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상당히 매끄러운 번역. 처음에는 집중이 잘 안 되지만 중반부부터는 푹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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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상을 끌고 나가는 건 2%의 인간이다.

   입버릇처럼 담임은 그런 얘길 했는데, 역시나라는 생각이다. 치수 

  를 보면, 확실히 그런 인간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출마를 하 

  고, 연설을 하고, 사람을 뽑고, 룰을 정하는- 좋다, 납득한다. 이 많 

  은 인간들을 누군가는 움직여야 하는 거니까. 수긍한다. 나머지  

  98%의 인간이 속거나, 고분고분하거나, 그저 시키는대로 움직이거 

  나- 그것은 또 그 자체로 세상의 동력이니까. 문제는 바로 나 같은  

  인간이다. 나와, 모아이 같은 인간이다. 도대체가


 데이터가 없다. 생명력도 없고, 동력도 아니다. 누락도 아니고, 소외도 아니다. 어떤 표현도 어떤  

동의도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살고 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2.

 나는 혼자다. 늘 마흔한명 속에 앉아 있지만, 또 육백삼십칠명의 졸업앨범에 나란히 사진을 넣기 

도 하겠지만, 실은 천구백삼십사명과 오만구천이백사명과 육십억의 인류가 나를 둘러싸고 있다고 

도 볼 수 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내가 말을 걸 수도 없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잘못된 일이다. 누구에게나 이름을 알고, 매 

일 얼굴을 봐야만 하는 마흔한명 정도의 인간들이 있다. 마흔한명 정도의 그 인간들이, 실은 그래 

서 천구백명과 오만구천명, 나아가 육십억 인류를 대표해 한 인간과 대면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 

했다. 지독하다. 과연 

 
니들이 인류를 대표한 거냐?

 

 3.

 
소외가 아니고 배제야

 벌판을 향해 걸어가며 나는 중얼거렸다. 뭐가? 모아이가 물었다. 따를 당한다는 것 말이야... 소 

외 가 아니라 배제되는 거라고. 아이들한테? 아니, 인류로부터. 살아간다는 건, 실은 인류로부터  

계속 배제되어가는 거야. 깎여나가는 피부와도 같은 것이지. 그게 무서워 다들 인류에게 잘 보이 

려 하는 거야. 다수인 척, 인류의 피부를 파고들어가는 거지. 아무렴 어때. 모아이가 말했다. 그건  

그래.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4.

 
무엇보다 
 그걸 용서할 수 없어요.
 60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자신이 왜 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거잖아요.
 그걸 용서할 수가 없어요
 

 (...) 이윽고 세끄라탱이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얘야, 세계는 언제나 듀스포인트란다. 이 세계 

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나는 줄곧 그것을 지켜봤단다. 그리고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에게 탁 

구를 가르쳤어. 어느쪽이든 이 지루한 시합의 결과를 이끌기 위해서였지. 하지만 아직도 결판은  

나지 않았단다. 이 세계는
 

 그래서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곳이야. 누군가 사십만의 유태인을 학살하면 또 누군가 

가 멸종위기에 처한 혹등고래를 보살피는 거야. 누군가는 페놀이 함유된 폐수를 방류하는데, 또  

누군가는 일정 헥타르 이상의 자연림을 보존하는 거지. 이를테면 11:10의 듀스포인트에서 11:11,  

그리고 11:12가 되나보다 하는 순간 다시 12:12로 균형을 이뤄버리는 거야. 그건 그야말로 지루한  

관전이었어. 지금 이 세계의 포인트는 어떤 상탠지 아니? 1728345792629921:1728345792629920,  

어김없는 듀스포인트야. 

 
5.

 인간의 해악은 9볼트 정도의 전류와 같은 거야. 그것이 모여 누군가를 죽이기도, 누군가에게 상 

처를 주기도 하는 거지. 그래서 다들 다수인 척하는 거야. 이탈하려 하지 않고, 평형으로, 병렬로  

늘어서는 거지. 그건 길게, 오래 생존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야. 전쟁이나 학살은 그 에너지가 직 

렬로 이어질 때 일어나는 현상이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수만 볼트의 파괴자가 남아 있을까? 학살 

을 자행한 것은 수만 볼트의 괴물들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전쟁이 끝난 후에 남는 건 모두  

미미한 인간들이야. 독재자도 전범도, 모두가 실은 9볼트 정도의 인간들이란 거지. 요는 인간에 

게 그 배치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이기(利己)가 있다는 거야. 인간은 그래서 위험해. 고작 마흔한 

명이 직렬해도 우리 정도는 감전사할 수 있는 거니까.


6.

 남은 건 결정뿐이야. 앞서 말했듯 인류를 유지할 것인가, 언인스톨할 것인가... 즉 <핑퐁>의 마지 

막 순서가 남았을 뿐이지.

 (...) 제거한다면... 그뒤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우선 인류가 언인스톨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생 

태계는 다시 무(無)로 돌아갈 거야. 하지만 너희 둘은 여전히 지구에 남게 돼.

 (...) 반대로... 유지한다면요?

 이대로 계속,
 변함없이.

 (...) 세계에서의 일상이 떠올랐다. 아니 나는, 세계에서의 일상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어떤 곳이 

었던가, 그러나 곧- 기억을 떠올릴수록 그것은 추측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랬다.  

모든 것은 추측일 뿐, 나는 인류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 



 (...) 어떻게 할까? 나는 모아이에게 물었다. 아마도

 고등학생 정도로 부패한다면

 지금과 같은 생각은 못할 것 같아. 내 생각도 그래. 그리고 우리는 나란히 세끄라탱 앞에 섰다. 물 

끄러미 우리를 들여다보던 세끄라탱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어보았다. 언인스톨?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 박민규,「핑퐁」중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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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열은 오랫동안 결점이고, 결핍이며, 매우 전형적인 영혼의 병이라고 여겨져 왔다. 정열  (passion)이라는 단어가 속해 있는 의미군 안에 이 단어를 다시 가져다 놓아 보면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수동적(passif), 병적(pathologique), 비극적(pathetique) 등의 단어들이 같은 의미군에 속해 있다.
 (...) 정열을 행동 안에 통합시켜 넣었던 것은 낭만주의 혁명의 고유한 특성이었다. 낭만주의는 정열을 행동의 내적 동기로 여긴다. 헤겔은 정열 없이는 그 어떤 위대한 일도 이룰 수 없다는 주장을 하기까지 했다.

 (...) 헤겔과 베토벤, 그리고 그들의 동시대인들은, 정열의 지배를 받으며 행동하는 인간은 그를 초월하여 그를 위대하게 만들어 주는 역사의 힘에 관통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천재에 대한 정의이다. 천재는 전형화된 낭만주의적 理想인 것이다.
 

       - 미셸 투르니에,「생각의 거울」중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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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느끼는 어떤 개인의 행동을 지극히 단순하게 만들어 버린다. 자기 혼자 힘으로는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을 때, 개인은 자신의 행동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방법 밖에는 없다. 바깥 세계의 공격에 직면해서 더이상 어떻게 할 방법도, 할 말도 없는 사람에게는 눈물을 터뜨리는 마지막 방법이 남아 있다. 이처럼 자신의 존재를 액화시켜 버리면 새롭고 적절한 대답이 생겨날지도 모르니까. 울고 있는 인간은 모든 부품들이 따로따로 흩어져 버린 기계처럼 '분해되는' 것이다.  

 

   - 미셸 투르니에,「생각의 거울」중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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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뉴욕을 찾아냈고, 사이는 여기가 낮일 때 왜 뉴욕은 밤인지를 요리사에게 설명하느라 애썼다. (...)  요리사는 미국보다 인도에 먼저 아침이 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것은 앞뒤가 뒤바뀐 기묘한 사실이었고, 두 나라와 관련된 다른 어떤 상황에도 그 사실은 반영되어 있지 않은 듯했다. 

  
 

 "안녕." 사이는 수녀원의 심술과 옹고집을 향해, 그리고 불안한 대조를 이루는 부드러운 색조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천사들과 피로 더럽혀진 그리스도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  굴욕과 두려움의 무게를 배운 4년, 핑계를 대는 기술을 배운 4년, 일상적인 평범한 잘못과 혼란을 일급 범죄처럼 진지하게 다루는 규칙 앞에서 벌벌 떨었던 4년에도 작별인사를 했다.

 (...)  이 방식은 순수함에 사로잡혀 있을지 모르지만, 죄의 독특한 맛을 규정짓는 데에는 뛰어났다. 죄와 욕망의 힘을 폭로하고 그 결과를 찌르고 쑤시는 데에는 간지러움 같은 기분 좋은 자극이 있었다. 사이는 이것을 배웠다. 이것이 밑에 깔려 있고, 그 위에는 절대적인 신조가 있었다. 경단보다는 케이크가 나았다. 손보다는 포크와 스푼과 나이프가 나았다.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고 그리스도의 몸인 밀전병을 먹는 것은 남근석을 금잔화 화환으로 장식하는 것보다 문명적이었다. 힌두어보다는 영어가 나았다. 

 

 
 며칠 동안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그의 목은 나오지 못한 말들로 가득차고, 그의 가슴과 마음은 둔통에 시달렸다. 나이 많은 여자들, 심지어는 불우한 사람들 - 머리털은 푸른색을 띠고 얼룩덜룩 검버섯이 피고 얼굴은 썩어가는 호박처럼 생긴 사람들 - 까지도 버스에서 그가 옆자리에 앉으면 자리를 옮겼다. 그래서 제무바이는 그들이 무엇을 갖고 있든 간에 그가 가진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이 습관은 비주를 늘 따라다녔다. 그는 인도에 틀림없이 큰 피해를 끼친 백인들을 두려워하고, 인도에 해로운 일을 전혀 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기가 너그럽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안은 공중에 둥둥 뜬 것처럼 시장을 지나가면서,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자기 밑에서 휙휙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  그러자 지안은 군중과 함께 구호를 외쳤고, 그의 목소리가 거대함이나 원기왕성함과 뒤섞이는 것 자체가 오늘날의 중대한 사회 문제와의 관련성을 창조하는 것 같았다. 

 (...) 지안은 시민 수백만 명이 봉기하여 영국인들에게 떠날 것을 요구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거기에는 고결함과 대담함과 거룩한 정열이 있었다 - "인도인을 위한 인도, 대표가 없이는 과세도 없다. 전쟁에는 어떠한 협력도 하지 않겠다. 병사 한 명도, 1루피도 내놓지 않겠다. 영국 통치 타도하자!"  한 나라의 역사에, 한 나라의 심장 속에 그런 클라이맥스가 있다면, 그 나라는 또다시 그런 클라이맥스를 갈망하지 않을까? 

 

 
 사이는 노니가 <죄와 벌>에 대해 도서관 사서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엿들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경외심을 느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당황했어요. 고백과 용서라는 이 기독교적 관념은 범죄 피해자한테 범죄의 무거운 짐을 떠맡기는 거예요! 범죄 행위를 없던 일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왜 죄악은 고백과 용서를 통해 없던 일로 되돌려야 하죠?"
(...)
 사이가 덧붙였다.  

 "제일 나쁜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이 지금 곤란을 겪고 있는 건 전생에 나쁜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니까 굶주리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예요."

 

 
 비주가 계속 뉴욕에서 살면 다시는 아버지를 못 볼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10년이 지나고 15년이 지난 뒤 전보가 도착하거나 전화가 걸려왔다. 부모는 죽고, 자식은 너무 늦었다.
또는 고향으로 돌아간 자식은 인생의 마지막 4분의 1을 완전히 놓친 것을 알았다. 부모는 사진의 음화같았다. 그보다 더 심한 비극도 있었다. 최초의 흥분이 가시면 사랑이 사라진 것이 분명해질 때가 많았다. 애정은 결국 습관일 뿐이고, 사람들은 사랑을 잊어버리거나 사랑이 없는 데 익숙해졌다. 고향으로 돌아간 그들은 애정의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 

 

 
 아아, 우리는 잘못 생각했어. 우리의 진정한 처지를 깨닫지 못했어. 우린 둘 다 바보였어. 그림처럼 아름다운 집을 차지하고, 도서관의 오래된 여행기에 매혹되고,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리 자
신을 낭만적으로 포장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고,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면 그 여행기에 묘사된 곳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을까를 찾으면서 우리가 흥미진진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지. (...)  하지만 머나먼 왕국들은 무엇에서 멀리 떨어져 있나? 누구한테 이국적인가?

그곳이 자매에게는 중심이었지만, 그들은 한 번도 그곳을 중심으로 대한 적이 없었다.

 

 

 비주는 자신이 텅 비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간디 카페'로 돌아갔다. 해가 갈수록 그의 생활은 공허해지고 있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지냈어야 할 공간에서 숨쉬고 있는 것은 비주뿐이었다. 하지만 비주의 또 다른 부분은 전보다 훨씬 커졌다. 그의 자의식, 자기연민 - 오오, 그 지루함. 

 

 

 사이의 울음은 세상의 모든 슬픔을 표현하기에 충분했지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다. 인생의 목적은 단순하지 않았다. 아니, 인생의 방향조차 단순하지 않았다. 사이가 배운 것의 단순함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사이는, 인생에는 하나의 이야기밖에 없고, 그 이야기는 오로지 자신에게만 속해 있고, 자신도 이제 곧 하찮은 행복을 창조하여 그 안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는 두번 다시 생각할 수 없었다.

 

       -   키란 데사이,「상실의 상속」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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