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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도 색깔이다
그리젤리디스 레알 지음, 김효나 옮김 / 새움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금기를 깨는 적나라함 

매춘이나 마약에 대한 얘기는 픽션에서도 좀처럼 다루기 어려운 주제이다. 그런데 논픽션에서 본격적으로 거론하는 것, 더구나 본인의 체험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여간 용기를 내지 않고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그런데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이런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뜨리고 있다. 붉은 색 대저택 거리의 여인이 되어 뭇 사내들을 상대한 것에서부터 아프리카 모로코에 가서 직접 구입한 마약을 밀거래한 것은 물론 직접 복용한 사실까지 가식 없이 생생하게 까발리고 있는 것이다. 대담하다 못해 치기 어린 것처럼 보여 뜨악한 감을 지울 수 없게끔 말이다. 그런데 그녀의 얘기에 귀 기울이다 보니 조금씩 그녀의 삶에 공감하게 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유별난 괴물이 아니었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우리 같이 사랑하고 고민하고 연민에 빠지곤 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살고 있었네 

매춘이나 마약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은 죽지 못해 겨우겨우 연명하는 구차한 인간들이란 선입견을 갖기 십상이다. 그리고 그곳은 약육강식의 정글이고 생존을 위한 동물적인 본능만 남아있는 곳이라 여긴다. 그러나 그곳에도 인간, 우리와 똑 같은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 살고 있었다. [검정도 색깔이다]는 이런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매춘굴에 있는 여인들 사이에도 우정이 존재하고 그들도 사내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집시 집단 거주촌에서 타타와 니나, 소냐 등과 나눈 우정은 아름다운 가족애랄 정도로 뭉클하게 만들었다.

진실한 사랑이 있었네

생존을 위한 직업으로서의 매춘녀는 대가 없이는 사랑을 나누지 않는 프로이다. 그러나 [검정도 색깔이다]에는 그들에게도 가슴 울렁거리는 사랑의 감정이 존재함을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로드웰과의 아릿한 얘기는 정말 설레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표범의 얼굴, 풀잎처럼 매끄러운 이마, 나무껍질처럼 자글자글 갈라진 두툼한 입술의 로날드 로드웰이여. 당신 눈동자의 보랏빛 홍채는 깊고 신비로운 우물입니다. 나의 밤, 나의 술, 나의 마약입니다. 당신의 페니스에서 솟구치던 유황과 암모니아 맛의 액체를 마셨었지. 당신 복부에 고인 짜디짠 샘의 가슴 위에 구슬 지어 흘러내리던 푸른빛 포도송이들에 축축하게 젖어가며.(281쪽)

진실로 사랑해보지 않은 자는 이 책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라는 작가의 일갈은 인생의 의미를 달관한 이의 솔직한 선언이라 하겠다.

영원히...듣고 있니, 로드웰. 난 영원히 당신을 사랑할 거야. 당신과 함께라면 지하 독방에서 20년 동안 철창신세를 지는 것도 행복일 거야.(373쪽)

한 고귀한 영혼의 자존감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 보헤미안의 영혼을 지닌 그녀에게 창녀라고 침 뱉을 자격이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때 묻고 속 좁아 터진 우리가 말이다. 그녀에게선 혁명가의 자부심과 당당함이 느껴진다.

우리에게로 오는 성경에서 말하듯 피곤하고 지친 모든 자들, 즉 우리가 자살과 고독에서 구해내는 자들, 우리의 유방과 질 속에서 스스로를 되찾는 자들, 가벼워진 고환과 뜨겁게 달궈진 심장으로 가정에 되돌아가는 바로 그자들이 우릴 괴롭히고, 비난하고, 부정하고, 세금을 매기고, 바가지를 씌우고, 억누르고, 맘대로 우리의 아이들을 고아원에 집어넣고 우리가 사랑하는 남자들을 감금하는 짓거리를 그만두도록...(433쪽) 

진솔하면서도 진부하거나 추하지 않고 인간 본연의 정서, 고귀한 영혼을 오롯이 드러내고 있는 선언이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비하하지도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자존감 넘치는, 스스로 혁명가임을 자처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 어디에서도 씁쓸한 패배자의 면모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여인의 담대한 자기 규정, 세상을 향한 자존감 어린 목소리가 바로 [검정도 색깔이다]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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