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을 끌고 나가는 건 2%의 인간이다.
입버릇처럼 담임은 그런 얘길 했는데, 역시나라는 생각이다. 치수
를 보면, 확실히 그런 인간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출마를 하
고, 연설을 하고, 사람을 뽑고, 룰을 정하는- 좋다, 납득한다. 이 많
은 인간들을 누군가는 움직여야 하는 거니까. 수긍한다. 나머지
98%의 인간이 속거나, 고분고분하거나, 그저 시키는대로 움직이거
나- 그것은 또 그 자체로 세상의 동력이니까. 문제는 바로 나 같은
인간이다. 나와, 모아이 같은 인간이다. 도대체가
데이터가 없다. 생명력도 없고, 동력도 아니다. 누락도 아니고, 소외도 아니다. 어떤 표현도 어떤
동의도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살고 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2.
나는 혼자다. 늘 마흔한명 속에 앉아 있지만, 또 육백삼십칠명의 졸업앨범에 나란히 사진을 넣기
도 하겠지만, 실은 천구백삼십사명과 오만구천이백사명과 육십억의 인류가 나를 둘러싸고 있다고
도 볼 수 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내가 말을 걸 수도 없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잘못된 일이다. 누구에게나 이름을 알고, 매
일 얼굴을 봐야만 하는 마흔한명 정도의 인간들이 있다. 마흔한명 정도의 그 인간들이, 실은 그래
서 천구백명과 오만구천명, 나아가 육십억 인류를 대표해 한 인간과 대면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
했다. 지독하다. 과연
니들이 인류를 대표한 거냐?
3.
소외가 아니고 배제야
벌판을 향해 걸어가며 나는 중얼거렸다. 뭐가? 모아이가 물었다. 따를 당한다는 것 말이야... 소
외 가 아니라 배제되는 거라고. 아이들한테? 아니, 인류로부터. 살아간다는 건, 실은 인류로부터
계속 배제되어가는 거야. 깎여나가는 피부와도 같은 것이지. 그게 무서워 다들 인류에게 잘 보이
려 하는 거야. 다수인 척, 인류의 피부를 파고들어가는 거지. 아무렴 어때. 모아이가 말했다. 그건
그래.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4.
무엇보다
그걸 용서할 수 없어요.
60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자신이 왜 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거잖아요.
그걸 용서할 수가 없어요
(...) 이윽고 세끄라탱이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얘야, 세계는 언제나 듀스포인트란다. 이 세계
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나는 줄곧 그것을 지켜봤단다. 그리고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에게 탁
구를 가르쳤어. 어느쪽이든 이 지루한 시합의 결과를 이끌기 위해서였지. 하지만 아직도 결판은
나지 않았단다. 이 세계는
그래서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곳이야. 누군가 사십만의 유태인을 학살하면 또 누군가
가 멸종위기에 처한 혹등고래를 보살피는 거야. 누군가는 페놀이 함유된 폐수를 방류하는데, 또
누군가는 일정 헥타르 이상의 자연림을 보존하는 거지. 이를테면 11:10의 듀스포인트에서 11:11,
그리고 11:12가 되나보다 하는 순간 다시 12:12로 균형을 이뤄버리는 거야. 그건 그야말로 지루한
관전이었어. 지금 이 세계의 포인트는 어떤 상탠지 아니? 1728345792629921:1728345792629920,
어김없는 듀스포인트야.
5.
인간의 해악은 9볼트 정도의 전류와 같은 거야. 그것이 모여 누군가를 죽이기도, 누군가에게 상
처를 주기도 하는 거지. 그래서 다들 다수인 척하는 거야. 이탈하려 하지 않고, 평형으로, 병렬로
늘어서는 거지. 그건 길게, 오래 생존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야. 전쟁이나 학살은 그 에너지가 직
렬로 이어질 때 일어나는 현상이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수만 볼트의 파괴자가 남아 있을까? 학살
을 자행한 것은 수만 볼트의 괴물들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전쟁이 끝난 후에 남는 건 모두
미미한 인간들이야. 독재자도 전범도, 모두가 실은 9볼트 정도의 인간들이란 거지. 요는 인간에
게 그 배치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이기(利己)가 있다는 거야. 인간은 그래서 위험해. 고작 마흔한
명이 직렬해도 우리 정도는 감전사할 수 있는 거니까.
6.
남은 건 결정뿐이야. 앞서 말했듯 인류를 유지할 것인가, 언인스톨할 것인가... 즉 <핑퐁>의 마지
막 순서가 남았을 뿐이지.
(...) 제거한다면... 그뒤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우선 인류가 언인스톨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생
태계는 다시 무(無)로 돌아갈 거야. 하지만 너희 둘은 여전히 지구에 남게 돼.
(...) 반대로... 유지한다면요?
이대로 계속,
변함없이.
(...) 세계에서의 일상이 떠올랐다. 아니 나는, 세계에서의 일상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어떤 곳이
었던가, 그러나 곧- 기억을 떠올릴수록 그것은 추측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랬다.
모든 것은 추측일 뿐, 나는 인류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
도
(...) 어떻게 할까? 나는 모아이에게 물었다. 아마도
고등학생 정도로 부패한다면
지금과 같은 생각은 못할 것 같아. 내 생각도 그래. 그리고 우리는 나란히 세끄라탱 앞에 섰다. 물
끄러미 우리를 들여다보던 세끄라탱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어보았다. 언인스톨?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 박민규,「핑퐁」중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