈한이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리고 그 메커니즘은 교묘하고 집요하며 자기 완결적이어서 웬만해선 문제의 본질을 세상에 드러내어 처벌하기 어렵다. 대부분 악의 세력에 의해 암거래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문제 삼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닌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노예제가 과거에 이미 종결된 해묵은 역사가 아니라 아직도 생생하게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이슈임을 증명해보이고 있다. 정말 경악할 일이다.

공감 

또 하나 뜬금없다싶은 게 바로 책의 표제였다. 원제는 [Not for sale]이었는데 우리말로 옮길 때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로 바뀌었다 한다. 내용과 매치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건 서평단 서재의 문학 분야 대상 도서인데 웬 르포물이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장연구를 통해 얻은 생생한 사회문제 고발 관련서이기에 이건 인문, 사회과학 분야 대상도서로 적합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씩 읽어갈수록 이건 딱딱한 과학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우리의 아름다운 내면에 다가오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희덕의 <봄길에서>란 시에서 따왔다고 하는 책의 표제와 때론 로맨틱하고 더러는 아릿한 서브타이틀의 여운과 함의가 여간 문학적인 게 아니라는 데도 생각이 미쳤다. 하여 아! 이건 영락없는 문학, 감성의 세계에서 접근해야할 대상이구나 하는 자각이 들면서 오히려 책 제목과 도서 분류가 적합하다고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럼 나는

필자가 인용한 에드먼드 버크의 표현이 귀에 쟁쟁하다. “악이 승리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량한 사람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내 비록 선량하다고 자부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악의 커넥션에 직접 연관된 자가 아닌 이상 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해야 할 몫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나부터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부분은 없을까 고민하다 최근 선물 받은 공정무역 커피가 떠올랐다. 기아대책에서 판매하는 [따뜻한 향기]말이다. 노예노동으로 생산된 커피콩이 아닌 정상적 대가를 생산 농민에게 지불하고 구입한 원료로 가공한 것이니 자연 가격이 일반 커피보다 비쌀밖에. 하지만 그리 큰 차이는 아니다. 약간의 비용만 더 지불하면 나도 작은 몫이나마 노예노동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탤 수 있겠다 싶었다. 그 외에도 찾아보면 소소한 것 하나라도 이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들이 더 있을 것이다. 이제 두고두고 이 문제를 곱씹으며 연결고리를 발견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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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안그림자 2011-04-09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방에 들어 왔다가 시간이 가는 것을 잊어 버리고 서평문을 열심히 읽어 보았습니다. 읽어 나갈 수록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독서량도, 독서 깊이도 책이 가지고 있는 역활에 대해 정말도 생각을 많이 하게 해 주었습니다. 단순한 책을 좋아서 책을 읽고 그 책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을 글로 적어 놓은 것은 아니다 싶어 보입니다. 책 관련 전문가적 소견으로써 지식을 가진 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평범함 자체라면 책에 대한 식견이 너무 깊고 정확해 보이는 것에 대해 독자로써 대단함을 느껴 봅니다. 한 권의 책을 읽고도 그 속에 들어 있는 코드들과 부족한 점, 장점들을 끄집어 내어서 비교하고 평가하는 눈을 보고 있으니, 권 희철 평론가의 시각도 들어 앉아 있다는 것이 보여 집니다. 글들 너무 많이, 그리고 생각있게 잘 읽었습니다. 독자의 깊이 커져 갈 때, 작가의 사색도 깊어 져 간다는 것, 마음으로 느껴 봅니다. 정확성이 오락 가락하는 날씨가 황사 주의보를 켜 주었는데.. 하늘은 그것이 싫은 지 말을 들을 듯 말 듯 벌써 오후 반을 보내 버리고 있는 날입니다.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