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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와이프
메그 월리처 지음, 심혜경 옮김 / 뮤진트리 / 2019년 4월
평점 :
두달 전쯤인가, 신랑과 영화관 한번 갈 수 있으리라는 야무진 희망을 품고 상영중인 영화를 찾아보다가 발견한 <더 와이프>. 줄거리도 흥미롭고, 관람평도 괜찮아서 보고 싶었으나 상영 영화관이 멀었다... 무엇보다 영화관을 갈 시간이 없었다. 흑. 책이 원작이라기에 찾아보니 도서관에 들어와 있었다!
잠자냥님의 <젤다> 리뷰를 읽고 피츠제럴드 부부의 이야기가 이 소설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그들 뿐일까.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어려웠던 때, 가능은 하지만 성공하기는 어려웠던 때, 남편의 이름에 묻혀버린 재능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더 와이프>는 조지프 캐슬먼이라는 유명작가와 그의 아내 조안 캐슬먼의 삶을, 조안의 시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조안이 어떻게 자신의 재능을 묻어놓고 헌신적인 아내로 살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마음이 다시 변해갔는지 추적한다.
둘 사이는 처음부터 평등하지가 않다. 시작부터 삐걱거림을 예감하게 하는 아래와 같은 서술은 앞으로을 예감하게 한다. 조지프의 관심사는 조안이라는 인간 전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없는 재능이 아니었을까.
# 그리고 나는 그에게 나의 불안감, 나에게 스며드는 정치적 공감과 연대, 비현실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욕심들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나는 그에게 나 자신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지만, 한편으로 후련했다. 그래, 이런 것이 남자와 함께 있다는 의미였구나. 그가 신경 쓰는 것들을 나에게 말해주고, 그 다음에는 내가 신경 쓰는 것들을 그에게 말해주고,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적절한 시점에 분노하고 동정하며 맞장구치는 것. 그건 마치 친구를 갖는 것과 같고, 전혀 다른 신체적 구조와 기억들을 가진, 낯선 자신의 판박이를 갖는 것과 같다. 그리고 둘이 모두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면 서로 상대방의 내부에 있는 기억의 채굴장과 저장소에 특별히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
하지만 나의 예상과 달리, 그의 질문은 ˝내 글은 어땠어?˝였다.
- 115쪽
여자는 열심히 남자에게 그의 가족, 삶, 생각, 취향 등을 물어보고는 남자도 이제 그런 것들을 물어보리라 기대하고 마음을 열었는데, 남자는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 있어... 이런 느낌 안다. 아 너무 슬퍼 ㅜㅜ
1950-60년대에 여성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성공하기 어려웠는지를 보여주는 부분들도 여럿 등장해서 흥미롭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 덩굴과 기숙사 현관의 그네, 그리고 마리화나로 이루어진 캠퍼스에서 나의 관심사를 이어나가기가 어려웠다. 여기서는 모든 것들이 황금빛과 여성성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운데 조직이나 단체의 주류에 속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56년, 우리는 중요한 세계에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커다란 마이크를 들고 반질반질한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기고 상원 소위원회에 한통속이 되어 앉아있는 혐오스러운 남자들, 호텔 방에서 긴급한 욕망을 채우고 있는 남자들의 세계와 격리되어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세균 배양액에 담긴 표본들처럼 자발적으로 우리 자신을 4년 동안 유보한 채, 어떤 다른 용도를 위해 보존되어 있었다.
-63쪽
# “당신이 그들의 관심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그녀가 말했다.
˝누구의 관심요?˝
그녀는 나를 불쌍하다는 눈으로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안전핀을 치마에 꽂고 있는 바보.
˝남자들˝ 그녀가 말했다. ˝서평을 쓰고, 출판사를 운영하고,
신문·잡지를 편집하는 남자들, 누가 정말로 선택될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누구를 권좌에 올릴지 결정하는 남자들 말이야. 똥 중의 왕이 될 사람.˝
˝그럼 그런 건 음모陰謀란 말이에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이 그런 단어를 사용하면 내가 질투하고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 일레인 모젤이 말을 계속했다. ˝아니야. 아직은, 하지만, 맞아, 여자들의 목소리를 작고 조용하게 만들고 남자들의 목소리를 크게 만드는 것을 음모라고 부른다면 말이지.˝ 그녀는 크게라는 단어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아, 예˝ 나는 애매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 마.˝ 그녀가 다시 말했다. ˝다른 길을 찾아. 어디든 갈수 있는 여자들은 극히 소수야. 대부분은 단편 작가들이지, 마치 여자들은 작은 것들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어쩌면요.˝ 내가 말을 시도했다. ˝여자들은 남자들과 달라요. 아마도 여자들은 글을 쓸 때 다른 것을 시도하려는 것일 수도요.˝
˝맞아.˝ 일레인이 말했다. ˝그게 사실일 수도 있지. 하지만 큰 캔버스, 그 안에 모든 것을 넣으려고 시도하는 대단한 책들, 멋진 정장, 큰 목소리를 가진 남자들은 항상 더 많은 보상을 받지. 그들은 중요한 사람들인 거야. 왜 그런지 알고 싶어?˝ 그녀가 나에게로 몸을 숙이더니 말했다, ˝왜냐면 그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 89~90쪽
영화로는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궁금하다. 나중에 파일로 볼 수 있겠지..
책에 오탈자가 상당히 눈에 띈다. 영화 내리기 전에 출간하려고 서두르다가 교정을 덜 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번역은 괜찮다.
결혼생활에 안주하는 여자들, 남편과 가정에 대한 헌신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여자들, 결혼생활이 자신들이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느끼고, 실제로도 가장 좋아하고 잘 맞는 일이었기에 결혼생활을 단단히 붙들고 있는 여자들. 수재너는 익숙한 것과 알고 있는 것들에서 누리는 호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불밑의 늘 같은 자리가 튀어나와 있는 침대, 귀를 덮은 머리카락. 남편. 결코 내가 기어오를 수 없고, 흥분해서도 안 되는 존재. 그래도 엉성하게 바른 회반죽으로 벽돌을 쌓아가듯, 세월에 세월을 얹으며 그저 옆에 사는 사람. 두 사람 사이에 결혼이라는 벽이 세워지고, 기꺼이 그 안에 눕게 되는 부부의 침대. "내가 비참하다고 누가 그러던?" 이것이 내가 수재너에게 실제로 한 말이었다. - 139쪽
남자들이 낄낄거리며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나는 그들 사이에 불편하게 앉아있었다. 밥 러브조이가 내 팔을 만졌고 나는 약탈당하고 협박을 받은 기분이었지만 어떻게 적극전으로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남성이 여성을 만졌고, 예상 밖의 일이었다면, 여성은 "그러지 말아요."라고 속삭이거나, 아니면 소리를 지르거나, 아니면 남자를 밀어낸다. 그러면 남자는 하던 짓을 멈추거나, 어쩌면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이게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다. 나는 여기에 조와 함께 왔기에 혼자 일어나서 떠나버릴 수는 없었다. 나는 비상계단의 난간에 기대어 적막한 거리를 비참한 기분으로 내려다봤다. 조가 드러난 나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날씨가 차가워서 뭔가 덮을 게 필요하던 참이었다. "조안." 조가 내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귓바퀴에 대고 속삭였다. "여기서 나가자." 그것이 나는 고맙고 또 고마웠다. 마치 그가 나를 구해주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구해냈고, 파티장을 떠났다. -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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